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 오늘 주제가 ‘나이 들었다고 느낄 때, 바로 이 책!’입니다. 우리가 비슷한 또래잖아요. 아직까지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이따금 내가 나이 들었나, 라고 느낄 때가 있을 것 같아요.
프랑소와 엄 : 그래도 캘리 님이 막내인데 핫팩을 허벅지에 대고 있는 걸 보니까 우리가 나이가 들었다, 싶어요.(웃음)
불현듯(오은) : 양다솔 작가님처럼 저희도 돌침대 알아봐야 돼요, 슬슬.(웃음)
캘리가 추천하는 책
소피 카르캥 저 / 임미경 역 | 창비
여기서 ‘딸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그리고 '가브리엘 콜레트'예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들인데요. 이 세 작가에게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우선 1871년에서 1914년 사이, 그러니까 세기의 전환기에 태어났다는 공통점이 있고요. 세계 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 외에 책을 보니 이들은 모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고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유배 혹은 가난을 경험했다는 공통점도 있었어요. 어렸을 때는 부유하게 성장했는데 말이죠. 또한 모두 동성애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큰 주제이기도 한데요. 이들에게는 삶은 물론 작품에까지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던 어머니, ‘빅 마더’를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 책은 소녀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독립을 이루는지 지켜보게 하는데요. 저는 그냥 독자인데도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라는 사람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어요. 이토록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엄마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던 작가들의 행보를 보면서 ‘그렇지, 이게 당연한 것이지. 이게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이걸 해낸 이 작가들은 진짜 개인으로 남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역설적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지점이 세 작가 모두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다시 써냈잖아요. 빅 마더가 글 쓰는 딸들을 만들어 내기도, 글 쓰는 딸들이 엄마를 다시 만들어 내기도 한 복합적인 관계라는 점도 생각해볼 부분이었어요.
저는 이 책을 가족과의 관계에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이렇게 큰 작가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들이 있었고, 그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어떻게든 독립을 하려고 했던 고군분투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켜보면서, 또 그 끝에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남긴 개인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후련해지기도 할 것 같아요. 같은 의미에서 이 책을 읽을 때만큼 독서하면서 내 엄마를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나이 먹는 게 느껴질 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작가들의 일대기를 쭉 훑으면서 나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고 싶은지, 나이를 잘 먹고 있는지 한 번씩 점검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이란 은혜를 베풀고 그것에 감사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배은망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이인 저 | 한겨레출판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할머니와 손자의 생활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고요. 2부는 할머니 ‘피 여사’의 구술 생애사입니다. 손자가 할머니에게 들었던 것들을 기록한 거예요. 마지막 3부는 할머니의 딸이자 이인 작가님의 어머니인 ‘박 여사’의 가족들, 그리고 작가님까지 포함한 가족이라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굴레를 살펴요. 또 그 안에서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노력을 담고 있죠.
작가님이 원래 강연자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인문학 강사로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요. 코로나19 때문에 연단에 설 기회가 크게 줄어든 거죠. 그러면서 집에 머물게 됐는데요. 작가님의 어머니는 굉장히 활동적인 분이에요. 교사로 정년 퇴직을 하시고, 교회에 다니시면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니까 바깥일을 하셔야 되는데 집에 할머니가 계시잖아요. 할머니도 처음에는 정정했지만 97살이 되다 보니까 자꾸 아픈 데가 생기고, 넘어지면 뼈에 금이 가서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도 생기는 거예요. 결국 손자가 할머니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요. 작가님은 난생 처음으로 돌봄 노동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작가님이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손자를 돌봤는데 이제는 반대로 손자가 할머니를 돌보는 시간이 된 거죠.
한편 2부에 손자가 쓴 구술생애사가 등장한다고 했잖아요. 여기에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할머니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시대였고요. 광복을 맞이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했어요. 그 시기를 관통하는 삶이어서 뼈에, 피부에, 기억에, 그 시기가 다 스며 들어 있는 거예요. 할머니는 그때 이야기를 웬만하면 안 하고 싶어 하시고요. 그럼에도 손자는 자꾸만 할머니의 기억을 꺼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삶을 자신이라도 기억하고 기록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부분을 읽는데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혹은 누군가의 증언을 통해서만 상상해 볼 수 있는 이 시대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값지게 느껴졌어요. 누가 먼저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그런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 내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으셔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 여사에겐 삶이 전쟁이었다. 피 여사는 일본 놈이든 조선 놈이든 어디서 갑자기 습격할지 몰라 움츠린 채 경계하면서 살았다. 결혼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 남편이 자신을 때릴지 몰라 긴장하며 지냈다. 피 여사에게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같은 폭력이 거의 평생 이어졌다.
나이란 생각해보니 죽을 때까지 먹는 것이더라고요. 하루라도 더 먹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젊었을 때의 특정 기억은 생생해지는 반면 어제의 기억이나 오늘의 기억은 흐릿해지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지금 여기를 생생히 기억하는 한 우리는 아직 젊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이슬아 저 | 헤엄
이슬아 작가님이 꾸준히 인터뷰집을 출간을 하고 계시죠. 이번에는 두 권이 함께 나왔는데요. 한 권은 『창작과 농담』이라는 젊은 창작 동료 인터뷰집이고요. 『새 마음으로』는 이웃 어른 인터뷰예요. ‘이웃 어른’이라는 표현이 문학적이고 좋죠. 그냥 ‘어른 인터뷰’라고 하지 않고 어른 앞에 이웃을 넣은 게 굉장히 다정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창작과 농담』을 먼저 읽고 『새 마음으로』를 읽었는데요. 『창작과 농담』에서는 강말금 배우, 김초희 영화 감독의 인터뷰가 압도적으로 좋았다는 점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새 마음으로』에는 응급실 청소 노동자인 이순덕 님, 이슬아 작가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인 이존자, 강병찬 님, 그리고 인쇄소 경리 일을 하고 계시는 김혜옥 님, 수선집 사장 이영애 님 등이 등장해요. 가장 먼저 실려 있는 이순덕 님은 이대 목동병원에서 27년 동안 청소를 해오신 분인데요. 순덕 님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4시 10분 버스를 타고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응급실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이에요. 저는 이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순덕 님은 20년째 쉬는 날 독거노인분들의 집에 찾아가서 목욕을 시켜드리고, 밥과 청소를 해주는 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해요. 정말 충격적이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덕 님은 인터뷰에서 사는 게 너무 고달팠다, 그래서 더 힘든 사람을 생각했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멋지죠?
이 인터뷰집이 좋았던 건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엄청난 긍지와 애정이 있으시다는 것이었어요. 다들 완벽하게 일을 하시는 분들인 거죠. 김혜옥 님은 책에 등장하는 분 중 가장 젊게 느껴지는 분이었는데요. 인쇄소 경리로 일하시는 분이거든요. 이분이 “일은 자존감이랑 연결되는 것 같아요. 회계뿐 아니라 다른 업무로 제 영역을 더 확장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좀 자랑스러워요.”라는 말씀을 합니다. 너무 멋졌어요.
책 제목이 『새 마음으로』잖아요. 이 제목은 두 번째 인터뷰이 윤인숙 님의 말에서 나왔어요. 윤인숙 님은 김신지 작가님의 어머니신데요. 버섯 농사를 짓고 계세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 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윤인숙 님의 농사 짓는 노동 현장 이야기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고요. 읽으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사실 새 마음을 계속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연말이잖아요. 제가 올해 못한 것도 많지만 계속 새 마음을 먹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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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