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여름밤에 듣기 좋은 음악, 네 번째는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의 “한여름 밤의 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기반해 작곡된 이 작품은 대문호가 써 내려간 빛나는 텍스트와 수를 놓듯 펼쳐지는 음악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한여름 밤과 꿈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멘델스존이 “한여름 밤의 꿈”을 처음 음악으로 작곡한 것은 1826년, 열일곱 살 때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후 받은 감동을 십 대의 감성으로 소화해 관현악 음향으로 찬란하게 풀어 놓은 것이죠. 서두에서 피아노와 피아니시모로 울리는, 들릴 듯 들리지 않는 목관악기의 네 화성은 오베론이 지배하는 환상세계로 향하는 문을 조심스레 엽니다. 바스락거리는 현악기와 반사하는 빛처럼 소리를 뿜어내는 호른의 색채에서는 음악적 아이디어에 따라 화성과 음향을 탁월하게 배치하는 멘델스존의 재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상상 속 요정 세계를 소리로 생생하게 그려내기에 작곡가의 어린 나이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들은 슈만은 “젊음의 광채”가 작품에서 뿜어져 나온다 했을 정도이니까요.
1843년, 프로이센의 왕, 프레데리크 기욤 4세의 요청으로 멘델스존은 다시 “한여름 밤의 꿈”을 손에 들게 됩니다. 1826년에 작곡한 단악장 관현악곡(op.21)을 서곡(overture: 오페라나 오라토리오를 시작하는 기악곡)으로 삼고, 두 명의 소프라노와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열세 곡(op.61)을 덧붙여 확장한 “한여름 밤의 꿈”은 신축된 포츠담 왕궁에서 연극과 함께 처음으로 연주되었습니다. 17년이 지나 작곡가의 기법은 더욱더 깊어졌지만, 젊고 신선한 음향은 그대로 살아있어서 이전 작품과 새로운 작품이 함께 연주되어도 전혀 무리 없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시간 차이를 뛰어넘는 서곡과 부수음악(연극이나 영화에 삽입되는 음악)의 조화를 음악학자인 레미 제이콥스는 “두번째 기적”이라 칭송했지요.
“한여름 밤의 꿈”은 연극을 위한 음악이지만 오페라는 아닙니다. 그래서 레치타티보(말하듯 대사를 노래하는 부분)나 아리아(감정을 노래하는 독창 혹은 이중창)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그저 영화나 연극의 배경음악처럼, 극이 진행되는 사이 사이에 음악이 등장해 이야기를 부연 설명하거나 분위기를 표현합니다. “한여름 밤의 꿈”이 특별히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사 자체에서 드러나는 셰익스피어 언어의 탁월한 음악성과 멘델스존이 음악으로 그려내는 환상적 분위기가 불꽃놀이처럼 얽히며 우리 의식을 고양시키기 때문입니다.
[…] 선택에 있어 마음이 맞았다 해도
전쟁, 죽음, 혹은 질병이 이 사랑을 붙잡아서
소리처럼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그림자처럼 빠르게, 토막 꿈처럼 짧게,
칠흑 같은 밤에 천지를 섬광 속에 들춰낸 뒤
누군가가 ‘저기 봐!’ 하고 말하기도 전에
어둠의 아가리가 삼켜 버리는 번개처럼
찰나에 그치게 만들어 버린다오.
이처럼 빛나는 것들은 재빠르게 파멸에 이르는 법이오.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1막 1장, 라이샌더 대사 (열린책들, 박우수 역)
라이샌더의 대사에 연결되는 1번. 스케르초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셰익스피어가 현란한 단어로 풀어낸 ‘빛나는 것들의 번개처럼 빠른 파멸 속도’는 이어지는 멘델스존의 스케르초(기악음악에서 한마디를 한 박으로 연주하는 빠르고 익살맞은 악장)에서 그 속도와 긴박감이 실감나게 그려집니다. 세공된 언어가 음악으로 되살아나는 공감각적인 경험덕에 우리는 주인공인 라이샌더와 허미아가 맞이하게 될 허락되지 않은 사랑의 험난한 여정과 한여름 밤의 격정에 한층 더 풍요롭게 빠져듭니다.
