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권의 뒷면] '이렇게까지'와 '이토록'의 차이 -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
아이들을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거든요.
글ㆍ사진 오연경
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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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야기는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다. 지난해 회사 대표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전달받았을 때, 상대는 미메시스 편집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인연을 시작한 순간이다. 나는 그때 처음 '씨앗'을 알았고, 또 이곳이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어린이들에게 작업 공간 등을 제공하는 비영리사업을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엄윤미 이사였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씨앗 재단의 김정민 실장이 출장길에 발견한, 정말 저희가 현재 하고 있고 또 앞으로 만들어갈 실험적인 공간을 앞서 소개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을 꼭 미메시스와 함께 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얘기를 다 듣고 웃으면서 답했다.

"그러네요, 이 책은 미메시스가 만들어야 할 책이네요."



몇 번의 메일이 오간 후에 우리 세 사람, 엄윤미 이사와 김정민 실장 그리고 나는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고, 저마다 똑같은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자리에 나왔다.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 원서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거의 A3 크기의 커다란 책이다. 김정민 실장은 포스트잇을 빼곡하게 붙인 그 커다란 책을 펼쳐 보이며 각 공간이 어떤 곳인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은 미국의 비영리 단체 826내셔널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창의적이고 멋진 환경에서 자신만의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들이 설립하고 지지한 전 세계 글쓰기 센터들을 모은 책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2002년 뜻 맞는 몇몇 친구가 모여 샌프란시스코에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 및 교습 센터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임대한 건물이 소매 상업 지역이라 반드시 건물 전면에서 무언가를 판매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랐다. 그래서 이들은 '해적'을 위한 용품을 팔기로 했고, 현업 해적을 위한 진짜 상점처럼 꾸몄다. 물론 이곳은 해적용품을 파는 '글쓰기 센터'이다. 놀랍게도 보통의 비영리 단체가 여는 공간과 달리, 이곳에는 쇼핑객뿐 아니라 여행하는 사람, 학생과 선생님들 그리고 기부자들이 자연스레 드나들게 되었다. 일단 상점 안으로 들어서면, 방문객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을 제일 처음 볼 수 있지만, 어쩌다 보면 해적용 안대나 의족 같은 걸 사게 될 공산이 크다. 공간이 재밌으니 아이들의 상상력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아이는 이렇게 느슨하고 엉뚱하며 다정하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환영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곳곳의 유사한 단체들이 826내셔널의 아이디어를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다양한 센터를 열기 시작했다. 그런 상상력 넘치는 공간 34곳의 시작과 현재를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이다.

미메시스가 이 책을 번역하고 편집하여 누구나 쉽게 펼쳐 볼 수 있도록 제본 방식도 바꾸어 세상에 내놓았지만, 실제로 이 책은 씨앗 재단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오로지 이 책을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영감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획했고, 자신들 역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환대하는 안전한 공간, 엉뚱하고 재밌으면서 무엇보다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826내셔널의 동지들이었다. 대중적으로 판매하기 어려울 듯하여 미메시스가 책 발간에 주춤거릴 때는 제작비를 지원해 주며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었다.

처음 전화 통화를 했을 때, 엄윤미 이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는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렇다. 책 제목이 첫 대화에서 이미 나온 셈이다. 그런데 나는 최종 제목을 선정할 때, 조금이라도 글자 수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 '이토록'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하지만 씨앗 재단의 설명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거든요."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
국제 청소년 글쓰기 센터 연맹 저 | 김마림 역 | 도서문화재단 씨앗 감수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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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경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출판 기획·편집자.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가 일본 도쿄에서 그림을 배우고 돌아와 2014년 『일러스트레이터의 물건』을 냈다. 현재는 미메시스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