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나라 가야』는 이 땅에 520년 존재했지만 역사에선 잊힌 나라, 가야를 찾아가는 여행기이다. 저자는 고고학을 전공한 역사 애호가이자 현직 공무원으로서, 지난 3년여간 대한민국에 흩어져 있는 1500년 전 가야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해온 가야를 기록했다. 고고학 및 역사학자들의 탐구를 대중적 시각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유물과 유적 하나하나와 마주한 설렘과 기쁨을 저자가 직접 그리고 작업한 18점의 스케치, 15점의 콜라주 및 사진 등을 통해 풍부하게 전달하고 있다. 1500년 전 가야로 떠나는 여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시대를 이어 소속감과 연속성을 확인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고고학을 전공한 출판 편집자에서 지금은 행정공무원으로 국무총리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해왔다 들었습니다.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업(業)의 정체성을 비교해보자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현재 18년여 공무원으로 일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직장 생활은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시작했습니다. 편집자와 공무원, 둘 다 텍스트를 커뮤니케이션(소통)한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생각합니다. 텍스트는 하고 싶은 말, 메시지(message)를 담고 있습니다. 편집자가 책을 통해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듯이, 공무원은 정책을 통해 시민과 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책의 세계이든, 정책의 세계이든 존재의 이유입니다.
가야사는 특히 기록도 빈약하고 인기도 없는 편인데, 하필이면 가야를 답사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평소 잊힌 것들, 기억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야는 1500년 전 우리 땅에 있었던 나라이나, 『삼국사기』 등 역사에서 잊힌 나라입니다. 최근 가야사가 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1500년 만에 가야사가 전성기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양연화의 시기이죠. 이때를 놓치면 안 되고 무엇이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때 고고학을 전공한 공무원으로서, 남이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저 스스로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일반 공무원도 아니고 청와대라는, 예측 불허의 사건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부서 소속인데 답사를 준비하고 공부할 시간과 여유는 어떻게 가능했는지요? 보통의 직장인이라 해도 결코 녹록치 않은 텐데 혹시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으로 현재 청와대에 나와 근무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른 새벽부터 업무가 시작되며, 주말에도 국민들의 어려움을 살펴야 하는 곳입니다. 업무 전념성, 즉각적 대응 등이 중요합니다. 주중에는 시간을 내지 못했고, 당번이 아닌 주말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우리 땅을 답사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었기에,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 시위처럼 긴장도가 높은 청와대라는 조직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글을 쓸 때는 핸드폰을 이용했습니다. 아이폰의 메모장과 에버노트 앱을 주로 활용했죠.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을 이용해 작업하려면 일정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데, 직장인은 그러한 여유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핸드폰인데요, 시간 나는 대로 핸드폰에 기록했습니다. 메모장에 먼저 기록하고, 이게 쌓이면 에버노트에 책 목차별로 폴더를 만들어 기록해왔습니다.
긴 흐름을 따르는 작업이 필요할 때는 일상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합니다. 주말 또는 여름 휴가 기간에 집 근처 레지던스에 숙소를 잡고 온종일 원고에만 집중하는 방법도 병행했습니다. 가족, 특히 남편의 이해와 배려가 있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에 보면 ‘혼자 떠난 답사도 신났지만, 함께 떠난 답사도 좋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둘의 차이를 간단히 비교해본다면 장단점이 무엇일까요? 답사하고픈 특정 지역을 품고 계신 독자에게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 같습니다.
축적된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과 함께 답사하면, 전반적인 안목을 키우는 데 효과적입니다. 충분히 안복을 누린 다음에 자신만의 안목을 갖게 되는 거죠. 동호회 등에 참여하여 애호가들의 경험과 지식을 들어보세요. 함께 떠난 답사를 통해 이해가 쌓이면, 다음부터는 홀로 떠나보는 것입니다. 장소가 가진 느낌에 집중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던지는 의미를 온전히 찾을 수 있습니다. 제 경우, 혼자 다닐 때는 길게는 2박 3일, 당일치기 여행도 많이 했습니다. 가까운 대도시까지 KTX를 타고 이동한 후, 소카 등 공유차량을 이용해 답사지까지 이동했습니다.
3년간 틈틈이 부지런하게 가야 땅을 밟고 둘러보셨습니다. 그 경험을 집약한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마중과 환대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잊힌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잊힌 것들을 마중하고 환대하면 낯선 것들이 베일을 벗고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42년에서 562년까지, 우리 땅에 있었으나 역사에서 잊힌 가야가 그러합니다. 가야를 마중하고 환대해주세요. 그러면 가야와 가야사람들이 망각의 장막을 뚫고 우리에게 환한 얼굴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간 다녀온 여러 지역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그리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요?
함안입니다. 아라가야의 고도입니다. 함안은 함께 떠난 답사를 두 번 했고, 혼자 방문한 것도 두어 번입니다. 갈 때마다 계절이 달랐고 느낌이 달랐습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함안박물관 뒤편 나즈막한 말이산 고분의 고요함도 좋았고, 여름이 가까운 오후, 쑥부쟁이 흐드러질 때의 말이산 고분의 환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말이산의 설경은 보지 못했네요. 밤새 눈이 온 날, 아침에 홀연히 함안으로 떠나볼 겁니다.
저자께선 스스로의 정체성을 ‘우리 헤리티지에 대한 사회적 소명을 해내는 사람’으로 정했다 하셨습니다. 가야사를 시작으로 다음의 여정은 어찌 계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우리 헤리티지가 삶의 즐거움이자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헤리티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죠. 지금 당장의 계획은 없습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마음에 감흥이 일어나겠죠. 제 계획이 아니라, 제 삶이 알려주는 거죠. Life knows better! 다만, 하늘길이 원활해진다면, 오쿠라 컬렉션으로 동경국립박물관에 있다는 ‘가야 금관’을 보러 가려 합니다. 리움미술관에 있는 가야 금관과 어떻게 다른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려고요.
*정은영 광주에서 자라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영화에 나오는 매력적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 박사에 마음을 빼앗겨,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를 다니며 과학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대학원에서 과학학을 공부했다.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 『유전학』, 『거울 속의 원숭이』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2007년 과학기술분야 번역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출판사를 다니며 다양한 책을 인내심 있게 읽는 방법을 알게 되어 행정고시를 치르고 국무총리비서실, 문화체육관광부,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해왔다. 삶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2018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를 썼으며, 2020년 아버지의 삶을 기록한 『봄날은 간다-정용대 기억의 책』을 펴냈다.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를 지향하며, 춤추듯, 노래하듯, 삶의 현장이 축제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부류다. 우리 땅을 밟고 살피는 것이 자신의 유희라며 즐거워하며, 자연스럽게 삶의 북극성을 ‘우리 헤리티지에 대한 사회적 소명을 해내는 사람’으로 정했다. 지난 3년간 잊힌 나라 가야의 현장을 구석구석 밟으며 글을 쓰고, 난생 처음 그림을 그리며,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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