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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목소리로 기록하는 일 (G. 희정 기록노동자)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16회) 『두 번째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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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것이 목소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걸 되게 체감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일이 우리가 사는 데 꼭 필요해, 그리고 나의 인생을 달라지게 하는 데도 꼭 필요해’라고 생각을 하면서 목소리로 기록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고요. (2021.12.02)


“우리는 언제 ‘인간’이 되는가?” 김애령 선생님이 쓴 『듣기의 윤리』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김애령 선생님은 “말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라고 대답을 하는데요. 이때의 말은 그저 목소리나 소리가 아니고 뜻을 이해하고자 시도하고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고자 애쓰는 언어로써의 말, 그래서 기억과 의미를 주고받는 대화로써의 말입니다. 저는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애써 말하는 것이 사람의 조건이라면 그 말을 애써 듣는 것 역시 사람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런 대화를 통해 사람의 말을 듣고 받아 적는 노동을 하는 기록 노동자를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 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희정 기록노동자 편>

오늘은 첫 번째 에세이인 『두 번째 글쓰기』를 쓰신 기록노동자 희정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그동안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쓰셨는데, 이번에 출간된 『두 번째 글쓰기』는 처음으로 작가님 본인의 노동을 쓴 책이에요. 이전 작업들하고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희정 : 저는 주로 노동에 대해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이런 작업을 통해서 글을 쓰는 직군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를 기록 노동자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겉으로 드러내기에는 ‘나의 노동을 쓴 에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른 결이 있었냐고 여쭤보신다면 일단은 ‘와, 녹취를 안 풀고도 글을 쓸 수 있다니... 이것은 신세계다!’ 이런 생각을 했었고요. (웃음) 녹취를 푸는 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품도 드는 일이지만, 사실은 그 녹취를 듣고 되씹는 동안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은 시간들이거든요. 괴롭기도 하고 조심스러운 것도 많은데... 그런 작업을 좀 덜 거치고 제 얘기를 쓸 수 있었을 때, 제가 초고를 출판사에 드리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여태까지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안 되는 뜀뛰기를 계속 하는 기분이라면 지금은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산책 나가듯이 걷는 느낌이라서 참 좋았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초고가 나오고 나서 수정을 거치면서 깨닫게 된 거죠. ‘아, 이게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나의 노동이라는 게 다 타인의 목소리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되게 굉장한 기록집이고 그래서 그 무게와 책임감을 갖고 내야 되는 책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인들한테 하는 농담의 표현으로는 ‘다시 모래주머니 차고 왔던 길 다시 돌아가서 다시 뛰자’고 하는데요. (웃음) 그렇게 만들어낸 책인 것 같습니다.

황정은 : 희정 작가님이 기록노동자가 된 과정도 듣고 싶은데요. 어떤 사건들을 거쳐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셨나요?

희정 : 저는 대학 때 노학연대(노동자 학생 연대)를 하는 학생이었는데요. 굉장히 얕은 정의감으로 ‘이게 옳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했지만, 얕은 정의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모든 일에는 시간을 들여야 되고 품을 들여야 되고 내 걸 내줘야 되는데, 사실 그걸 계속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농담 삼아 ‘굉장히 열심히 안 하는 노학연대 학생이었다’고 얘기를 하곤 했거든요. 그러다 졸업할 때가 되면서 제가 앞으로 계속 운동을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태까지 열심히 안 했으니까. ‘성적은 안 되고, 이제 나의 세계는 공기업과 공무원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서점에 가서 책자를 뒤지다가 돌아왔는데, 학회방에 저랑 같이 그런 시간을 보냈던 후배들과 친구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날따라 후배가 ‘언니는 좀 다르게 살 것 같아’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황정은 : 왜 그러셨을까요, 그 분이?

