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 ‘평생 세입자로 살아가야 하는 세대’, ‘평생직장이 사라질 세대’... ‘밀레니얼’ 앞에 자꾸 이런 수식어가 붙는 걸 보면, 우리가 먹고살기 녹록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게 확실하다. 저성장 시대이자 초저금리 시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라는 단어는 매년 갱신되고, 임금 인상률은 치솟는 집값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편 ‘퇴사’라는 키워드도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최악의 취업난 속 퇴사하는 청년들!’이라는 기사가 뉴스 한쪽을 장식하든 말든, 밀레니얼은 하고 싶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하거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데 관심을 쏟는 중이다. 기성의 사회 문법으로 볼 때 이런 행보가 당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요즘 것들은 끈기가 없다', ‘요즘 것들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한다' 같은 잔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기존의 정답으로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취업난과 퇴사라는 키워드가 공존한다는 것은 결국, 이전의 세상에서 중요시되던 가치를 우리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가지 길만 정답이라고 알려주던 세상에 떠밀려 무한 경쟁의 트랙 위를 달리던 우리는, 이제 스스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혹시 여러분도 요즘 퇴사를 꿈꾸나요? 먹고살기 힘든가요? 여러분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돈을 버는 수단? 자아실현의 도구? 왜 우리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그 둘 다를 충족하기 어려울까요? 더 조건 좋은 직장도 물론 관심 있지만, 돈도 안 되는 사이드 프로젝트에는 왜 자꾸 시간을 쏟게 될까요?
과거에는 한 회사에 평생 근속하면 정답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죠.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준비하는 식의 삶의 프로세스. 그게 유효한 시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과연 그게 지금 시대에도 유효할까요? 이제는 평생 다닐만한 직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월급 한 푼 두 푼 모아서 집을 사는 것도 꿈 같은 이야기잖아요. 기존의 방식이 한계치에 다다랐다면, 꾸역꾸역 맞추려고 하기보단 그 틀을 벗어날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무조건 회사를 나오라는 뜻은 아니고요. 이제 우리는 기성의 관성대로 일하기보다,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프로세스를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게 가능한 시대가 되기도 했고요. 먹고사니즘의 굴레, 그 너머에서 시도해볼 만한 게 과연 있을까 고민이라면, 오늘 방송을 끝까지 잘 들어주세요.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은 나답게 일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게요.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은 제가 갖게 된 궁금증과 의문에서 시작된 책이에요. 저는 조금 다양한 일을 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먹고살고 있다보니까, 처음 만나는 분들에게 저를 소개하는 일이 좀 어려웠거든요. “저는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는데요, 또 이런 것도 한답니다” 라고 소개를 하면 꼭 돌아오는 답이 “그래서 본업은 뭐예요? 돈은 뭘로 벌어요?”인 거예요.
본업?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면 분야를 넘나들면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는 말하기 어려웠죠. 돈 얘기라면, 물론 그 일들만으로 먹고살만큼의 돈은 되지 않아서 다른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버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렇다고 돈 버는 외부 일만 내 본업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거든요.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어도,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제가 하는 일들은 사실 다 연결되어있고 그 자체가 결국 제 본업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기존에 있는 직업이나 일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하나의 명함으로 나를 설명해주기 바랄까? 그리고 왜 일의 가치와 경중을 돈으로만 판단할까? 그때, 제 주변에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고 먹고사는 친구들이 저 말고도 이미 여럿 있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 친구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왜 일을 하고, 또 어떻게 먹고 살고 뭘 시도하고 있을지 물어보자. 이런 고민을 풀어보고자 시작한 게 '요즘 것들의 사생활의 먹고사니즘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책에는 사회에서 말하는 ‘정답’같은 루트에서 조금 비켜나서, 새로운 관점으로 업을 바라보고, 각자가 나다운 방식으로 먹고살고 있는 열 명의 이삼십 대 동년배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제가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요.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보다는 나와 비슷한 상황 속에서 한 보 정도 다른 시도를 해본 사람들을 만나 보자는 거였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대단한 인물이 말하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보다 훨씬 우리에게 유의미한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가 어떤 시기를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 나간 기록은, 우리 각자가 가고 싶은 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하거든요. 여러분도 오늘 이야기 들으시면서, 각자만의 나다운 일, 나다운 먹고사니즘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른의 퇴사, 1년간의 직업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책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로 실은 가현 님의 이야기에요. 나다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바로 ‘퇴사'일 텐데요. 제가 가현 님을 인터뷰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퇴사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 떠나라’ 하면서 퇴사 이야기를 많이 하고,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치트키처럼 이야기를 하잖아요. 근데 그러다가 또 다시 ‘묻지마 취업 시장’에 몸을 싣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거든요. 그런데 가현 님은 퇴사를 준비하는 방식도 그렇고, 퇴사 후의 행보도 좀 남달랐던 것 같아요.
