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설거지론’의 ‘진짜’ 의미를 알고 대단히 놀랐다. 처음에는 설거지에 관한 일반적인 논의인 줄로만 알았다. 이를테면 설거지는 식사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해야 마땅한다던가, 식사를 준비한 사람이 뒷정리까지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던가, 다 필요없고 식기세척기가 최고라던가. 그런데 아니었다. 남성들이 같은 남성들을, 그 중에서도 결혼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여성혐오적인 의미를 잔뜩 담아서, 고작 ‘그런’ 여성들에게, ‘그런’ 취급이나 당하려고 결혼 따위를 했느냐면서.
이러한 의견에 대해 통쾌해 하는 이들이 있었고, 불쾌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열등감으로 가득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관심조차 주지 않는 이들 또한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부분은 사실 따로 있었는데, 바로 이 자체가 논란이 되는 현실이었다. 비혼과 비출산이 꽤나 이야기되는 지금도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주요한 담론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별것 아니라 강조하는 행위는 실은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중요히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굳이 그렇다고 말할 필요는 없을테니. 아무도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를 보며 이깟 돌멩이 하나도 안 중요해! 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는 연애와 결혼이 필수적이며, 사회가 체제의 유지를 위하여 구성원의 재생산을 담보하는 연애와 결혼을 장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그것이 결정적이고 필사적인 목표였는 줄은 미처 몰랐다. ‘나도 연애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한탄은 호르몬이 들끓는 시절이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드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혹은 사회가 가하는 압박의 결과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에 대해서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껏 연애를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정도의 박탈감을 느낀다면 그 주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여겼지만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볼 때, 어쩌면 그것은 이상한 게 아니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리도 연애에 집착할까? 연애가 대체 뭐길래 그토록 격렬하게 다투고 경쟁하며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극심한 분노를 느끼는 것일까?
오래전 EBS 다큐멘터리 <녹색 동물>을 본 적이 있다. 식물의 세계에도 생존을 위한 엄청난 암투와 경쟁이 존재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겉으로는 평화롭고 고요해 보이는 식물들의 오직 번식을 위한, 지능적이고 때로는 무자비하다는 표현이 어울리게끔 활약하는 행태가 인상적이었다. 녹색 ‘동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일 터. 생명체라면 생명의 유지와 번식을 위해 자동적으로 그리 되는 모양이다.
연애를 위한 인류의 온갖 노력과 애환, 연애에 실패했을 때의 분노나 좌절감 역시 이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생명체로서 종족 번식을 하려는 본능 말이다. 식물들이 씨앗을 날리고 싹을 틔우는 행위처럼 인간들 역시 종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고, 그러한 욕망의 발현으로 연애와 결혼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리고, 목표를 수행함으로써 번식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이라는 종을 지속시켜왔던 것이다. 기후가 다른 지역의 식물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듯 시대와 문화, 그리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인간의 방식 역시 꽤나 달랐지만.
오후의 『가장 공적인 연애사』는 바로 이에 관한 책이다. '번식'의 관점에서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성적이고 로맨틱한 관계를 맺고 지속해왔는지,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었는지, 그것을 통해 어떻게 문명과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는지를 살펴본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별다른 규율이 존재하지 않았던 씨족사회부터 일부일처제가 당연시 되고 파트너에 대한 성실성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농경이 발달하면서부터 노동력이 중요시 되었고, 그로인해 본격적으로 가부장제가 발전했고, 거기에서 여성이 ‘재산’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며 성차별이 발생하였다는 등 기존에 다른 역사서를 통해 접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제껏 알아왔던 역사와 문화를 ‘성’과 ‘연애’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니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전족과 카마수트라,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국민 앞에서 한달동안 자위를 한 사연 등 들어는 보았지만 상세한 경위를 잘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들 역시 흥미로웠다. 특히나 진화와 생존의 측면에서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진화 심리학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조건을 주장의 주요한 근거로 삼는다. 폭력이나 섹스에 대해 남성이 여성보다 더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이러한 진화 심리학에 근거를 둔다. 여성과 남성은 애초에 다른 존재이며, 남성은 ‘그럴 수밖에’ 없게끔 진화해왔으므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진화’와 ‘번식’을 주된 테마로 삼아야 하는 이 책의 특성상, 저자가 서문에서 혹 불쾌할지 모르는 지점에 대해 미리 사과를 한 까닭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든 논란을 뒤로하고, 진화적 관점으로 인류를 바라본 이 책을 읽고난 뒤 내가 내린 결론은 단 한가지 뿐이다. 성과 연애에 관한 인류의 관습 중 정해져 있고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문화와 방식을 변화시키며 적응해 왔다는 것. 최근 성과 관련하여 온갖 갈등이 첨예하게 불거진 상황이지만 이 역시 어쩌면 인류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적응하는 과정에서의 필연적인 결과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출산율이 역사상 최저를 달리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비혼과 비출산을 외치는 현 상황 또한 큰 그림으로 보면 인류가 더욱 길게, 더욱 안정적으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일종의 적응 과정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적응하고 난 뒤의 결과물이 어떠한 형태일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승혜(작가)
작가. 에세이『다정한 무관심』,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