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다양한 이유로 갑질이 가능한 사회다. 부와 사회적 지위, 성별, 나이, 외모 등등. 어느 순간부터 이 기준들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못난 존재로, 낙오자로 정의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무명씨'들의 과정은 불안하고 외롭다. 그런 우리 무명씨들이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나무 숲 같은 책 『배우의 목소리』가 출간됐다. 30대, 여성, 무명 배우로 살아오며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낸 8년 차 배우이자 신인 작가 '연지'를 만나봤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종종 TV에 나오는데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사람, 다재다능하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잘하고 싶은 사람, 자꾸 일을 벌이는 사람, 글 쓰는 배우, '연지'라고 합니다.
첫 책을 낸 소감은 어떠신가요?
작가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저 마음이 아프고, 갈 길이 막막하게 느껴지고, 일을 해내고 나서도 뭔가 시원해지지 않을 때마다 글쓰기 플랫폼에 일기 같은 글들을 썼어요. 저에게 대나무 숲이 필요해서 썼던 글들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안 좋은 일뿐만 아니라 기쁜 일도 쓰고, 좋은 일도 쓰고, 자랑하고 싶은 것도 쓰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출간이라는 욕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이 나온 지금, 설레고 떨리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저의 날것들이 모두 들어있어서요. 책이 출간되기 직전에 이런 두려움을 편집자님께 말씀드렸더니 이 과정을 즐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자님의 말처럼 이 감정조차 즐기려고 노력 중입니다.
『배우의 목소리』 내용 중 독자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하는 꼭지가 있으시다면요?
하나만 고르자면, 「무교니까 용서를 바라지 마세요」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말로 상처받았던 경험은 다들 있을 거예요.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그 상처는 더 아프고 쓰리죠. 그런데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무조건 용서를 해 줘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어쩌면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고요. 누군가는 용서만이 나 자신의 평안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게 맞는 걸까요? 이런 저의 생각을 나누고 싶어 추천해 봅니다. 독자분들은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거든요.
30대 여자, 무명 배우가 보는 이 세상은 어떤가요?
30대의 여자, 무명 배우인 저는 365일 할인 매장에 빼곡하게 쌓여있는 상품 같아요. 잘 안 팔리거든요. 20대부터 꾸준히 연기를 해 오며 나름 차근차근 쌓아온 경력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불쑥불쑥 나이를 물어보고 저의 한계를 정해버리더라고요. 저는 아직 유통기한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이렇게 제 스스로를 상품으로 비유하는 것도 씁쓸하지만 30대 여성이자, 무명 배우인 제가 바라본 세상은 이렇게나 냉정한 곳이었어요. 제 연차가 만든 커리어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이만 남아 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만큼 서러움과 자격지심도 생긴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연기하는 게 행복하고 좋습니다. 서러운 경험들이 많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일을 하면서 느끼는 벅찬 감정들이 더 깊이 남아 있거든요. 다른 것을 하며 행복할 수 없다고 느끼기에, 오늘도 버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적인데요. 어떻게 버티고 계신가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캐스팅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을 때,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 촬영했던 장면이 편집되었을 때 등등의 일에 크게 상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짐하는 것만큼 잘 되진 않지만요. 그래도 제가 버텨 오면서 느낀 건, 역시 멘탈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마음이 무너지면 몸에도 적신호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글도 쓰고 매일 밤 감사 일기도 쓰며 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건강한 마음으로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다 보면,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거든요.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로 만든다고 할 때, 꼭 넣고 싶은 대사나 장면이 있나요?
「168cm에 55kg도 뚱뚱하다고 해서요」라는 꼭지를 한 에피소드로 만들고 싶어요. 이 꼭지의 제목은 실제로 제가 들은 말이거든요. 이 말을 들은 이후 저는 갖가지 무리한 방법으로 체중을 감량하려고 했어요. 결국 식이장애까지 걸렸었어요. 그런데 저처럼 보여지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체중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식이장애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본인의 건강 상태에 맞는 체형을 고려하지 않고 말이에요. 그래서 객관적으로 시각화한 모습을 통해 잘못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 에피소드가 지금 우리 사회의 무례한 오지랖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키와 몸무게에 대한 지적이 여자에게만 한정되어 있지도 않잖아요. 남성들도 남자는 키가 몇 cm는 돼야지, 강해야지, 남자다워야지 이런 것들을 강요받으니까요. 여러 가지로 함께 얘기 나눌 여지가 많은 내용인 것 같아요.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대나무 숲은 마음속 답답함을 해소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답답함이 긁어놓았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제가 글로 저만의 대나무 숲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각자가 가진 마음속 상처에 밴드 하나 붙이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으신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습니다. 무명 배우라는 조금은 낯선 세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가끔 마주치는 옆집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봐주세요. 제가 책에도 썼지만, 저는 그저 '연기'라는 일을 하는 '직장인'이나 다름없거든요. 편하게 읽으시면서 저와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글로 여러분을 만나게 된 이 옆집 사람은 앞으로 다양한 작품에서 찾아보실 수 있도록 배우로서도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연지 8년째 연기하는 사람. 사소한 일정부터 순간의 기분까지 잊고 싶지 않아 씁니다. 글에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쓰는' 배우가 될 것 같습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