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현의 영화적인 순간] 나의 내장을 줄게, 너의 기억을 다오
이들은 그저 흐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지나간 이야기를 서로에게 ‘말’하고, ‘듣는’다. 그리고, 이윽고는 서로에게 ‘뜯어먹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서로에게 얽히고, 기대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글ㆍ사진 한정현(소설가)
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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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아마 실제 두꺼비 집짓기 놀이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이 노래의 가사를 들어는 봤을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노래는 지역마다 일부분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 노래를 부르며 기원하는 소원은 단일하니, 바로 ‘집’에 대한 열망이다. 오래전부터 한 지역에서 전해지는 노래나 이야기는 무언가 그 지역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두렵게 생각하는 것이 포함된 게 아닌가 싶다. 

가령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운디네>는 물의 정령인 '운디네'에게서 그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이 '운디네'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영혼이 생긴다고 전해진다. 진정한 인간이란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비로소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유럽인들이 생각이 담겼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10여 년 전만 해도 매해 여름 드라마로 소환되었던 구미호는 남성의 간을 먹어야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 2020년에 펴낸 소설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조선 시대 여성 귀신이 많은 것은 남존여비의 사상 아래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이 귀신이 되어서라도 인간의 대접을 받고자 함이었다. 구미호 또한 이런 한을 드러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메콩 호텔>(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주요 모티프인 인간의 내장을 먹고 살아가는 귀신 ‘폽’은 어떠할까. 태국은 조선만큼이나 귀신과 관련된 설화가 많다고 한다. 그런 태국에서도 이 폽은 ‘국민 귀신’이라 불릴 정도로 오랜 기간 회자되어 온 존재다. '아피찻퐁'은 이 영화 속에서 폽에 관한 영화인 <엑소시스트 가든>을 만드는 감독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메콩강이 보이는 호텔의 로비 테라스에서 아피찻퐁과 기타리스트인 남성과 폽에 관한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기타리스트와 아피찻퐁의 대화는 곧 분절되듯 끊어지고, 그 자리엔 기타 선율이 흐르듯 채워진다.

영화 안에서 음악이 주로 특정 신이나 인물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다면, 이 영화에서의 기타 선율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냥’, ‘계속’ 존재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기타 선율은 마치 질곡의 동남아시아 역사를 모두 품은 채 끝없이 흘러가는 메콩강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태국인에게는 분명히 존재하는 귀신 ‘폽’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이 기타 선율 위로 다시 한 번 흐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야기들이다. 기나긴 세월 동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반복되는 고난의 역사를 견뎠지만 기록되지 못해 사라져 버린 ‘보통의’ 태국인들의 이야기. 이 영화는 그런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들의 대화는 영화 속에서 흐르는 메콩강과 함께 내내 지속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는 인간과, 영화와, 귀신과, 음악과, 강물과, 역사가 곳곳에서 흐르고 또 흘러간다, 물론 각자의 방향으로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은 아피찻퐁이 신작 <엑소시스트 가든>을 만들기 위해 메콩 호텔에 투숙하며 촬영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헌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영화 속 영화의 리허설인지, 아니면 실제 메콩 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경우엔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구분하는 시도를 멈췄는데, 그러자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며 동시에 지워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과, 귀신과, 동물과, 죽음과 삶에 대한 구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귀신 '폽'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젊은 여성 ‘폰’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인간인 딸과 귀신인 어머니는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남성이 과거의 이야기를 이미 경험한 듯 꺼내기도 하고, 반면 이미 죽은 이가 현재의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를 내기도 한다. 가령 귀신 폽은 어느 순간엔 확실히 죽은 사람처럼 메콩강 저편인 라오스 난민들이 지원을 받는 것이 부러웠다는 과거 어느 시절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범람 위기인 메콩강을 바라보며 살아있는 사람처럼 걱정과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도, 역사도, 존재의 경계도 사라지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이 영화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도,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또 어느 순간엔 반려인에게 잡아먹힌 동물의 이야기로 짐작되기도 한다. 

종내는 이 이야기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인간과 귀신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와 현재가 무너지는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느슨하고 거친 연결이 낯설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이 세계는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영화 속에서 경계를 나누고 이야기를 구분 짓는 것은 무용함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 속의 폽은 이 무용한 세계 속에서 대체 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는 세계를 이루는 많은 것들이 등장하지만 폽은 이들 가운에 유일하게 죽지 않은 존재이며 살아있지 않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 죽지 않는 존재인 폽은 분명히 귀신이지만 심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등장인물 주변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폽은 영화 속에서 뜨개질을 하며 전래 동화를 이야기해주는 마음씨 좋은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런 폽이 딸에게 꺼내놓는 이야기는 지난 육백 여년 동안 자신이 보았고 겪었던 태국의 비극이다. 세월이 지나도 반복되었던 끔찍한 학살과 고난을 견뎌야 했던 태국인들의 삶, 폽은 이것이 어느 순간 딸인 폰 또한 겪어야 할 미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폽이 되어서도 딸에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 시절을 견디면 좋은 시절이 올 줄 알았다는 한탄을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영화는 이렇듯 그저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일반인들의 역사를 메콩강에서 건져 올려 드러내고 ‘전달’한다. 귀신이 인간에게로, 인간이 동물에게로, 동물의 죽음으로써 인간에게로, 그리고 다시 인간이 인간에게로. 그렇기에 자신이 귀신이라고 하는 폽이자 어머니의 말을 듣는 딸 폰 또한 폽이자 어머니가 전달하는 그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듣고, 위로하며 폽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해 또 다른 이에게 전한다.



그런 모습은 ‘폰’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폰의 내장을 뜯어먹는 폽의 모습을 보고 남자가 두 손을 모으는 모습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있지만, 무언가 기도를 올리는 간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미워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자 이미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 그렇기에 이들은 반복되는 삶을 한탄하는 폽에게 ‘곁에 있어주겠다’고 위로를 전하기도 하고, 몇백 년을 기다려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서로에게 그때도 함께 하겠다고 믿음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이들은 그저 흐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지나간 이야기를 서로에게 ‘말’하고, ‘듣는’다. 그리고, 이윽고는 서로에게 ‘뜯어먹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서로에게 얽히고, 기대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영화는 어쩌면 맨 첫 장면에서 모든 것을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어머니이자 폽인 존재와 폰, 폰과 그의 연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맨 처음 기타리스트와 감독이 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기타 선율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문자화되지 않았으나 분명 거기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고난을 통과한 인간들과 동물들과, 그리하여 귀신이 되어버린 어머니가 되는 폽,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메콩강의 물’이 되는 이 영화, 구술로써 이어지는 역사. 그렇다면 아마도 메콩강에 태국인들이 묻어 놓은 폽은 내장을 꺼내 먹혀도 기억되고 싶은 ‘보통의 사람’들의 바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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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소설가)

한정현 소설가.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