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다정한 냄새 - 『할머니의 식탁』
감각적인 콜라주 작업으로 주목받는 신예 작가 오게 모라의 그림책 『할머니의 식탁』은 한국어판 제목 그대로 할머니의 식탁에서 흘러나간 맛있는 토마토 스튜 냄새에 이끌려 모여드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글ㆍ사진 이상희(시인, 그림책 작가)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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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산골 마을의 휴일 저물녘은 사뭇 고전적입니다. 숲 바람에 저녁밥 냄새가 떠다니거든요. 창 너머 논일 들일을 끝내고 땀 밴 연장과 도구를 수습하는 이가 보이면서, 띄엄띄엄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이 집 저 집에서 흘러나오는 밥 냄새, 국 찌개 냄새가 훅 끼칠 때엔 먼 시간 저쪽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아득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낮잠을 너무 깊이 자고 깨어나서는 학교에 늦겠다며 어머니에게 도시락을 재촉했던 저녁, 집집마다에서 흘러나오는 밥 냄새를 맡으며 외출한 어머니를 기다리느라 어스름 골목 어귀를 고집스레 지켜 서있던 여섯 살 바기 아이를 어르고 얼러 굳이 밥 때를 챙기려 애쓰던 이웃 아주머니네 둥그런 식탁 앞에서의 저녁, 입도 짧고 식욕도 없어 밥알을 께적거리다가 번번이 식탁 예절을 지적받는 바람에 심란했던 저녁과 저녁이 줄줄이 떠오릅니다.



감각적인 콜라주 작업으로 주목받는 신예 작가 오게 모라의 그림책 『할머니의 식탁』은 한국어판 제목 그대로 할머니의 식탁에서 흘러나간 맛있는 토마토 스튜 냄새에 이끌려 모여드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국자로 냄비를 휘저으며 음식 맛을 보는 모습의 표지를 열면 동네 지도가 펼쳐지고, 냄새의 궤적을 따라간 오른쪽 아래 “‘오무’는 나이지리아의 언어 이보어로 ‘여왕’이라는 뜻입니다.”의 안내문이 이야기 배경을 암시해요. 이 문장은 원서 제목 ‘땡큐, 오무(Thank you, Omu!)’에 연동되는 탓에 독자의 첫눈에는 자칫 알쏭달쏭하게도 여겨집니다만, 다음의 판권 페이지 작가 소개를 읽고 나면 ’작가의 할머니‘와 관련된 호칭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나이지리아 출신 할머니는 ‘오무’로 불리며 맛난 음식을 베푸는 여왕처럼 작가를 먹이고 이웃들을 먹였겠지요. 그림책 작업 짬짬이 할머니의 레시피로 요리하는 게 취미라는 이 작가의 소망 또한 할머니처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며 따뜻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요.

이야기의 시작은 길모퉁이 건물 맨 꼭대기 층에서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 오무가 푸짐하게 장을 봐서 오직 자신을 위한 저녁 요리로 토마토 스튜를 준비하는 장면입니다. 재료를 넣고 간을 맞춘 다음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고는 아주 흡족해서 외치지요. “바로 이 맛이야! 오늘은 최고의 저녁을 먹게 될 거야.” 그러고는 제대로 맛을 낼 때까지 스튜가 끓는 동안 읽다 만 책을 읽으러 가는 오무는 당당하게 자기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독립적인 여성입니다. 

그래서 더욱 토마토 스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며 냄새 속에서 오무가 읽는 게 대체 무슨 책인지 궁금합니다만, 계속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요. 너무도 맛있는 냄새가 동네로 퍼져나가는 탓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 맛있는 냄새가 뭐냐고, 진짜 맛있겠다고, 복도에서 놀던 이웃집 아이가 문을 두드린 거지요. 오무는 물론 기꺼이 스튜를 나눠줍니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이웃집 아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근처에서 일하거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줄줄이 들이닥쳐요. 경찰관이며, 핫도그 장수며, 가게 주인이며, 택시 운전수며, 의사며, 배우며, 변호사며, 무용수며, 제빵사며, 미술가며, 가수며, 운동선수며, 버스 운전사며, 공사장 일꾼이며, 심지어 시장님까지 오무는 스튜를 나눠주고, 나눠주고, 나눠줍니다.

저녁으로 먹으려 했던 스튜가 동이 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낙담한 오무 앞에 일어난 멋진 반전으로 이 다정한 이야기는 완성됩니다. ‘점점 줄어들지만 오히려 최대로 커진 이야기’를 구상했던 작가의 기획 아이디어가 성공한 겁니다.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전해 내려오는-베풀고 베풀고 베풀다 동이 났으나 더없이 완벽한 보상을 받게 된다- 낯익은 서사를 새로운 감흥으로 만나게 해준 것은 바로 작가의 콜라주 이미지 덕분입니다. 오려 붙인 색색의 종이며 차이나 마카(세라믹 마카)와 물감 색연필 등의 채색도구로 조합한 이미지와 대담하고도 세심한 연출은 등장인물은 물론 우리 모두를 오무의 다정한 저녁에 초대합니다.



할머니의 식탁
할머니의 식탁
오게 모라 글그림 | 김영선 역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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