가현님은 학창 시절 굉장히 모범생이었대요. 시키는대로 열심히 입시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스펙도 열심히 쌓아서 결국 남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입사 첫날부터 퇴사를 결심하게 돼요.
“나는 거의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뭘 쌓고, 준비하고,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이 회사는 고작 그 따위 이유로 나한테 똥을 줬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 퇴사하고 싶다’ 했죠.”
가현 님의 회사생활 모토는 이거였어요. “곧 내일 퇴사할 사람처럼” 실제로 아무도 안쓰던 생리 휴가를 처음으로 당당하게 찾아서 쓰는가 하면, 0530 운동이라고 해서 눈치 안보고 칼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는 당찬 막내였어요. 그렇다고 회사에 불만만 품고 살았던 건 아니고요. 모범생답게 맡은 바는 또 열심히 해서 성과도 곧잘 냈다고 해요. 그리고 퇴근하면 내가 어쩌다 이렇게 퇴사를 외치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했대요. 퇴사학교를 다녀 본다거나, 회사 생활과 퇴사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를 만들어서 운영해본다거나. 저는 이 점이 가현 님이 퇴사 후에 다른 행보를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명 ‘퇴준생’ 시절을 이직이나 창업 준비가 아니라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가는데 사용했다는 거죠.
그렇게 2년여가 흐른 뒤 드디어 졸업하듯 퇴사를 하고, 자신에게 1년의 시간을 주기로 해요. 그리고 일명 ‘직업 실험’을 감행하는데요. 전혀 관련 없었던 문화기획자나 콘텐츠 제작자가 되어보기도 하고요. 사무실 노동이 아닌 육체노동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카페에서 일을 해보기도 해요. 이 시간을 통해서 가현 님은 무엇을 얻었을까요?
“제 스스로 회사 생활을 하던 저를 ‘광화문 사람’이라고 부르거든요. 지하철 5호선 광화문 역 반경 2km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했었어요. 그만큼 회사 다닐 때는 제 인생의 통제권을 회사가 갖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던 거죠. 회사가 오라는 시간에 출근해서 허락해주는 시간에 퇴근하고,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고, 회사가 배정해준 사람과 일을 하고, 회사가 주겠다고 말한 월급만큼만, 딱 그만큼의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것도 회사가 허락해주는 날까지만 가능한 거였죠. 이제는 그런 통제권을 내가 가져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랑 일하고, 어디에서 일할지 내가 정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고, 퇴사 후에 직업 실험을 했던 그 365일이 그런 갈증을 해소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먹고사는 일을 오롯이 내가 해결하고, 내 일을 내가 만들고, 내 동료를 내가 찾고, 내 무대를 내가 만드는 삶을 경험해본 거니까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도 퇴사를 원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경험을 갖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학창시절에, 첫 취준 시절에 휩쓸리듯 살아가느라 미쳐 해보지 못했던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그 경험들 말이죠. 퇴사는 분명 그런 기회를 주고, 정석대로만 살아오던 삶에 틈을 만들어줘요. 하지만 그것만이 인생을 바꾸는 치트키는 아니라는 걸 가현 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어요. 가현 님이 조직에 기대지 않고도 이렇게 밀도 있는 밥벌이를 해볼 수 있었던 것도, 퇴사라는 키워드에 따라오는 허울 좋은 이야기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이 인터뷰집을 내고 나서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저에게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것들은 어떤 사람들이던가요? 그들의 특징이 뭔가요? 뭔가 또 새로운 정의를 내려주길 바라는 거죠.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곤 해요. “다 다르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게 특징이다.”라고요. 그만큼 분명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비슷한 동년배들이지만, 각자가 가진 일과 업, 그리고 돈에 대한 정의와 가치는 정말 저마다 달랐어요. 그게 저한테는 오히려 큰 용기와 영감을 줬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무책임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먹고사니즘 안에서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꾸려나가는 일과 업이 그들을 먹고살게 할 뿐만 아니라, 각자를 ‘나답게' 자립하도록 도와줬다는 지점이 저에겐 굉장한 힌트를 줬던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바로 요즘 시대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생존 전략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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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