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탐서가의 뜨거운 독서 기록
어쩌면 지루하고 힘겨운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동안, 역시나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 없는 자연을 어느 순간 닮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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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 독서가로 살며 탐독해온 숱한 책 속 세계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스스로 작은 우주가 되어 사는 사람들의 세계가 만났다! 바로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박진희 작가의 이야기다.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오랜 시간 출판 편집자로 일했던 작가는 ‘책을 읽고 만드는 사람’에서 지금은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며 글을 짓고 있다.

평생 ‘읽고 쓰며’ 살아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스무 살의 자신에게 또 다른 삶을 열어준 것은 『피뢰침』이라는 소설이었다고 회고한다. 책에서의 깨달음은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어졌고, 그곳에서 만난 여러 ‘행인’들과의 추억, 길 위에서의 사유로 작가의 세계는 좀 더 넓어지고 다정해졌다. 작가는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으며 악함의 병이 심히 깊은 양부모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사그라져 별이 된 정인이를 생각하고, 우리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들을 돌아본다. 또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서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다 꿈의 공간에서 생을 마친 더그 한센을 떠올리며 꿈을 이루는 중인 모든 사람에게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작가님의 독서는 어떻게 시작되는 편인가요? 책을 읽는 시간, 장소가 정해져 있는지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던 시절에는 ‘언제고’ ‘어디서나’ 책을 읽었어요.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회사에서도, 자기 전 침대에서도 읽고 싶은 책, 읽기 싫은 책, 읽으라고 하는 책…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손에서 놓을 일 없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이번 책에 언급된 책들도 그 시절에 읽었던 책들이 많고요. 제주에 오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너무 커서 책을 손에 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이나 잠든 시간에 짬짬이 읽습니다. 내 시간에 대한 갈급함은 있지만,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책을 고르고 읽는 데 더욱 정성과 진심을 쏟게 되었으니까요.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를 읽으면서 작가님의 독서법이 궁금했어요. 어떤 사람들을 알고 싶어서 책을 읽나요? 아니면 관심 가는 주제를 다룬 책을 읽다가 그 책에 그려진 사람들로 관심이 확장되나요?

후자 쪽인 것 같아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책을 고르진 않는데, 관심 있는 책을 읽다 보면, 자연히 나의 경험과 사람들이 따라와요. 제가 워낙 사람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을 읽으며 사족을 옆에다 많이 다는 편이에요. 저자의 글 속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있으면 옆에 코멘트를 해둡니다. 마치 책을 쓴 작가와 수다를 떠는 것처럼 “오, 맞아. 나도 그런 적 있어! 나는 있잖아~” 하면서요. 읽은 책의 대부분이 그래서 중고로 되팔 수도 없네요(웃음). 가끔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면, 옆에 적어둔 코멘트 읽는 재미가 있다고도 하세요. 

그런데 얼마 전에, 제 지인이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를 읽다가 저에게 사진을 찍어 카톡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저랑 대화하면서 읽고 있다고요(웃음). 세 장을 찍어 보냈는데, 프롤로그부터 열심히 코멘트를 달아놓았는데, 너무 뭉클하더라고요. 사실 이런 독서법은 저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감정이입하며 대화하며 독서하는 것 같아요.



전작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역시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조금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이번 책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는 독서에세이를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내셨잖아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은 작가님께 천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일까요? 왜 이 일을 하시는 거예요?

서울에서 가진 첫 번째 직업이었던 ‘월간 <사과나무> 기자’가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어요. 지금은 폐간된 작은 잡지인데, 두 명의 기자가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잡지를 원고 청탁하고 편집하고 취재하고 배달하고… 온갖 것을 다했죠. 돈도 많이 받지 못했는데(웃음) 일은 너무 재미있었어요. 당시 20대였는데, 다양한 인터뷰이를 만나면서 저의 40대, 50대, 60대를 그려볼 수 있었거든요. 

이후 출판사 편집자로 전직하고서도, 또 지금 제주에서 프리랜서로 살면서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만나고 기록하는 일을 계속했어요. 지금도 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가치관이 흔들리거나 의심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그 가치관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확신이 서고 위로와 응원을 받아요. 처음엔 그냥 나를 위해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나처럼 흔들리는 누군가를 위해 이런 에피소드를 전해주면 좋겠다, 싶어서 또 글을 쓰게 됐고요. 

