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의 GNI(1인당 소득)이 3만 5천 달러를 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한 해 동안 10.3%가 늘어 3만 1,881달러에서 3만 5,168달러로 뜀박질했다는 것이다. 이 속도로 5년만 증가해도 문제없이 5만 달러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연 전망대로 한국이 5년 내에 5만 달러를 돌파해 미국, 독일,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5대 강국이 될 수 있을까?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장, 증권부장 등을 거쳐 편집국장, 논설실장, 주필을 역임한 언론인 김세형은 『대한민국, 선진국의 조건』을 통해 한국이 처한 정치·경제·사회 상황을 분석적으로 살핀다. 팩트에 입각한 자료 조사와 한국은행 총재, 대학교수, 국내 연구소와 정부 기관 관계자 등의 각계각층 전문가를 취재해 단순 수치상의 선진국이 아닌 실질적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단한다.
『대한민국, 선진국의 조건』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우리나라가 1인당 GNI가 3만 5,000달러 달성 후 갑자기 선진국으로 호칭하는 붐이 일었습니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우리가 아는 미국 등의 선진국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특히 소득 5만 달러나 10만 달러 국가가 즐비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언제 그런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이를 원동력 삼아 이 책을 집필하게 됐습니다.
'2021년 우리나라 1인당 GNI가 3만 5,000달러를 넘어섰다'는 한국은행 발표를 본 적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과연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10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될까요?
일본의 경우, 5만 달러를 잠시 스칠 뻔했다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접어들더니 4만 달러도 깨지고 이제는 3만 달러 초반대로 곤두박질치는 중입니다. 과거 독일이나 영국도 잠시 5만 달러를 넘겼다가 다시 후퇴했다가 재도전하는 형국이었어요. 한국도 2021년 3만 5,000달러를 넘겼다가 2022년에는 그 이하로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항상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것만은 아닌 거지요. 다만 실질 경제 성장률이 견고하다면, 2027년 4만 달러를 넘고 2032년경 5만 달러, 그리고 2054년경 10만 달러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국내 경제 예측 기관들이 시뮬레이션 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얘기이지만 일본과 영국처럼 뒤로 후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결국은 기업과 기술의 힘, 교육 개혁 등에 달렸다고 봐야지요.
2022년 일본의 원로학자 노구치 유키오 교수가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 중 '1인당 국민소득(GNI)에서 한국이 일본을 2023년에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을 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1인당 GNI는 실질경제성장율(Y), 물가(GDP 디플레이터), 인구, 환율 등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를 기초로 2023년도 실질 경제 성장률은 일본이 한국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환율과 물가가 좌우하리라 봅니다. 어쩌면 추월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다만, 일본의 물가와 환율 등을 감안할 때 한일 간 1인당 국민 소득 역전은 2023년, 아니면 2024년에 가능하리라 예상해봅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의 1인당 GNI가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했고, 아시아에서 '잘사는 나라' 하면 일본이 대명사였어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 대만 등으로 바뀌는 것은 참으로 감회가 깊은 일입니다. 특히,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한 역사를 감안하면 통쾌하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기술 패권 다툼이 치열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술 굴기를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가 시급히 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기술 개발이나 혁신은 결국 대학과 기업의 인재가 하는 것입니다. 기술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국가가 각종 여건을 갖춰주는 게 필요한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 하겠습니다. 원초적으로는 이공계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줘야 하며, 이공계 대학 교수의 자질이 세계 최고가 되도록 물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가령 반도체 산업 경쟁은 미국과 일본, 대만, 중국, 독일(EU) 등이 전쟁을 하다시피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은 대만의 TSMC 공장을 유치하고 짓는 데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고, 자국 반도체 기업이 신규 투자에 나설 경우 투자액의 25~30%를 세액 공제로 해주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사회 진입, 불안한 국제 정세와 세계화의 후퇴 등 국내외 크고 작은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인식을 전 세계에 확실하게 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제조 기술에 기반한 수출에 의존하는 체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 1억 명의 절반에 불과한 국가이므로 내수보다는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일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과의 수출 제조 경쟁력에서 초격차를 유지해야만 하며, 특히 반도체 분야의 기술력을 더 강화시켜야 합니다. 또한 이차 전지, 원전, 조선 등의 경쟁력도 계속 높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5만 달러 벽을 넘어 1급 선진국으로 오르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2023년 들어 AI 지원을 받는 '챗GPT 산업'으로 경쟁이 몰리는 것을 봤을 때, 신규 기술 산업에서 한국이 선도적 위치에 올라서야 합니다. 양자 역학, 핵융합, 우주 산업 등 미래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앞으로 유니콘 기업이 얼마나 있느냐가 미래의 힘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입니다. 2022년에 K-방위 산업, 특히 BTS를 위시한 문화 산업 분야에서 전 세계를 향한 한류의 존재감을 키운 것이 제조업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 분야를 더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서비스 산업이 제조업에 비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지만 경쟁력은 아직은 유치한 형편입니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독일 통일 사례를 비교 검토해볼 때, 남북통일이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들까요, 아님 후퇴하게 할까요?
남한 대 북한에 비해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은 인구 비율, GDP 비율 면에서 서독에 짐이 덜됐습니다. 현재 독일 인구는 8,300여만 명으로, 남북한 통일 시 추산되는 인구수 7,700여만 명보다 좀 더 많은 편입니다.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2005년까지 15년 이상 '유럽의 병자'가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고성장 시대에 있었지요. 상대적으로 좋은 시절이었음에도 낙후한 동독의 산업을 끌어올리기 위해 3,000조 원가량의 돈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이제 통일 한 세대(30년)를 넘기면서 분단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서독 출신과 동독 출신 간의 앙금과 지역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독일 통일은 성공작이었다는 평가입니다. 당당하게 EU 1위 국가의 위상을 되찾았습니다.
남북한도 통일을 할 경우, 현재 북한의 GDP 규모가 남한의 5% 수준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30년 이상 선진국에서 다시 중진국으로 후퇴할 것입니다. 남북한 통일 이후에 초인적으로 분투해야 궁극적으로 인구 7,000만 명 이상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AI, 로봇 등 4차 산업 혁명이 심화될수록 좋은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경제 발전 단계를 감안할 때, 북한을 흡수 통일 할 경우, 일자리 문제나 최저 생계비 지원 차원의 복지비 감당에 큰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통일 시기가 늦을수록 AI나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이 심화될수록 어려움은 더 커질 것입니다.
『대한민국, 선진국의 조건』을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나요?
우리나라의 경제 주체들, 즉 정부, 기업, 정치, 노동 계층이 자랑스러운 10만 달러 국가로 도약하는 꿈을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기 위한 큰 그림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모두 일독해주셨으면 합니다. 딱딱한 경제 문제를 굉장히 쉽게 풀어내고자 선진국 사례를 많이 연구해 소개했으므로 수험생이나 대학생들도 접근이 쉬우리라 봅니다.
*김세형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증권, 금융, 경제, 정치 분야에서 주로 취재해왔다. 정치부장, 증권부장 등을 거쳐 편집국장, 논설실장, 주필을 역임했다. UC버클리대학에서 연수했으며 동국대학교에서 언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법대 최고위과정을 이수했다. 2회에 걸쳐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냈고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대법원 양형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거쳤다. 언론인으로서 편집인협회 부회장, 관훈클럽 감사를 역임했다. 삼성언론인상, 장지연언론인상, 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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