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단답형 퀴즈의 정답 맞추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당위성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조차 E와 S, G가 어떻게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지, 기후위기가 금융 및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전략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의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ESG를 관련자와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무엇보다도 불과 몇 해 전에야 화제가 된 이 개념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 텍스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100대 기업 ESG 담당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국내 최고 수준의 ESG 전문가와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들이 ESG 실무자들로부터 받은 질문과 답을 추려 기업에 몸담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이슈로 정리한 책이다.
이번에 『100대 기업 ESG 담당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 책을 출간하셨는데, 두 작가님과 책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2009년 영국 리즈대 지속 가능성 대학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요즘 전성기를 일컫는 말로 곧잘 '리즈 시절'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 말이 지칭하는 '리즈'라는 도시에 있는 대학입니다. 한 명은 중견 기자로, 또 한 명은 사회 출발을 앞둔 20대였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친하게 지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 명은 언론인으로, 또 한 명은 전문 기관의 연구원으로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더욱 궁구했습니다. 그 사이 지속 가능성은 공유가치(CSV),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기업 시민, ESG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점점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근년에 국내에서도 열풍이 불어 기업이나 기관뿐 아니라 취준생, 일반인들도 ESG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이론서를 넘어 실제적인 도움이 될 만한 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저희가 부족한 실력이지만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이 책은 ESG의 핵심 조건과 배경, 기후변화와 탄소 중립, 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시와 평가, 입문자와 취준생을 위한 가이던스 등을 담고 있습니다. ESG 스페셜리스트가 되려는 이들에게 분명한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ESG 이전에는 CSR이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모델이었습니다. CSR을 대신하여 ESG가 새롭게 대세가 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CSR은 환경, 사회, 경제의 3대 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다양한 기업 활동입니다. 직원, 소비자, 환경,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지만, 측정이 어렵다 보니 매우 막연한 말로 여겨진 것도 사실입니다.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의 피터 배커 회장은 CSR이 대부분 기부에 그치고 비즈니스 모델에 적절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2014년 'CSR은 죽었다. 끝났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기부 행위는 CSR의 일부분이고, 전략적 CSR을 통해 훌륭히 기업을 이끌어간 사례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만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SG 역시 모호함이 있지만 CSR보다는 기업의 행위를 더 정확히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한 지표가 있습니다. 기업이 어떻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가, 어떻게 직원을 다루는가, 어떻게 신뢰를 쌓고 혁신을 북돋우는가, 어떻게 공급망을 관리하는가와 같은 점을 지표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 현장에서 실천하기도 더 쉽습니다. 저감한 탄소 배출량, 용수량, 에너지 사용량 등을 측정하고, 해마다 목표를 가지고 관리해나갈 수 있습니다. ESG에는 환경, 사회, 투명 경영(거버넌스)의 기회와 위기 요소를 정성적인 것이 아니라 정량적으로 어느 정도 나타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투자자들도 기업의 ESG 성적표를 보고 투자를 결심하게 되면서 ESG가 대세가 됐습니다.
ESG가 화두가 된 지도 2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ESG 2.0에 관해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요. 저자들이 정의하는 ESG 2.0은 무엇이며, 이 시점에 어떤 주체들이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근 2~3년 ESG 열풍이 불었다가 요즘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저성장, 전쟁과 코로나 팬데믹, 에너지 위기와 보호 무역주의 때문에 ESG도 유행이 지나가는 것 아닌가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눈앞의 생존 경쟁에 내몰리며 ESG라는 지속가능성의 영역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ESG는 더욱 내재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내재화는 기업 활동 프로세스에 뿌리내린다는 말인데요.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저희가 ESG 2.0으로 규정하는 'ESG의 제도화'에 있습니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금융 감독 강화, ESG 정보공시 의무화 등을 통해 기존 시장 규칙에 ESG가 편입돼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기업의 ESG 성과를 시장의 보상 체계와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금융 기관은 금융 리스크 관리 체계 및 투자 결정 과정에 ESG 요소를 어떻게 반영하고 공시해야 하는지, 소비자는 어떻게 상품 및 서비스의 ESG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지, 기업은 전사적 ESG 경영성과와 상품의 ESG 정보를 어떻게 공시해야 하는지 등을 다룹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게임의 규칙에 ESG의 핵심인 장기주의와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기업의 ESG 담당자들은 실무적으로 어떤 부분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해법으로 어떤 방안을 제시하실 것인지요?