책을 책으로 남겨두지 않고, 책 속에서 만난 세상을 나의 세상으로 끌어오는 독서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음…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가진 이야기’를 믿는 용기요. 저도 이 부분이 가장 힘들고 때론 좌절스러웠어요. 저 역시도 책 속에 나열된 문장과, 내가 지닌 가치관 및 나만의 이야기를 연결짓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로 책 속의 이야기는 좋은 것, 나의 이야기는 사소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였어요. 각자가 가진 이야기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책 속에서 나의 세상을 만나는 일에 장애물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독서 에세이가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무얼 보며 그 무엇을 내 삶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볼 수 있어서인데요. 작가님의 독서 에세이는 책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작가님의 인생 같았거든요. 그래서 책 제목이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인가 싶더라고요. 한편으론 일반 에세이로 냈어도 되었을 텐데 왜 독서 에세이를 쓰셨을까 궁금했어요. 책은 작가님의 삶에서 특별한 매개여서일까요?

어느 날 제 책장을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아주 유명한 책도 보이고, 초판 100부 인쇄로 끝난 책도 나란히 꽂혀 있더라고요. 다채로운 책들이 꽂힌 책장이 하나의 우주 같아 보였어요. 책은 그 광활한 우주 안에서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선 행성 같았고요. 우리 인생과도 너무 닮은 거예요. 좋아하는 책과 사람이 이토록 가까이에서, 닮은 모습으로 제 곁에 머물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고, 그 둘을 연결해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책만 봤을 땐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통해 사람을 끄집어내는 일이라면? 했더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전에 쓴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는 ‘제주 이주’라는 콘셉트가 있어서 사람의 이야기를 제한적으로 실었지만, 책은 무궁무진하잖아요. 내 주위 여러 사람을 연결할 수가 있었어요. 네, 맞아요. 궁극적으론 다양한 책을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의 서재가 문득 궁금해지네요.

올 초에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낡은 집을 구했고, 고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대대적인 공사를 했어요. 그때 방 하나를 뜯어서 (혹시나 이사 가게 되면 버리고 간다는 맘으로) 붙박이 책장을 짜 넣었어요.  

생각보다 책이 많진 않아요. 서울에서 자취하는 동안에도 – 그땐 출판사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 작은 책장 하나만 가지고 살았어요. 책 욕심이 없다기보단 방이 너무 작았어요(웃음). 지금도 저 책장에서 책이 넘치면 누군가에게 선물한다거나 비우며 살아요. 분류는 도서관처럼 나름대로 십진분류법으로 구분해놓았고, 아직까진 문학책이 가장 많습니다. 책장 맨 윗줄 한편엔 책과는 크게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남편의 책이 꽂혀 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모든 책이 신국판 사이즈여서요(그만큼 산 지 오래된 책..). 근데 꽂아놓고 보니, 남편 책이 가장 가지런해 보이긴 하더라고요. 

현재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일까요? 이 책에 미처 싣지 못했지만 독자님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입니다. 좋아하는 저자의 신작이기도 하고, 특히 요즘 저의 화두이기도 한, 지구의 환경을 소재로 쓴 장르 문학이라 흥미롭게 읽고 있어요. 

그리고 책에 싣고 싶었지만 아쉽게 빠진 책이 한 권 있어요. 도날드 홀의 『달구지를 끌고』라는 그림책입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늘 읽어주던 책이기도 해요. 비슷하고 반복적인 대구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이라 이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웃음) 

아이가 잠이 들고도 저는 종종 끝까지 소리 내어 읽곤 했어요. 시골에 사는 한 가족이 1년을 보내는 이야기가 잔잔한 그림과 함께 담겨 있는데요, 우리 인생과 다르지 않아요. 어쩌면 지루하고 힘겨운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동안, 역시나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 없는 자연을 어느 순간 닮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에요. 



*박진희

서울에서 10년 넘게 책 짓는 일을 했고, 그 전에는 작은 잡지사에서 기사를 썼다. 입은 어눌하지만 다행히 잘 듣는 귀가 있어,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조급하게 일하고, 마감 시간에 쫓기고, 낮엔 개미처럼 일하고, 야근은 밥 먹듯이 해오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등 주로 ‘고생’하는 여행을 도맡아 했으며, 스페인 카미노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제주도에 정착, 5년 전부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타인에게 따뜻한 웃음을 선물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는 마음으로 글 쓰는 일을 쉬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 [청어람아카데미] 등에 여러 글을 연재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그대 나의 봄날』이 있다.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당신이라는 책, 너라는 세계
박진희 저
앤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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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