[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아이브, 케이팝의 즉각적 현재성
세계 대중음악의 맥락에서 케이팝이 독자적으로 정립해 온 문법들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 같은 의의를 찾아볼 만한 앨범이다.
글ㆍ사진 미묘(대중음악평론가)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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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IVE(아이브)의 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이렇다. 재작년 말 데뷔와 함께 세 장의 초대형 히트 싱글이 이어진 끝에 발매한 정규 앨범이다. 그간 비교적 제한적으로 보여왔던 음악적 스펙트럼을 어떻게 넓히고, 패키지는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패키징은 주얼 케이스 이외에 세 가지 버전으로 발매됐다. 흑백 그래픽과 굵직한 산세리프 타이포그래피로 대담하게 디자인된 앨범은, 흑백 의상의 포토북을 담은 'I' 버전에서 그 시각적 효과를 뚜렷이 한다. 두 권의 포토북이 쌍을 이루고 있는데, 유광과 무광, 밝은 조명의 스튜디오와 밤 시간의 실외로 대조를 보인다. 'V'와 'E' 버전은 비비드한 색감의 사진을 사용해 또 다른 대구를 이룬다. 이들이 강조하는 패셔너블한 이미지와 그 방식은 다소 전형적이라고도 할 만한데, 아티스트의 입지를 감안할 때 접근성 높도록 구상한 듯도 하다. 이를테면 포토 카드가 이미 특히 아이브의 저연령층 팬들의 중요한 매체가 된 점을 의식한 듯, 'E' 버전이 마치 포토 카드를 모아 편집한 듯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어찌 되었든 타이틀 'I AM'은 매우 준수한 앤섬(anthem)이다. 이국적이고 불온한 긴박감을 근사하게 담아냈던 전작들의 기조와는 조금 다르다. 다정다감함을 동전의 한 면으로 제안하던 선공개곡 'Kitsch'를 발판으로, 조금 비극적인 감상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I AM'은 기존에 태도로서 드러내던 나르시시즘을 보다 명시적으로 담아내면서 자신감과 결기를 쏟아낸다.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내일 내게 열리는 건 big big 스테이지" 등 으리으리한 펀치라인이 곳곳에서 달려든다.

절박한 화려함 속에 트리플렛 리듬이 강렬하게 몰고 가며 확실한 폭발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유감 없을만큼 들려주는 고음도 곡의 긴장을 효과적으로 끌어낸다. 후렴의 모티프를 미리 당겨 사용하는 프리 코러스("너는 누군가의 Dreams come true")는 청자의 기억 속에 후렴을 매우 풍성한 정서로서 기록하고 각인 효과 역시 높인다. 대신 '버스(verse)'를 둘로, 넷으로 나눠 모티프를 다변화함으로써 케이팝 특유의 빠른 전개의 묘미를 유지한다. 비트는 두 마디마다 마지막 박자에 변화를 주는데, 특히 하이햇을 들어내며 빈 공간으로 떨어짐으로써 질주감을 효과적으로 강화한다. 이를 곡 전체로 확대 적용하는 듯 무반주로 빠지는 아우트로에도 긴장과 속도감을 부여하며 마무리한다.

첫 트랙 'Blue Blood'가 전작들의 음산한 긴장으로 강렬하게 앨범을 연 뒤, 2번 트랙에서 만나는 'I AM'은 거대하고도 시원한 해방감으로 내달린다. 그림이 달라지는 건 3번부터다. 'Kitsch'는 후반부의 긴박감으로 들떠 오르기는 하지만, 나직하고 다정하게 시작하면서 앨범 초반의 텐션은 일단 내려놓게 된다. 이후 트랙들도 마찬가지다. 'Mine'도 후렴에서 스피커 밖으로 넘쳐 흘러버릴 것 같은 신스의 울렁임과 함께 청자를 강렬하게 휘두르지만 역시 트랙의 시작은 느긋하고 달콤하다. 이처럼 트랙들은 좀처럼 초반의 활기를 앨범의 호흡으로 연결해내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 케이팝 앨범의 구성적 아쉬움이 주로 채워 넣기식 백화점 앨범임에서 비롯됐다면, 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케이팝 타이틀곡들이 갖는 과격한 다이내믹이 거의 모든 트랙에 적용되면서 트랙이 시작할 때마다 감상의 호흡이 리셋되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적어도 본격 여름 상큼튠인 'NOT YOUR GIRL'이 시작되는 8번 이전까지는. 어느 트랙을 들어도 타이틀에 준하는 역동성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랜덤 재생이나 트랙별 감상이 보편화된 스트리밍 환경 속 수록곡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면이 이 앨범에는 있다. 화성과 멜로디와 랩이 분방하게 조합되며 사랑스럽고 취향 좋게 흐르는 'Cherish', 스트링이 난폭하게 스케일을 키우는 'Shine With Me' 등, 수록곡 각자가 따로 떼어 듣기 좋은 매혹적인 케이팝을 이루고 있다.

싱글을 모아 앨범을 발매하는 대중음악의 '전통적' 관행은, 기존에 발매한 싱글 트랙들을 앨범에 수록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처럼 싱글은 놔두고 앨범을 신곡으로만 채우는 것도 이제 케이팝에서는 드물지 않은 방식이다. 과거에 참조하던 해외 음악 시장보다는, 싱글 포맷의 대두와 케이팝의 역사가 시기적으로 겹치는 한국 상황이 낳은 독자적인 문법의 작은 요소랄까. 다양하게 구성하는 앨범 패키징과 더불어 포토 카드 포맷을 의식한 'E' 버전의 디자인, 수록곡들의 면면, 구조적 복잡성의 활용법, 선공개곡을 경유해 음악적 색채를 단단하게 확장하는 방식 등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만하다.

그럴 때, "왜 'I'와 'E' 버전은 각각 두 포토북에 가사지가 중복으로 포함됐고, 'V' 버전은 또 그렇지 않은 걸까?", "셀러브리티를 표현하는 길은 꼭 거울, 립글로스, 포토월일까?" 같은 의문들도 적당히 덮인다. 가 지향하는 바는, 반드시 앞뒤가 꼭꼭 들어맞는 식의 '완성도'보다는, 케이팝의 즉각적인 현재성에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아이브가 매우 특이한 이종으로서의 4세대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전 세대 케이팝 걸그룹의 모든 것 위에서 새롭게 완성된 존재에 가까운 것과도 같다. 세계 대중음악의 맥락에서 케이팝이 독자적으로 정립해 온 문법들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 같은 의의를 찾아볼 만한 앨범이다.



IVE (아이브) 1집 - I've IVE [Jewel Ver.] [버전 6종 중 1종 랜덤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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