희정 : 공무원이라는 직군을 선택한 사람들이 다르게 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가 다르게 살고 싶지 않아서 제가 상상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라고 하는 것들을 모색하려던 찰나에 후배가 그런 얘기를 하니까 책임감도 들고 되게 민망했어요. ‘그럼 조금만 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볼까?’라고 생각해보니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소설 습작을 하면서 학교 도서관에서 지냈어요. 나중에 소설로 살짝 등단하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그때는 사회 경험이라고는 집회 다닌 것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뭘 쓰지?’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정을 걷는데 학회 후배가 ‘언니, 우리 학교에 지금 노동조합 만들어지려는 거 아냐, 청소 노동자분들이 노조를 만들고 있고 거기에 학생들이 조력을 하고 있다’라고 얘기한 거예요. 

황정은 : 네.

희정 : 저는 그때 ‘소설 소재야!’ 이러면서 ‘나도 갈래’ 해가지고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청소 노동자분들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수개월의 시간이 제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다른 시야를 트여준 시간이었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학교를 되게 오래 다녔는데 청소 노동자분들께 인사한 기억도 없고 사실 그 분들이 제 눈에 들어온 기억도 없는 거예요. 사실 그때 가장 감명 깊게 봤던 영화 중에 하나가 켄 로치의 <빵과 장미>였는데 거기에 그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우린 유니폼만 입으면 투명 인간이 되지.’

황정은 : 책에서도 인용하셨죠.

희정 : 네, 맞아요. 그 대사를 보고 ‘대사 너무 좋다’ 이러면서도 누군가를 계속 투명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고 그걸 아예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때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것이 목소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걸 되게 체감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일이 우리가 사는 데 꼭 필요해, 그리고 나의 인생을 달라지게 하는 데도 꼭 필요해’라고 생각을 하면서 목소리로 기록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고요. 그때 마침 운 좋게 그 청소 노동자분들에 관련된 르포르타주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르포르타주를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이 되면서 이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황정은 : 그 기사가 2010년에 《일다》에 게재된 르포 기사였던 거죠?

희정 : 네, 맞습니다. 

황정은 : 저도 지금 희정 작가님을 인터뷰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좋은 인터뷰어의 조건이 일단은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의 이번 책을 읽고 보니까 그것만으로는 좋은 인터뷰가 나올 수 없더라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터뷰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희정 : 사실 잘 쓰는 글과 좋은 인터뷰는 가닿지 못하는 어떤 것이잖아요. 이 책이 저한테 좀 민망한 이유는 저의 정제된 생각이 담겼기 때문인데요. 저는 원래 인터뷰를 이렇게 하지만은 않는데, 인터뷰 결은 그때그때 다 다르고 심지어 저의 감정 기복에 따라서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제가 지향하는 바를 써놓은 것 같아요. 다짐하듯이. 그런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면, 저는 인터뷰라는 행위가 가장 의미 있을 때는 직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을 사람 앞에 직면시킨다고 할까요. 서로가 다른 면들이 있고 각자의 사연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끊임없이 지나치게 하는 게 저는 사회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런 사회에서 한 명 두 명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고 직면하도록 하는 게 인터뷰의 공간과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공간을 만들었을 때, 그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사실은 다름을 확인하기 때문에 삐걱거림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저는 그 삐걱거림이 질문이나 물음이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책에 되게 모순적으로 갖다 놓은 게 있어요. 하나는 ‘인터뷰는 묻는 행위가 아니다’라는 걸 굉장히 강조하면서도, 또 ‘묻는 행위가 의미가 있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 이야기는 ‘좋은 대답, 원하는 대답, 다른 대답’을 듣기 위한 행위로서의 물음이 아니라, 직면해서 나의 다름과 당신의 다름을 드러내는 공간을 확인하는 조건/존재로서의 물음이 소중하다고 강조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묻기 위해서 가지 마라’라고 강조하지만 ‘그 순간 가서 당신이 묻는 것은 굉장히 소중하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희정

기록노동자. 수없이 많아 어느새 보잘 것 없어진 억울함들이 아직도 아프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쓴 책으로는 직업병에 시달리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사람이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기록한 『노동자, 쓰러지다』, 이정미 노동열사 평전 『아름다운 한 생이다』를 썼다. 함께 쓴 책으로는 『밀양을 살다』, 『섬과 섬을 잇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재난을 묻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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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글쓰기
두 번째 글쓰기
희정 저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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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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