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루가 읽은 그림책] 『돌아와, 라일라』
라일라는 지금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다.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가 닿기를.
글ㆍ사진 무루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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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 린드스트룀

혼자 사는 일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늘 답하기가 쉽지 않다. 혼자서도 살 만하냐는 질문에는 "우선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만 좀 더 살아봐야 알겠는데요"라고밖에 말할 수 없고, 혼자 살려는데 걱정이 많다는 말을 들으면 "저도 제 앞날이 참으로 걱정입니다"하며 하소연하기 바쁘다. 2022년에는 경기 안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과 그림책을 읽다가 "요즘 비혼 결심이 흔들리는데 어떡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흔들리면 안 되나요?"

비혼이 일종의 정치적 견해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외로움을 저항의 대상으로 보거나, 결혼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결혼 자체로 치환했을 때다. 혼자 사는 일에 대단한 각오나 비장한 결의가 있는가? 그럴 리가. 그저 여타의 선택들이 그렇듯 삶의 질문들을 하나둘 마주치다 어느 날 혼자가 되었을 뿐이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가장 잘 사는 방법을 선택한다. 어떤 이들은 혼자일 때 자기 자신에 더 가까워진다. 고독을 연료로 작동하는 사람들. 관계의 그물을 느슨하게 짜는 사람들. 이들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대신, 곁에 두고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운다. 그 속에서 때때로 충만한 고요와 자유로운 탐색의 시간을 누린다. 그러나 외로움은 늘 상하기 쉬운 음식 같아서 감정의 미묘한 변화에도 곧잘 우울이나 불안, 자기 연민으로 변질된다. 내밀하게 서로를 결속할 타인이 곁에 없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외로움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우정을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 세계에서 고립되지 않고 어울려 살 것인가. 어떻게 해야 느슨하면서도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외로운 이들을 둘러싼 관계의 면면을 깊이 탐구하는 작가 에바 린드스트룀의 이야기들은 늘 우정에 관한 좋은 힌트가 된다. "반사회적이지는 않지만 순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던 작가의 그림책 속에서 인물들은 자주 소외된다. 갑자기 친구들이 모두 떠나 홀로 남겨지고(『모두 가 버리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나를 뺀 모두가 좋아하며(『나는 물이 싫어』), 소수의 약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강자들에게서 배척된다.(『우리를 사냥하지 마』) 동시에 낯선 행인을 꾀어 집으로 데려가 커피를 대접할 만큼 연결을 갈망하기도 한다.(『Bron』, Alfabeta)

어두운 음영 위로 밝게 채색된 텅 빈 풍경과, 가는 연필선으로 그려진 작고 연약한 인물들은 자주 쓸쓸한 정서를 자아낸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혼자인 채로 지내다가 이따금 누군가와 함께한다. 그러나 주로 그들은 외롭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린드스트룀에게 고독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뜻한다.


ⓒ 에바 린드스트룀

비혼 결심이 흔들린다는 젊은 선생님에게 흔들리면 안 되냐고 되물었던 그날, 나는 마음의 불안을 한번 잘 들여다보시라고 권했다. 가능하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보시라 덧붙였다. 좋은 사람이라니 참으로 막연하다. 삶의 고민을 나눌 만한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폴란드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 식으로 말하면 다정한 사람이겠다. 그는 '다정함이란 가장 겸손한 사랑의 유형'이며,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본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다정함을 통해 우리는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다정한 서술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정도라면 좋은 사람에 대한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막연하다면 에바 린드스트룀의 『돌아와, 라일라』를 읽으면 된다. 사실 이 책은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드물게 외로움이 중심을 비껴나 위성처럼 그리움 주위를 공전하는 이야기다. 책 속에는 모험을 하는 소녀와 그를 인도하는 목소리가 있다. 예언과도 같은 목소리와 그의 수호를 받는 라일라 사이의 관계를 해석하는 동안 궁금해질 것이다.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떻게 그는 라일라 앞에 때맞춰 에어 매트와 산딸기 요구르트, 나무다리와 정류장을 놓아주는가. 혹시 이것은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인가.

그렇다면 그는 이 어린 모험가를 위해 가장 '다정한'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12개의 시퀀스 가운데 앞선 여덟 장면에서 라일라에게는 충분한 모험의 시간이 주어진다. 위험하니 얼른 돌아오라거나, 함께 가자는 권유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는 떨어진 채로 친밀함을 나누는 법을 안다. 타인의 고독을 존중하는 법 또한 안다.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신비로움과 다정함은 린드스트룀이 제시하는 하나의 전망이다. 세상의 라일라들은 어떻게 기다리는 이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라일라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정말로 집을 떠난 아이일 수도 있고, 관계가 소원해진 가족이나 연인, 친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림책은 해석의 폭을 넓게 펼쳐 보았을 때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가 발견된다. 그러니 이렇게 읽어본다. 라일라는 지금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다.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가 닿기를.



돌아와, 라일라
돌아와, 라일라
에바 린드스트룀 글그림 | 이유진 역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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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 비혼이고 고양이 '탄'의 집사이며, 채식을 지향하고 식물을 돌보며 산다. 그림책 『섬 위의 주먹』, 『마음의 지도』, 『할머니의 팡도르』를 번역해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