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북토크 현장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 받아온 정지아 작가가 32년 만에 선보인 장편 소설이다. 3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지만, 동시에 한국 해방 이후 70년의 역사를 빼곡히 증언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글ㆍ사진 백가경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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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 망원동 까페창비 50주년홀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 25만 부 판매를 기념한 정지아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 받아온 정지아 작가가 32년 만에 선보인 장편 소설이다.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장례식을 치르며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과 인물을 다뤘다. 3일 간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지만, 동시에 한국 해방 이후 70년의 역사를 빼곡히 증언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출간 직후부터 유명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학적인 문체로 어긋난 시대와 이념에서 이해와 화해를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럽다"며 이 책을 추천한 바 있고, 유시민 작가는 "기차에서 웃으며 울며 읽느라 누가 볼까 봐 겁이 났다""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보다 열 배쯤 재미있고 열 배쯤 진지하고 열 배쯤 느낌이 강하다"며 극찬했다. 이번 북토크는 김현 시인이 진행을 맡았고,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작가와 독자, 진행자의 유쾌한 케미가 가득 흘러넘쳤다.



독자와의 Q&A

책을 읽다 보면 말맛이 느껴지는 사투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실제 일상에서도 사투리를 많이 쓰시는지 궁금했어요.

저는 시티걸이라 이런 자리에서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아요.(웃음) 그런데 구례 사람들을 만나면 사투리가 흘러나오죠. 저희 할머니께서는 1900년대에 태어나셨어요. 유관순 독립운동가가 1902년생인데, 그분보다 나이가 많으셨죠. 할머니께서는 전라도의 사투리를 정말 실감 나게, 잘 구사하셨어요. 책에 등장하는 구성진 사투리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랐던 할머니의 사투리를 기본으로 썼습니다. 

또, 저희 어머니 친구 분의 영향도 받았는데요. 그분께서는 책을 아주 좋아하시는 편이었죠. 언젠가 제게 사투리를 직접 적은 노트를 한 권 주셨는데, 소설을 쓸 때 참고했죠. 도서관 사서를 하는 제 친구도 사투리를 굉장히 구성지게 써요. 제가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그에게 전화해서 특정 문장을 사투리로 어떻게 말하는지 다짜고짜 해보라고 해서 옮겨 적기도 했어요.

요즘 작가님을 웃게 하는 사소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제가 키우는 고양이 '그냥이'요. 그냥이도 시티걸이라 제가 가장 좋아해요.(웃음) 그냥이는 생닭가슴살만 먹는데, 닭을 사온 지 이틀이 지나면 먹지를 않아요. 또, 자신이 뭘 먹는데 딴 고양이들이 와서 입을 대잖아요? 그러면 뺨을 때리고 '너나 먹어라' 하고 가버려요. 저에게 와서 얼굴을 비비며 친한 척을 하다가 다른 애들이 와서 똑같이 하면 '너나 가져라' 하고 가버려요. '저냥이'는 무식하게 들이대는 스타일이에요. 

저냥이는 유일하게 제 노트북에 털썩 주저앉는 고양이죠. 처음에는 구박을 했는데, 그런데도 계속 들이대니까 어느 순간 저는 저냥이를 가장 많이 만지고 있더라고요. 때로 멍청한 것도, 끊임없이 들이대는 것도 우리가 친해지게 만든 방법이었구나 생각하면 행복하죠. 또, 제가 사는 구례 집에서는 텃밭에 상추를 키우는데요. 요즘처럼 비가 온 다음 날이면 더더욱 상추가 잘 자라요. 쑥쑥 큰 상추를 보는 것도 행복이죠.

이번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 예상하셨나요? 책을 쓰시면서 이번 소설은 왠지 느낌이 좋다고 감지하셨나요?

아뇨, 그것을 알면 제가 여태껏 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지 못했겠습니까?(웃음) 저는 그런 분야의 감이 좋지 않나 봐요. 전작인 『자본주의의 적』을 써 놓고 '이건 좀 팔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출판사 측에서 책 제목을 바꾸자고 했는데도 제가 밀어붙였거든요. 그랬더니 2천 부 정도 나가더라고요. 저는 아직까지도 그 책이 더 웃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의 감을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죠. 저의 친한 친구들이 요즘 제게 전화해서 막 웃어요. 21세기에 빨갱이 이야기로 뜰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웃음) 

제가 이번 책을 가볍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소재 자체는 무겁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 친구 말로는 '빨갱이'라는 말을 유머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 저의 힘인 것 같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요. 지금 정치권에서는 빨치산이라는 표현이 여전히 거칠게 사용되긴 하지만, 대부분 독자에겐 이미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말이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독자의 마음이 열려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구례 산동면에서 태어났어요. 지금은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제 가족들은 구례 근처에 아직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구례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어디인가요?

타지에 나와서 구례 사람을 만나기 참 힘든데 정말 반갑습니다. 지역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니고요,구례의 어떤 곳이든 다 아름답습니다. 구례는 울릉군 다음으로 작은 동네라서 끝에서 끝까지 걷는 데 20분밖에 안 걸려요. 구례에서 가볼 만한 곳들도 한 군데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관광하기에도 참 좋죠. 일단 지리산이 있고 그 사이로 섬진강이 흘러요. 요즘 섬진강 변에 샛노란 갓꽃이 피는데 그냥 따서 먹어도 좋죠. 

또, 우리 동네에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벚꽃이 많이 피어 있어요.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밤에는 친구와 같이 위스키와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서 벚꽃과 보름달이 보이는 곳에 가요. 강에 달빛이 뽀얗게 비치고 바람 한 점 없는데, 벚꽃 잎 한 장이 딱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친구의 큰 와인잔으로 들어가지 않고 저의 작은 스트레이트 잔으로 들어갈 때, 그럴 때의 풍경이 참 좋죠.

소설 속에는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하지만 산만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잘 조화되어 재미있게 읽히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의도한 것인지요?

이 소설은 태생적으로 산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 3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서 그곳에 방문하는 여러 사람이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또, 소설에는 갈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제 소설에서는 뚜렷한 갈등이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주인공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더 세게 잡아 놓았어요. 뒷부분에서 아버지와 화해의 제스처가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그렇기에 반전이 존재하기 어려운 소설이고 갈등 구조가 약하지만, 인물의 힘으로 버텨내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제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2년간 가까이 살면서 머릿속에서 갈고 닦은 캐릭터예요. 어떤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그런 고민 없이도 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였던 거죠.

아버지의 황금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산에 계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그곳에서 신념으로 인해 죽는 동지들을 무수히 목격 하셨어요. 수많은 죽음이 그분들 곁을 스쳐가며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사실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축복인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는 살면서 세상이 왜 이따위냐, 우리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느냐, 나는 세상을 잘못 만났다는 그런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언제나 두 분께서는 우리가 산에서 이런 일도 겪었는데, 이까짓 게 뭐가 힘드냐는 식으로 사셨죠. 저 역시 그런 마인드로 키우셔서 웬만한 건 힘들다고 느끼지 않아요. 이것도 빨치산의 딸이라는 금수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정지아

1965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0년 『빨치산의 딸』을 출간했고, 1996년 「고욤나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되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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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경

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하지만 시를 자주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