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도시와 산책 그리고 위로 (G. 정지돈 작가)
지금 제 옆에 “글을 쓰는 것은 곧 읽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읽는 것은 곧 쓰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출간하신 정지돈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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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걷는 걸까. 최근 나는 예전처럼 많이 걷지 못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미세먼지 때문에? 2018년에는 하루 평균 10,525 걸음을 걸었고 2019년엔 10,722 걸음, 2020년엔 7,116 걸음을 걸었다. 참고로 2017년 스탠퍼드 연구진이 『네이처』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걸음은 5,755걸음으로 조사한 111개국 중 8위다. 1위는 홍콩으로 평균 6,880걸음을 걷는다. 2018년 BBC는 하루 1만 보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다큐를 제작했다. 결과는 거의 효과 없음.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정지돈 작가님의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산문집에서 정지돈 작가님은 서울과 파리라는 공간뿐 아니라 지금의 서울과 파리라는 시간을 걷고, 서울과 파리에 살고 있는 예술을 걷습니다. 작가님이 들려주는 풍부한 이야기가 마치 생명력을 얻은 정물처럼 살아 움직이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출간한 정지돈 작가님을 모시고, 서울과 파리, 산책과 여행,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정지돈 편>

오은 : 글을 쓰는 것은 곧 읽는 것, 그리고 글을 읽는 것은 곧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읽고 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 것인지 궁금해요.  

정지돈 : 저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첫 번째 독자는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쓴 글이긴 하지만 글을 쓴 뒤 보면 내 안에 이런 게 있었나 싶을 때가 많잖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독자로서 이 글을 내가 좋아해야 되지 않나, 하는 아주 기본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고요. 한편으로 글이라는 건 어쨌든 한정이 되어있죠. 언어를 선택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생략되는 것들이 있고요. 이때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읽을 때 그 틈을 채워 넣어요. 상상을 하기도 하고요. 그게 결국은 쓰는 과정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로 한 이야기였어요. 

오은 : 2020년에만 산문집, 소설집, 장편 소설을 출간했어요. 작가님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좀 무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썼던 이유가 있을까 궁금할 정도였는데요. 작년은 어떤 해였죠? 

정지돈 :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사실 작가로서 많은 생각이 들긴 해요. 예전에는 글을 많이 쓰면 안 된다, 하는 생각도 좀 있었어요. 과작이 작가에게는 좋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2018년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과작의 작가가 아닌 다작의 작가가 됐을 때 나올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고요. 어떤 흐름 속에서 그냥 보여줄 수 있는 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시도를 해보고도 싶고, 잘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에요.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소설 말고는 관심이 없다, 고 말하는 소설가. 어려서부터 온갖 종류의 책을 읽었다. 명절이 되면 꼼짝도 하지 않고 큰아버지 서가에 있는 책을 읽어 어른들이 기특하게 바라보던 아이였다. 책을 너무 좋아해서 부모님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정도. 처음 재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인데, 자신과 친구들을 소설에 등장시켜 한때 소설쓰기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중학생 때 영화잡지를 정기구독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막연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학과에 진학한 정지돈은 하지만 영화 현장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체질에 맞지 않았고,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문예창작학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습작 시절에는 소설을 쓰는 족족 걸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 실패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출판사 영업자로 일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글만 본격적으로 써보자는 생각에서 퇴사를 결심한 정지돈은 마치 영화처럼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등단 소식을 들었다. 2013년 5월이었다. 

수학여행 갈 때는 옆에 앉을 만한 친구가 없었고, 대학교 때는 늘 혼자 밥을 먹었던, 직장의 점심 시간은 혼자 있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던 정지돈. 20대 초반 처음 간 갤러리에 반해 “나 여기서 살래”라고 생각했던 정지돈. 그는 새벽 한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쓰는 완벽한 야행성 작가다. 글을 쓰다 막힐 때는 아이스크림, 특히 벤앤제리스 초콜릿 칩 쿠키도우를 자주 먹는다. 긴 제목과 골덴과 영화의 트래킹샷, 전기, 자서전, 회고록을 좋아하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형이라는 단어는 싫어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열심히 공부해서 계속 써나가고 싶다.” 중학생 때 구독했던 영화 잡지는 아마 『키노』일 것 같은데, 맞나요? 

정지돈 : 『키노』는 포기했어요.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중학생 때는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스크린』을 읽기 시작했죠.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나 감독에 대해 약전처럼 읽기 좋게 담긴 코너들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물론 영화를 좋아하긴 했고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데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에 빠졌던 건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였나, 싶기도 해요. 

오은 :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이라는 책에 대해 정지돈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정지돈 : 서울과 파리를 중심으로 제가 걷고, 본 것들, 그 이후에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떠오른 예술과 문화, 도시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은 : 얼마 전 있었던 북토크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위로에 중점을 둔 책”이라고 하셨잖아요. 처음에는 그 말이 의아했는데 나중에 자꾸 떠올랐어요. 사실 제가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거든요. 

정지돈 : 위로라는 말이 좋은 말이지만 제 생각에는 약간 오염된 것 같아요. 위로라는 게 저마다 다양할 수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보면 위로를 받는데요. 그 위로라는 게 무조건적인 공감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대단히 잘하고 있구나, 어떤 요구들에 휘둘리지 않고 가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도 저는 위로를 받거든요. 위로라는 것을 이렇게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해요. 

오은 : 제가 위로를 받았다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에요.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지금도 걷고 있고, 걸으면서 어떤 사유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 집에 와서 뭔가를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따뜻하고 든든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까 위로라는 말이 많이 오염됐다고 하셨는데요. 이 책이 두 가지 키워드죠, ‘도시’와 ‘산책’도 그런 것 같아요. 

정지돈 : 이 두 키워드를 가지고 온 건 두 가지 이유예요.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고요.(웃음) 두 번째는 청탁이 왔다는 것입니다. 청탁을 주신 강윤정 편집자 님께서 제 글에서 그런 특성들을 발견을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본격적으로 어떻게 오염 속에서 재활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오은 : 연재 당시에 매주 담당자분께 사과 메일을 쓰는 게 일종의 루틴이었다는 말도 들려옵니다.(웃음) 물론 이 글의 밀도를 보면 쓰기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정지돈 :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하는 다른 작가님들의 경우 사전에 연재 분량을 반 이상 전달한 상태에서 연재가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연재 직전까지 단 한 꼭지도 못 드린 상태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늦게 첫 꼭지를 드렸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메일을 썼는데요. 이 사과가 이후에도 계속 됐던 거죠.(웃음) 말씀 주셔서 너무 감사한데요. 하다 보니까 욕심이 생겨서 글의 밀도가 점점 더 높아지더라고요. 사실 정보라는 건 끝이 없고, 볼수록 더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지돈 :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고 여러 번 말을 하긴 했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막상 추천한 적은 없더라고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입니다. 이 책은 정말 인생 책이에요. 3부로 구성된 책인데요. 1부는 어떤 사람의 일기고요. 2부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들로 구성돼 있어요. 그러다 3부는 다시 일기로 돌아가는 책인데요. 1부가 좀 읽기 힘드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부분만 참고 2부로 넘어가면 엄청난 일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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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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