ESG 담당자의 고민은 사실 기업마다, 처한 상황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ESG 공시와 평가 대응,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 탄소 중립 이행 등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ESG 평가의 핵심은 기업의 ESG 성과입니다. 하지만 성과가 좋다고 항상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ESG 평가는 기업이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보여주고자 하는 정보가 아닌, 평가 기관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일부 ESG 요소에 대한 성과가 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 기관은 ESG 성과가 낮은 기업보다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기업에 더 큰 패널티를 부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ESG 공시는 의무화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것이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기업 공시는 투자자 및 기타 이해 관계자에게 기업의 ESG 전략과 성과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흐름에 저항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가 사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고 기후변화 리스크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의류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지 않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변화(친환경, 가치 소비 등)는 매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 요인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와 관련된 공급망 리스크, 기술 및 소비 패턴 변화 등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럴 때 기후 공시를 위해 만들어진 TCFD(기후관련재무정보공개협의체) 권고안의 기후 리스크 공시 요구 사항을 전략 수립에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전세계 7000개 이상의 기업이 탄소 중립 목표를 수립했거나 수립을 서약했습니다. 하지만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이행 전략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세부적인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목표부터 발표하는 것이 어렵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먼저 목표를 굳건히 하고 구체적인 이행 방법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 국제사회와 글로벌 기업의 방향입니다. 과감하게 목표를 수립하고, 기업 간 연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ESG 분야로 취업을 생각해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SG 분야에는 어떤 일자리가 있으며, 전망은 어떠하리라 생각하시는지요?
ESG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ESG라는 용어가 시작된 사회책임투자(SRI)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더 큰 관점에서의 지속 가능성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그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성장은 여러 분야에서 공백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 세계적인 ESG 인력 부족 현상입니다. 한국은 특히 더 심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8.4%가 ESG 경영의 애로 요인으로 전문 인력의 미비와 ESG에 대한 내부 전문성 부족을 꼽았습니다. 유례 없는 취업난 시대에 기업이 구인난을 겪는다니 아이러니입니다. 더구나 ESG 관련 직업은 상대적으로 급여, 복지 수준 등 근로 여건이 좋아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좋은 일자리' 또는 '보수 높은 일자리'입니다. ESG가 공시 의무화 등 제도화의 길을 걸으면서 전망도 매우 좋은 상황입니다.
ESG 담당자는 기업의 ESG 팀 혹은 사회 공헌팀 등에서 ESG를 총괄하거나, 별도의 ESG 조직이 없는 경우에는 총무, 환경, 영업 부서에서 관련 업무를 맡기도 합니다. 금융 기관에서도 비슷한 ESG 조직들이 있으며, 자산 운용 부서에서는 투자 대상 자산의 ESG 정보 수집과 분석 및 투자 반영 등의 업무를 맡기도 합니다. 컨설팅사의 활약도 매우 큰데요. 여기에는 글로벌 경영 전략 컨실팅사, 회계 법인의 컨설팅사, 경영·환경 컨설팅사들이 있습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ESG 관련 법·제도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ESG 관련 법률서비스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무법인들이 ESG 연구소 등 관련 조직을 두고 변호사가 아니어도 관련 전문가들을 고용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또, ESG 평가사는 기업의 ESG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해 금융 기관이나 연기금, 자산 운용사 등에 판매합니다. 신용 평가사들도 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고요. 지속 가능 경영 보고서나 온실 가스 배출량 등을 검증해주는 검증기관도 다수 생겨나고 있습니다. ESG는 관련된 분야가 많다 보니 복잡하고 어려워 보입니다만,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기업과 우리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는 큰 그림을 보고 나아간다면 금세 익숙해질 수 있고, 관련 일을 한다는 것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겁니다.
이번에 출간한 책을 어떤 분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으신지요? 그분들이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가장 좋을까요?
기업인, 투자자, 정책 입안자와 집행자, 기업의 광범위한 이해관계자, 청년 세대 모두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자기 삶에서, 업무 현장에서 ESG를 어떻게 실행할지 잘 모르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복잡하고 헷갈리는 알파벳 약어 이름들을 '알파벳 수프'라고 부르는데, 수많은 ESG 관련 용어들이 책에 등장해 독자께서 기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참고하시도록 책 뒤에 「용어정리」 파트를 넣어 두었습니다. 여러 모로 독자께서 항상 곁에 두고 활용할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00대 기업 ESG 담당자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을 읽은 독자와 앞으로 읽으실 독자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서문에도 썼지만, 저희는 이 세계가 나아갈 항로는 이미 분명히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ESG의 다른 이름인 '지속 가능성 항로'입니다. 기업(혹은 공기관, 국가, 심지어 개인까지)이라는 크고 작은 수많은 비행기가 이미 엄청난 속도로 그 항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한 비행기도 많고, 심지어 지속가능하지 않은 항로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비행기에 타고 계신지요?
지속가능성(혹은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현재 세대가 필요를 충족'한다는 뜻입니다. 기후위기로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는 지금, 탄소를 감축해 온난화 현상을 저지하고, 미래 세대가 성장의 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2022년 4월 IPCC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기후변화 정책으로는 지구 평균 기온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더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태한 영국 리즈대(University of Leeds)에서 지속가능성(기후변화) 석사를 마치고, 2011년부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글로벌 기후정보공개 프로젝트인 CDP의 한국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으며, RE100, SBTi, PCAF 등 글로벌 이니셔티브도 맡고 있다. 국민연금의 ESG 투자를 위한 국민연금법 개정작업에 참여했다. 매년 CDP 한국보고서, ESG 금융보고서, 석탄금융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정현상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92년 동아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시사 잡지에서 정치, 경제, 환경, 문화 분야를 취재하고 글을 썼다. 영국 리즈대에서 지속가능성(비즈니스, 환경 & 기업책임) 석사를 마쳤고,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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