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보르스카는 디킨스를 일컬어 “인류도 사랑하지만 인간도 사랑한 드문 존재”라 했다고 한다. 이 말을 기억하는 이유는 나는 오랫동안 인류는 사랑하지만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나? 회사와 집을 오가는 공항철도와 9호선 지옥철에서 나는 매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4월 중순부터, 거짓말처럼 약속이 많아졌다. 심지어 내가 먼저 약속을 잡는 일이 늘어났다.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혼자 사는 우울증 환자로서, 코로나 시대가 주는 고립감은 갈수록 심해졌고 특히 올해 초에는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갖는 몇몇 커뮤니티 덕에 그나마 견딜 수가 있었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딱 그만큼의 온기를 나누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며 또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 내게는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그 커뮤니티는 여러 다른 성격이었으면 한다. 가벼운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서로의 동물을 믿고 돌봐줄 수 있는 관계,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자유롭고 활발하게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일할 수 있는 관계, 비거니즘이나 제로웨이스트 등의 지향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사이드프로젝트와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관계, 운동과 아웃도어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관계.
그래, 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사랑한다. 그리고 욕심쟁이처럼 여러 다른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에 대한 욕구를 단순히 가족, 연인, 절친 등의 근대적 one and only 관계로 한꺼번에 퉁치려다가 갈등이 생기고 사달이 나는 것이다. 고착화된 관계 사이에서 해소되지 않는 아쉬움을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리라 짐작한다.
내향형이냐, 외향형이냐 하는 정도로 어설프게 스스로의 성향을 파악하던 과거에는 나의 복잡한 커뮤니티 욕구를 섬세하게 알아차리지 못했고, 알아차리더라도 그에 맞게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나의 복잡한 욕구를 스스로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커뮤니티들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얼마 전에는 함께 에세이를 쓰고 낭독을 하는 이들을 집에 초대했다. 지난주에는 각기 따로 사는 아버지, 형을 만나 잠시 근황을 나누고 헤어졌다. 어제는 시를 함께 읽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함께 팟캐스트를 만드는 사람들과 파티를 할 예정이다. 내일은 문예지 소설 읽기 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모일 예정이며, 다음 날에는 활동가 시절 친구들과 플로깅 겸 등산을 하는 모임을 결성해 수락산으로 첫 산행을 갈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겹치지 않으며, 대부분 제도나 책임감 혹은 의무감으로 묶여있지 않고 혈연이라고 해도 끈적하게 만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꿈꾸던 다층적 커뮤니티가 조금은 구현되고 있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고립감을 해소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나처럼 커뮤니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고립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서로가 안전하다 느끼고, 필요에 따라 결합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망을 만들고 싶다. 다시 한번 인정해야겠다.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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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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