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스토리 공모전 대상 『제왕의 잔』 박희 작가 인터뷰
무명의 한 천한 사기장이 마음 가는 대로 만든 큼지막한 막사발이 어떻게 일본의 국보가 되었을까. 『제왕의 잔』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16세기 조선과 명나라, 일본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임진왜란을 통해 한 조선 사기장의 치열한 삶과 처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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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 작가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국보 '기자에몬 이도다완'이 조선의 막사발이었다는 게 사실일까? 이 막사발을 만든 이는 누구이며, 호시탐탐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노렸던 일본 권력자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 뒤에 가려진 검은 속내와 야망을 '이도다완'이라는 의외의 소재와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힘 있게 풀어나가며 한국 역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제왕의 잔』이 출간됐다. 2017년 경남 스토리 공모전에 공개되자마자 "탄탄한 구성과 높은 완성도를 구가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제왕의 잔』의 박희 작가를 만나 보았다.



드디어 『제왕의 잔』이 출간되었네요. 이 작품을 쓰느라 자료 조사도 굉장히 오래 하셨고, 경남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로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책을 출간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사실 『제왕의 잔』은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기획했고, 경남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당시에는 완성된 소설이 아니라 50쪽 정도의 트리트먼트였습니다. 시나리오와 드라마 극본을 오래 써왔기 때문에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죠. 무엇보다 이 방대한 내용을 소설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년 전쯤 소설로 먼저 다듬어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5년에 걸친 자료 수집과 2년의 자료 분석 과정을 나름 탄탄하게 해둔 덕에 소설은 약 8개월 만인 2021년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작품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극은 단 몇 줄의 역사적 기록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고, 현재 남겨진 유물과 흔적만으로 정교한 스토리를 만들어야 해서 참 오랜 담금질을 한 느낌입니다. 마치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살아내려는 이방인 같기도 했고, 매순간 허방을 짚는 것 같아 막막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산고 끝에 세상에 내놓은 책이라 너무 먹먹해서 오히려 담담합니다.

원래는 드라마로 생각하셨군요. 제목이 참 특이한데요. 『제왕의 잔』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책을 소개하려면 먼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일본의 국보 '기자에몬 이도다완'부터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우연히 일본 출장길에 보게 된 '기자에몬 이도다완'이 조선의 막사발이었다는 사실이 처음엔 흥미로웠습니다. 오랜 세월 견원지간인 우리와 일본의 역사 속에 뭔가 다른 내막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조선의 막사발이나 그것을 빚은 사기장에 대한 내용은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가 아닌, 무명의 한 천한 사기장이 마음 가는 대로 만든 큼지막한 막사발이 어떻게 일본의 국보가 되었을까. 『제왕의 잔』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16세기 조선과 명나라, 일본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임진왜란을 통해 한 조선 사기장의 치열한 삶과 처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흙을 만지는 게 좋아서 '천한 사기장'을 선택하고 자신의 일에 매번 최선을 다했지만 시대적인 상황에 휩쓸려 번번이 고초를 겪게 되는 주인공 도경의 삶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작가님은 도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가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도경은 십대부터 팔십대까지 전 인생에 걸친 대서사를 이끌어가는 인물입니다. 권력의 실세 가문에서 태어나 꽃길만 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을 버리고 천한 사기장이 되어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은 인물이죠. 그는 거대한 꿈을 꾸거나 거창한 미래를 그리지 않습니다. 오직 흙을 빚는 그 느낌이 좋아서, 흙을 빚을 때는 마음껏 자유로워질 수 있어서 사기장의 삶을 선택했죠. 뜻하지 않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고난과 절망의 나락을 겪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운명과 맞서고 위기를 극복하며 삶을 살아내는 인물입니다. 

저는 주인공 '도경'을 통해서, 꿈을 꾸지 않아도, 미래를 준비하기에 벅찬 현실이어도,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방황해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해도, 우리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도경의 삶이 그들에게 아주 작은 용기이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왕의 잔』에는 1500년대 후반 조선과 명나라, 일본의 모습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그중에서도 중국 최대의 도자기 생산지인 '경덕진'은 이렇게 작품에서 비춘 게 처음이라고 들었는데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시대, 그것도 외국의 모습을 작품에 담기 어렵진 않으셨나요?

