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연산을 끝낸 에드 시런
주관적인 관찰을 직선적인 멜로디로 치환했던 10년간의 연산 작업은 나름의 결론을 도출한다.
글 : 이즘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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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을 요약할 '유니콘 아티스트'를 뽑는다면 에드 시런이 당당히 그 후보에 올라갈 것이다. 'Blower's daughter'를 부른 데미안 라이스의 발자취를 좇았던 센세이션한 데뷔작 <┼>를 신호탄으로 포크에 매몰되지 않고 저변을 넓힌  그리고 팝적인 터치를 강화한 <÷>까지 각종 시상식과 차트를 섭렵하며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전할 만큼의 지위에 올라섰다. 오롯이 본인 노래로 영국의 심장부 웸블리 스타디움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팝 스타는 서른이란 나이와 함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바로 결혼과 출산, 한 여자의 남편이자 딸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오프너에서부터 '나는 어른이 됐고, 이젠 아빠가 됐어'(Tides)라며 성숙해진 삶을 고백한다. 사랑의 결실을 감격에 찬 목소리로 노래한 'First time'과 소중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Love in slow motion', 오르골처럼 흐르는 귀여운 멜로디의 자장가 'Sandman'까지 이제 막 단란한 가정을 꾸린 그의 콧노래는 가족을 향한다. 가장의 결의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소환하며 시간의 역행으로 이어진다. <÷>의 연장선에 배치한 위 네 곡의 세레나데는 기타 중심의 간단한 멜로디로 초기 작법을 따르며 장르 융합에 발군의 감각을 선보인다.

고전적 방법론을 작동시키더라도 사랑으로 물들인 핑크빛 유토피아는 에드 시런의 발목을 잡는다. 과잉된 감정을 주입한 'The Joker and the Queen'은 연말 특수를 겨냥한 발라드에 그칠 뿐 'Perfect'의 뒤를 잇기엔 역부족이다. 드럼 앤 베이스 재질의 'Collide'와 달콤한 신스라인을 앞세운 'Be right now'로 템포를 높여 다변화를 꾀하려는 접근마저도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사랑이라는 화두가 단조롭게 다가와 궁금증을 앗아간다.

그럼에도 빌보드 차트 최상단을 장기 집권한 'Bad habits'의 흥행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비슷한 갈래로 1980년대 팝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Shivers', 'Overpass graffiti'가 상승기류를 타고 기록한 높은 스트리밍 횟수는 그의 탁월한 멜로디 주조 능력을 방증한다. 듣기 수월한 팝 스타일의 기조에도 결코 트렌디함을 경시하지 않고 재차 솜씨를 발휘해 결과물들을 준수한 성적표로 귀결시켰다.

주관적인 관찰을 직선적인 멜로디로 치환했던 10년간의 연산 작업은 나름의 결론을 도출한다. 비좁은 시야로 응시한 가족애와 상업적 수확을 노린 술책. 과거 자신의 본능을 따라 눈부신 활공을 펼쳤던 싱어송라이터의 답안은 결국 진부한 성공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는 대중음악가로서 건재함을 과시한 에드 시런의 면모와 달리 최소한의 재료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감싸 안아주던 청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제아무리 더하고 곱한들 '빼기(-)'를 배제한 무조건적 수용은 덜어냄의 미학을 다시금 일깨운다.



Ed Sheeran (에드 시런) - 5집 = (Equals)
Ed Sheeran (에드 시런) - 5집 = (Equals)
Ed Sheeran
Warner MusicEast West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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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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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 Sheeran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이지만 기반은 영국이다.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에서 성장했다. 열한 살 무렵 삼촌으로부터 낡은 기타를 선물받아 스스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직접 만드는 새로운 노래에 눈을 떴다. 스스로 찾은 자질도 중요하지만,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청중의 호응이 따르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부모도 곁에 있었다. 그리고 고교시절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됐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크고작은 클럽을 찾았다. 밤새워 공연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차차 사람들과 교감하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어쿠스틱 공연을 기대했던 사람이든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박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을 무렵, 입소문을 타고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그는 지칠 줄 몰랐다. 2005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공개한 EP만 여덟 장이다. 2009년에만 총 312회 공연을 치뤘는데, 어디선가 봤던 제임스 모리슨의 연간 공연이 200회였다면서 그걸 뛰어 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2010년 어느 시낭독 행사가 있었고 거기서 공연제의를 받아 미국 LA로 갔는데, 운좋게 제이미 폭스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야에 그가 들어왔고 덕분에 제이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여유롭게 미국을 여행할 수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력적인 공연, 달랑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다루는 풍요로운 장르, 젊음, 그리고 그 젊음으로 만들어낸 풍요로운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은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본격적인 주류 활동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었다. 2011년 기회는 찾아오고 결국 데뷔 앨범이 나왔다. 나오자 마자 일주일 만에 10만장을 팔아치우며 UK 차트 1위에 등극했고, 각종 매체에서는 "10년 만에 데뷔 앨범으로 차트 1위를 정복한 남자 신예" "심장을 뚫고 차트를 정복한 달콤한 목소리" 등 호평이 따랐다. 그동안 그는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늘 혼자였다. 휴식을 모르고 목청껏 노래하는 젊음이 있었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가 있었으며,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루프 페달(loop pedal)이 있었을 뿐이다. 공연 영상을 뒤적여보면 재미있는 풍경이 나온다. 'Black Horse and the Cherry Tree'를 부르던 데뷔 시절의 케이티 턴스털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몇 마디 연주를 띄우고 그걸 녹음해 계속해서 돌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베이스를 바탕으로, 그 위에 소리를 덧입혀 노래하고 연주한다. 홀로 내는 소리가 헐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사운드를 쌓는 방식이다. 한편 혼자 무작정 만들고 공연했고, 혼자 CD를 팔았다. 알아서 해결할 만한 실력이 있었고 그만큼 적극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10월 영국 공연이 죄다 매진될 만큼 무수한 호응이 있다. 준수한 음악, 유망한 신예에 대한 세계의 관심 또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