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진의 글쓰는 식탁] 봄날의 프루스트
고백하자면 나는 프루스트를 봄에만 사랑한다. 꽃다발을 안겨 주듯 달콤함을 한 움큼 안고 내게 달려드는 봄바람이 불어야 그의 문장의 향기가 맡아진다.
글ㆍ사진 신유진(작가, 번역가)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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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튈르리 공원의 태양은 지나가는 그늘에 선잠에서 깨어난 금발의 소년처럼 몽롱한 모습으로 돌계단을 한 칸씩 올라간다.  _프루스트, 『쾌락과 나날』 중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튈르리의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지금은 4월이고, 잠에서 깬 금발의 소년처럼 몽롱한 태양이 내 머리 위를 한 칸씩 올라가고 있으니까. 나는 책을 펼치고 잠시 튈르리 공원에 다녀온다.



프루스트의 튈르리에는 고운 봄바람과 릴라꽃 향기가 있고, 나의 튈르리에는 녹색 철제 의자 위로 길게 뻗은 다리와 배 위에 덮어 놓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4월에는 튈르리에서 프루스트를 읽었다. 그곳이 스완네 집 쪽으로 가는 길 같았다.

문득 프루스트가 떠오른 것은 방금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기 때문이다. 3년 만에 여권을 재발급 받았고, 옷장 속에 처박아 둔 여행 가방을 꺼냈다. 파리에 가면 무엇을 할까 계획을 적다가 꼭 해야 할 일 중에 프루스트 150주년 전시회 보기를 목록에 넣었다.

“언제부터 프루스트를 좋아했어?”

마르땅(반려인)이 내 다이어리를 슬쩍 훔쳐보다가 말했다.

프루스트의 산문을 번역하면서 “도대체 이 문장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야?”라고 마르땅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얄밉게 태연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없어, 어디를 가고자 하면 안 돼. 그냥 그 안에서 길을 잃어야지.”

독서할 때는 그의 긴 문장 속에서 길을 잃는 경험이 아름답지만, 번역할 때는 구글맵이라도 켜고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묻고 싶다. 그날 나는 프루스트의 긴 문장을 붙들고 “이건 일이 아니라, 벌이야. 나 지금 벌 받는 중이야.”라고 말했고, 그러니 언제부터 프루스트를 좋아했느냐는 그의 놀림에 딱히 할 말이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프루스트를 봄에만 사랑한다. 꽃다발을 안겨 주듯 달콤함을 한 움큼 안고 내게 달려드는 봄바람이 불어야 그의 문장의 향기가 맡아진다. 그러니 지금만큼 프루스트를 읽기에 알맞은 계절은 없다. 릴라꽃은 잘 몰라도 릴라꽃의 슬픔은 알 것 같다. 마들렌을 먹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책장에서 꺼낸다. 1편부터 다시 읽을까, 3편부터 시작할까.

‘오랜 시간’으로 시작하는 그 책은 온통 과거형이다. 언젠가 문학과 친하지 않은 친구가 문학이 과거 시제를 유독 편애하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래 봐야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분명 기억은 문학의 단골 소재고, 기억을 미래형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

친구의 질문을 받은 이후로 프루스트의 책을 펼칠 때마다 ‘우리는 왜 나의 과거를 쓰고 남의 과거를 읽을까’를 생각했다. 물론 정답을 찾진 못했지만, 설득력 있는 남의 가설을 몇 개 발견하긴 했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가장 환하게 해주는 것은 질 들뢰즈의 해석이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의 탐색이 아니라 배움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순간에 몰랐던 것을 나중에서야 배우게 되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찾아서’, 그러니까 ‘찾기’에 방점을 찍고 읽어야 하며, 배우는 것은 다시 기억하는 일이고, 배움을 위한 ‘찾기’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다고 주장한다.

들뢰즈의 글을 읽으며 병약한 몸으로 방에 갇혀 침대에 누워 대작을 쓴 프루스트를 상상해 본다. 그의 모든 문장이 기억을 복기하며 아쉬운 과거로 돌아가는 걸음이었다면, 이 작품을 13년 동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만큼 소중한 현재와 내일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과거형의 문장들이 현재 또는 미래의 시제로 읽힌다. 잃어버린 시간은 과거에 있지만, 그걸 찾아내는 일은 지금 이곳의 일이자 미래를 위한 것이니까.

프루스트의 회고전을 보러 갈 것이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과거가 나의 현재와 미래에 아주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릴라꽃의 슬픔을 상상하며 프루스트의 책을 펼치고 이 글을 쓴다. 봄은 너무 짧고, 그는 너무 긴 글을 남겼지만, 내게는 아직 많은 봄이 남았으니 조급할 이유는 없다. 이제 여행 가방에 프루스트의 책을 담을 차례다. 150년 전에 태어난 나의 봄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튈르리로!