소설 속엔 조선과 명나라, 일본 3국의 다양한 도자기와 기법들이 나옵니다. 16세기 도자기 선진국이었던 조선과 명나라의 도자기 기법은 지금의 반도체나 IT 기술에 버금가는 기밀이었기에 이것을 지키는 일은 굉장히 중요했죠. 특히 작품에 나오는 경덕진, 그중에서도 명나라 황실의 도자기를 굽는 가마인 어기창은, 중국에서조차 아직 문화 콘텐츠로 구현된 적이 없습니다. 현재 경덕진은 도자기 관광 특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만, 여전히 어기창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보호하고 있죠. 어기창에 관한 자료도 쉽게 구할 수가 없어서 학자들의 연구 논문이나 학술지에서 부분적으로 확인하는 정도였고, 공안 당국의 감시 때문에 자료를 확인하는 절차도 무척 까다로웠습니다. 

경덕진 방문과 어기창 자료 수집, 중국 학자들의 논문 분석, 관련자 인터뷰, 중국의 도자기 역사를 공부하는 일련의 과정을 매우 꼼꼼하게 수행했고, 그 기간만 거의 5년이나 걸렸습니다. 살아본 적이 없는 시대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은, 사극 작가에게 필수이자 의무입니다. 창작은 무에서 유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유에서 아주 색다르고 차별적인 유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에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작가님이 『제왕의 잔』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피칭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영상 관계자들에게 이 작품을 알리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넥스트 콘텐츠 페어(Next Content Fair)'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개최되었습니다. 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전국 규모의 공모전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대상을 받은 다섯 작품을 선정하여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제작사와 투자사에 공개하는 행사였죠. 『제왕의 잔』은 소설이 아니라 트리트먼트였기 때문에 저는 영상 자료를 만들어서 직접 피칭을 했습니다. 

조선 막사발과 일본 국보 이도다완에 대한 설명, 막사발이 이도다완이 되기까지의 과정, 임진왜란 후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기장들의 처절한 삶에 초점을 맞추었고,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도경, 연주, 요시다, 아오이의 삶을 입체적으로 풀어냈습니다. 피칭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고 실제 출판과 드라마 제작 의뢰도 받았습니다. 다만, 당시 제가 다른 사극 드라마를 작업 중이었기에 『제왕의 잔』이 소설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향후 영상화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말미에 실린 「작가 노트」에서 '이도다완'을 일컬으며 "뿌리는 우리였지만 전혀 다른 나무가 되어 일본에 뺏긴 느낌"이라고 씁쓸한 마음을 내비치셨어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됐을 때 마음이 많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30여 년 전 일본에서 국보 이도다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우리는 조선에서 개밥그릇으로 막 쓰던 것을 국보로 지정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일본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도다완을 공개하지 않고 있죠. 물론, 속으로는 이도다완이 조선의 막사발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그 사실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고요. 전 『제왕의 잔』을 쓰면서 일본이 우리에게 행한 숱한 만행들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왜 호시탐탐 우리 땅을 넘보았고, 우리의 것을 가지려 했을까. 

어쩌면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뺏고 싶은 욕심과 부러움, 절실한 필요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이유가 켜켜이 쌓여서 그들의 문화가 되고 태도가 되고 심지어 침략의 이유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도다완도 그런 맥락 속에 있는 우리의 막사발입니다. 아이를 잘 낳았는데 느닷없이 다른 핏줄이 되어 나타난 느낌이었죠. 아이를 뺏겼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온 우리 스스로 준엄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거창한 정치적 행위나 캠페인이 아니라 아주 작고 소소한 것이라도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이렇게 깊게 연구하고 공을 들이시는 것만 봐도 앞으로 또 어떤 글을 쓰실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현재 사극 로맨스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작업 이후에는 제가 가진 사극 아이템들이 꽤 있어서 차근차근 소설과 영상화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사극을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긴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라 1~2년에 끝나지는 않아요. 사극은 기본적으로 제작 비용이 몇 백억 단위로 시작하니까 투자를 받는 것도 어렵고, 받는다고 해도 기획 개발만 2년 이상 하기도 합니다. 기획개발과 대본 작업, 캐스팅부터 현장 세트 구현, 촬영과 편집, 편성에 이르는 과정들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의미가 큰 작업이지요. 『제왕의 잔』은 소설이 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기에 머지않아 드라마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로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희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방송국 기자로 일했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 「잿빛 영혼들에게 굿모닝!」이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MBC 대하 사극 「김수로」의 원안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으며, 2017년에는 경남 스토리 공모전에 소설 「제왕의 잔」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 현재는 드라마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제왕의 잔
제왕의 잔
박희 저
토마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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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