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화요일, 이승훈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가 우리가 꼭 알아둬야 할 의학 상식을 소개합니다. |
우리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건강이 걱정되어 건강 검진 등을 해드리겠다고 하면, 자식들의 경제 생활을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흔히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거절하시곤 한다. 물론, 속으로는 좋으시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내 몸을 잘 알 수 있을까? 필자가 저서에서 이게 왜 불가능한지 자세히 언급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몸의 이상을 제대로 알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우리 몸은 여러 장기가 다양한 수준의 자율성(autonomy)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심장이나 내장 기능은 우리가 특별히 명령할 일은 없다. 그런 만큼 각 장기의 기능은 마치 지휘관이 따로 있는 것처럼, 장기의 기능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런 경우, 너무 열심히 일하는 시스템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발생되어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지주막하 출혈과 같은 심각한 뇌출혈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선천면역계는 이를 외부 물질 내지는 외부 침입자라고 판단하고, 출혈된 뇌를 단핵구나 대식 세포가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광범위한 뇌수막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정도가 적절하다면 뇌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지만, 너무 과다한 면역 반응으로 인해 뇌가 완전히 망가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그 예다. 선천면역계가 한 개체의 전체 목표를 이해한다면 이런 과잉 반응을 할 수 있었을까? 선천면역계는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를 대단히 열심히 했을 뿐이다. 즉, 우리 몸은 각 장기의 자율성을 몸 전체의 총합적 이득을 위해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얘기다.
우리가 우리 몸의 이상을 느끼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대개 우리 몸은 어떤 장기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도 그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이상 여부를 알아챌 방법이 거의 없다. 즉, 통증이 없는 작은 암이 생겼어도 그 장기의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암의 존재를 알 수가 없다. 반대로 어떤 문제가 장기의 기능에 오류를 야기한다면(기능 항진 혹은 저하), 그 때는 우리가 이상이 있다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장기의 오작동은 느낄 수 있지만, 기능 저하가 없는 장기 세포의 소실은 우리가 자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간은 80%의 세포가 갑자기 사라져도 거의 정상 기능을 유지한다. 신장은 그 기능을 사구체 투과율(eGFR: estimated glomerular filtration rate)로 판단하는데, 정상의 50% 수준이 되어도(정상 수치는 60 ㎖/min/1.73㎡ 이상) 증상을 느끼는 환자는 별로 없다. 폐는 CT를 찍지 않는 이상 상당히 진행된 암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장도 심박출률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져도 숨이 차다고 얘기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다. 필자의 클리닉을 방문하는 많은 환자들도 MRI에서 상당히 진행된 뇌 위축과 소혈관 질환 소견을 확인해도, 대개는 일상생활에서 문제가 없다고 얘기들을 한다. 대부분의 우리 장기는 기능의 작은 이상은 혼자 감내하면서, 우리에게 그 희생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일단, 내가 내 몸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절대 자기 몸은 자기가 모른다. 의사조차도 자기 몸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건강 검진을 남용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검사 남용은 과잉 진단, 방사선 노출, 수면 중 사고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면 관계로 자세한 얘기는 필자의 저서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를 참고해줘도 좋겠다. 아무튼 여러 사정을 감안한,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최선의 건강 증진 방법들을 열거해 보겠다.
상투적이지만, 건강생활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얘기할 것은 아니고, 딱 다섯 가지만 언급하겠다.
1) 적당한 운동
2) 적절한 체중 관리
3) 금연
4) 절주
5) 꼭 필요한 약 먹기, 영양제는 대개 불필요
이것만 잘 지켜도 우리 장기와 면역 시스템이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체중 관리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 이유는 당사자의 나이, 직업, 신체 능력, 가정 환경 등등에 따라 너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을 스스로 잘 판단하라는 의미다. 영양제의 문제는 앞 칼럼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영양제 보다 환자인 경우 자신에게 필요한 약을 잊지 않고 잘 먹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 다음엔 건강 검진에 관해 필자가 강조하는 몇 가지다.