멘델스존 음악을 듣기에 앞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으며 어떤 부분이 음악으로 표현된다면 좋을까를 예상해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예를 들어. ‘야생 백리향이 만발한 강둑’에서 앵초, 제비꽃, 사향장미, 들장미, 인동덩굴 꽃의 향기와 살랑거림에 취하는 요정 세계의 여왕, 티타니아를 위해 부르는 요정들의 자장가 소리는 어떨지 충분히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나서 작곡가가 표현한 음악을 듣는 겁니다.
3번 곡, 요정들의 합창,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몬테베르디 콰이어 노래,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제가 바로 잠입니다. 수많은 오페라에서도 빠지지 않는 대목이죠. 요정 퍽이 실수하면서 엉켜버린 사랑의 실타래를 해결하기 위해 오베론 왕은 라이샌더, 허미아, 헬레나, 드미트리어스를 재웁니다. 마법을 통해 갈등이 봉합되는 잠자는 시간을 멘델스존은 호른이 노래하는 부드러운 선율과 그를 꿈결처럼 감싸 안는 현악기, 그리고 그사이를 파고드는 플루트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음향으로 그려냅니다. 낭만 음악 중에서 가장 시적이고 차분한 ‘밤’이지요.
7번 곡, 야상곡(녹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연인들의 갈등이 해결된 후, 시시어스와 히폴리타를 비롯해 두 쌍의 젊은 연인이 결혼하던 날 울리는 음악은 너무나도 유명한 “결혼 행진곡”입니다. 수없이 많이 들어 봤겠지만 훌륭한 관현악단이 멋지게 해석해 들려주는 연주로 다시 한번 들어 보세요. 바쁜 결혼식장에서 지나치며 들을 때는 놓치기 쉬운 웅장한 힘과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답니다.
9번 곡, 결혼행진곡,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실황,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시시어스와 히폴리타가 지배하는 현실 세계와 오베론과 티타니아가 지배하는 요정 세계가 만나는 숲속의 여름밤은 꿈과 현실을 뒤섞고, 욕망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동시에 모두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극 중 인물들은 꿈 속 경험을 통해 자신이 변했음을 인지하지만, 언어로는 감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꿈속에서 당나귀가 되었다가 요정 여왕, 티타니아와 사랑에 빠졌던 보텀처럼 말이죠.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인간의 눈은 듣지 못했고, 인간의 귀는 보지 못했으며,
인간의 손은 맛볼 수 없으며, 인간의 혀는 생각할 수 없고, 인간의 심장은 전할 수도 없지.」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4막 1장 (열린책들, 박우수 역)
우리가 경험하는 예술도 한여름 밤의 꿈과 비슷합니다. 예술은 마술을 걸듯 현실 세계에서 우리를 분리해 내어 상상 이상의 것을 꿈꾸게 만듭니다. 꿈이 깨면 환상은 사라지지만 심장을 뛰게 했던 격정은 여전히 남는 것처럼, 작품이 끝나고 나면 남은 여운 덕에 고달픈 현실을 다시 마주할 힘이 마음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솟아납니다.
셰익스피어와 멘델스존이 펼치는 생동감 넘치는 향긋하고 청명한 한여름 밤 숲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여름 밤의 꿈” 전곡 – 서곡op.21(1826), 부수음악op.61(1843)
존 엘리엇 가디너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몬테베르디 콰이어 연주, 세리-린 시손느, 알렉산더 녹스, 프랭키 웨이크필드 연기(2017년 실황 연주)
서곡
1. 스케르초
2. 대사와 음악, 요정들의 행진(리스테소 템포)
3. 요정들의 합창(합창과 독창자들)
4. 대사와 음악(안단테)
5. 인터메초(2막 후)
6. 음악극(알레그로)
7. 야상곡(녹턴)
8. 대사와 음악(안단테)
9. 결혼행진곡(4막 후)
10. 대사와 음악(장례 행진곡)
11. 베르가마스크 춤곡(광대들의 춤)
12. 대사와 음악(1번 곡과 같은 알레그로 비바체)
13. 피날레
아래 링크로 가시면 전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