쾌락과 나날
쾌락과 나날
마르셀 프루스트 저 | 최미경 역
미행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저 | 김희영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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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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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jukaki

2022.05.11

150주년 전시...스케치도 채널예스에서 만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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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작가, 번역가)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웠다.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몽 카페』를 썼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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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1871년 파리 근교 오퇴유에서 파리 의과대학 위생학 교수 아드리앵 프루스트와 부유한 유대인의 딸 잔 베유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무렵부터 앓기 시작한 신경성 천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으며, 조르주 상드,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오노레 드 발자크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린 시절 노르망디에 있는 해변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이곳은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발베크의 모델이 되었다. 프루스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들로부터 특별한 기대를 모으지 못했다. 대신 그는 부유한 집안 환경 덕분에 포부르 생제르맹의 귀족과 상류층 전용 술집을 드나들며 사교계의 나태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그는 이따금씩 소품을 쓰거나 영국 미술평론가인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이야기꾼이자 비전문적 문인으로서 많은 글을 발표했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프루스트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쓰며 사교계를 드나드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의 건강상태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고, 이러한 동성애로 인해 그는 부자들과 세력가들이 드나드는 술집뿐만 아니라 남자 하인의 숙소와 매춘굴까지 드나들었다. 그리하여 1890년대의 프루스트는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사교계의 관심이나 끌려고 속태우는 천박하고 이기적인 속물처럼 보였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이 어머니의 죽음을 야기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도 점차 깨달았다. 1883년 파리의 명문 콩도르세 중등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문예지 [라일락]에 「어두운 보라색 하늘」,「극장에서 받은 인상들」 같은 글을 게재하였다. 1989년 파리 법과대학 및 정지학 전문학교에 등록하였으나 학업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가끔 소르본느대학에서 앙리 베르그손의 철학 강의를듣는 한편, 사교계에 열심히 드나들었다. 딜레탕트를 자처하며 사교계를 기웃거리고, 여러 문인과 교류하며 극장, 오페라 극장, 살롱 등을 드나들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미술품을 감상한다. 1895년부터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초벌 그림과 같은 자서전적 소설 『장 상퇴유』를 집필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 첫 수필집 『기쁨과 나날들』을 출간했다. 1893년경부터 십수 년간 러스킨의 작품을 연구하였으며, 1904년 『아비앵의 성서』, 1906년에『참깨와 백합』을 번역 출간했다. 1905년 어머니의 죽음은 프루스트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안겨주었다. 1909년부터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본격적으로 집필하며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출판을 위해 갈리마르 등 여러 출판사와 교섭하였으나 실패하고, 1913년 11월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첫 편 「스완 댁 쪽으로」를 출간한다. 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서도 집필을 계속하여 1919년 6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편 「피어나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출간하고, 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192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이후 「게르망뜨 쪽」, 「소돔과 고모라」등이 출간되었고, 「갇힌 여인」과 「탈주하는 여인」,「되찾은 시절」은 그가 타계한 후에 출판되어 1927년에야 완간을 보게 된다. 그는 마지막 날까지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탁마 작업을 계속하다 1922년 11월 18일 평생의 지병이었던 천식으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은 1896년 그의 첫 작품집 『즐거운 나날들』에 수록된 산문시집으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대작을 품은 씨앗의 면모를 보여준다. 1896년 첫 작품집 『쾌락과 나날』을 출간했고, 이후 존 러스킨의 작품을 번역한 『아미앵의 성서』(1904), 『참깨와 백합』(1906)을 출간했다. 그의 초기작 『장 상퇴유』는 1,000매를 넘는 대작으로 3인칭 수법으로 저술되었는데, 1896∼1900년에 걸친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생트 뵈브에 거역해서』는 1908∼1910년경의 습작인데, 모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대성될 일관된 노력이 남긴 행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또한 과거가 무의식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 예술 속에서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그가 이룩한 혁신의 중심은 등장 인물들을 고정된 존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지각에 의해 점차 드러나고 형성되는 유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완전한 예술적 전체 속으로 무너뜨리는 인생을 그려내는 프루스트의 강력한 실례는 20세기 문학에서 획기적인 영향력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꾸었고, 소설의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집요할 만큼 강박적으로 비전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그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문인의 현대적인 역할을 규정해 주었다. 파리의 8구에 위치한 오스만가 102번지는 프루스트가 살았던 아파트로 현재는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