첫째, 30세가 넘었다면 혈압을 가급적 자주 재보도록 하자. 적어도 일주일에 1-2번 정도가 좋을 것 같다. 혈압을 재려고 과거처럼 약국이나 병원을 방문할 필요는 이젠 없다. 수은 혈압계가 제일 정확하다는 인식은 버려라. 이미 고혈압은 공식 가이드라인에서 전자 혈압계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요즘은 스마트 워치의 발달로 혈압을 재는 기능도 나오는데, 아직은 불완전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기술의 발전이 일반인들의 고혈압 진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혈압 측정은 특별한 일이 아니니, 집에서 자주, 편한 마음으로 재도록 하자.
둘째, 40세가 넘었다면 1년에 한 번 당화혈색소(HbA1c)와 저밀도 콜레스테롤(LDL cholesterol)을 측정해라. 요즘 당뇨 진단에는 당화혈색소가 혈당 측정보다 훨씬 편리하다. 이 검사는 금식도 필요 없다. 당화혈색소가 6.0%를 넘는다면 당뇨 위험군이고, 6.5%를 넘는다면 당뇨로 진단된다. 일중 변동이 심한 혈당 검사로 당뇨 여부를 걱정하느라 씨름할 필요가 없다.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일반인 기준으로 160 mg/dL을 넘는다면, 고지혈증으로 진단되고, 다른 위험인자가 있다면 70 혹은 100 mg/dL만 넘어도 고지혈증이 될 수 있다. 고지혈증의 진단이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 판단은 담당의사에게 맡기면 좋을 것 같다. 그보다 여러분들은 간단한 혈액 검사를 1년에 한 번씩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셋째, 40세를 넘었다면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5년에 한 번 대장 내시경을 추천한다. 내시경 검사는 오염이나 사고만 아니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안전하게 잘 할 수 있는 병원에서 해당 주기에 맞춰 검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위암과 대장직장암이 5대 암에 항상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검사들이 주는 가성비는 매우 크다고 본다.
넷째, 초음파 검사는 여러 번해도 몸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 권고되는 만큼 해도 된다. 하지만, 갑상선암은 과잉 진단의 대표적인 사례이니 간질환, 자궁, 난소 등의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복부 초음파가 더욱 유용할 것이다.
다섯째, 암 검진을 위한 CT는 필요한 경우만 시행한다. 50세 이상의 30갑-년을 넘는 흡연자 혹은 15년 이내에 금연한 사람은 1년에 한 번씩 저선량 CT를 시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CT를 시행하는 것이 과잉 진단 및 방사선 위험으로 인해 오히려 추가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복부 CT는 일반적으로 권고되지 않으니 의사가 필요에 의해서 시행하자고 하는 경우만 시행한다. 굳이 확인하고 싶다면 복부 초음파를 시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결론적으로, 건강 검진 센터의 암 검진에서 CT는 의사가 권유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자가 원해서 시행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섯째, 뇌 MRI는 50세를 넘었다면 한 번쯤은 해보기를 권유한다. 단,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서 MRI 비용은 병원마다 아주 차이가 크다. 큰 병원일수록 비용이 크게 올라가니,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렴하게 시행할 수 있는 좋은 병원을 발품을 팔아서 잘 찾아보도록 하자.
이상이 필자가 제시하는 가장 슬기롭다고 판단하는 건강 검진 방법이다. 실제로, 필자는 위에서 권고한대로 검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비싼 비용을 들이고, CT나 내시경 등 검사를 많이 하면 건강해질 것이라 생각하는데, 검사마다 다양한 부작용과 합병증 및 과잉 진단의 문제가 있다. 비싼 검사를 자주, 많이 하는 것과 건강 수준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건강 검진 센터에 내 몸을 맡기고 풀패키지로 검사하는 것보다는 이 정도만 원칙을 지키고 검사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승훈(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자. ㈜세닉스바이오테크 대표이사, (사)한국뇌졸중의학연구원 원장 및 뇌혈관대사이상질환학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졸중의 기초와 임상에 관한 200여 편의 국외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신경과학회 향설학술상, 서울대학교 심호섭의학상, 유한의학상 대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및 보건복지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봄봄봄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