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한 논객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무 7조’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글은 이틀 만에 20만의 동의를 얻었고, 총 43만여 개의 동의를 얻으며 삽시간에 누리꾼들과, 언론, 정치인들, 작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청와대를 뒤흔든 상소문의 주역 조은산. 그가 게시판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책으로 담아냈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상소문과 같은 제목의 『시무 7조』는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조은산이라는 필명의 외피를 쓴 저자는 평범한 30대 가장으로,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의 비상식과 불의에 맞서며 처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서민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에세이와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진 단편 글, 현 정부에 직언하는 국민청원 상소문과 못 다한 상소문의 뒷이야기를 엮었다.
국민청원 43만 동의가 증명해주듯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작금의 시대에서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으로 하층 시민으로 처절하게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곧 우리를 대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어둠 속의 한 줄기 불씨같이 뜨거운 가슴으로 그려낸 우리의 자화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작가님께서 올리셨던 ‘시무 7조’가 화제였죠. 그만큼 작가님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짧게 본인 소개를 해 주시고 ‘시무 7조’를 쓰시게 된 배경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자 제 아내의 남편입니다. 인천에서도 서해가 가까운 곳에 살아요. 나이는 1982년생으로 한국 나이 40세지만, 앞에 4자를 달게 된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파 만 39세로 표현되는 걸 좋아합니다.
‘시무 7조’를 쓰게 된 배경은 잘못된 정부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 시민으로서의 분노도 일정 부분 작용을 했고요, 그전에 올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청원들이 연달아 비공개 처리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반항심이랄까? 그런 게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시무 7조’를 올리기 전 국토부 장관을 파직하라는 청원을 올렸는데 뚜렷한 이유 없이 비공개 처리가 됐죠. 그때 가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하는 그런 기분.
이번에 동명의 책 『시무 7조』를 출간하셨는데요, ‘시무 7조’가 화제가 됐을 당시 필명 조은산은 작가이거나 혹은 언론사 논설위원일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어요. 그런데 문필 이력이 없는 평범한 애 아빠라는 사실이 꽤 신선한 충격이었죠. 글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쓰게 되신 건가요?
초등학교 시절에 말하기, 듣기, 쓰기 과목이 있었잖아요. 그중에서 쓰기가 가장 좋았어요. 읽는 것은 때론 지루했고 말하기는 도중에 실수를 하거나 버벅일까 무서웠고요, 차분히 앉아 생각하고 내 감정을 정리해나가며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 편안하고 좋았어요.
성장기를 거치면서 나름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방황도 많이 하고 마음고생도 심했죠. 그때부터 일기 형식의 글을 간간이 쓰긴 했는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였어요. 군 시절에 가까운 동료가 총기로 자살을 했었거든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는 전역을 했고 다시 사회로 내던져졌죠. 그때 마음속에 어떤 어둠이랄까. 지독하게 우울한 것들이 생겨나더라고요. 그런데 글을 쓸 때면 그 어두운 것들이 손끝을 통해 날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시무 7조’는 의고체로 쓰인 상소문이란 점이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데요. 작가님 글에 대해 진중권 전 교수는 풍류가 있다 하였고, 최태성 강사도 호평을 했었죠. 의고체는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데, 특별히 의고체 공부를 하셨는지요?
의고체가 쓰이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실상 저희는 항상 듣고 살아요. 사극이라는 드라마 장르는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언제나 TV를 통해 볼 수 있죠. 그리고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대사 역시 의고체의 형식을 갖추게 되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쓰지 않을 뿐이지 그런 예스러운 문체에 이미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지 몰라요. 다만 저는 필요에 의해 듣는 것을 넘어 그것을 썼던 것이고요.
의고체를 따로 배웠다거나 공부한 것은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냥 자연스레 형성된 문체로 표현해 봤던 것뿐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이문열 작가님의 삼국지를 즐겨 읽었고 자기 전엔 아버지가 틀어놓은 TV 사극 속 대사를 들으며 잠을 청했어요. 성인이 됐을 땐 김훈 작가님의 소설을 즐겨 읽었고요. 돌이켜보니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낡고 무거운 문장들에 익숙해 왔고, 그런 것들의 멋을 알아갔던 게 지금의 글에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해요.
이 책에는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요.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상식적인 세상을 바라는 열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상식적인 세상이란 어떤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세상은 단순해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지극히 평범한 하나의 사람으로서 수긍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세상이에요.
돈이 많든 적든 간에 누구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거주 요건을 갖춘 곳에 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러면 국가는 규제를 풀어 좋은 아파트를 많이 공급해 주면 되는 거예요. 그게 상식인 거죠. 구닥다리 빌라촌, 반지하에 서민들 몰아넣고 아파트값만 올려대는 건 비상식적인 거고요.
뉴스 사회란을 한번 봐보세요. 민주와 인권 외치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사람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한 자보다 더 대접받고 사는 현실이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아요. 복지니 분배니 외치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아직도 송파 세 모녀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고 그 와중에 이제는 재정을 풀어 먹고살만한 사람들까지 한몫 챙겨주겠다는 게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세상은 이런 의문조차 애초에 들지 않게 해주는 그런 세상인 것 같아요.
어쩌면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의 선결 조건은, ‘정치적 이념과 사상이 무너진 세상’이겠죠. 저의 글과 이 책은 그 지난한 과정을 지나며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징후 같은 것이고요.
하필 대선판을 앞두고 책이 나왔는데, 혹시 의도를 하신 건지요? 차기 대선 후보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출간은 지난봄에 됐어야 했어요. 책에서도 밝힌 내용이긴 하지만 쓰다 버린 글도 꽤 많았거든요. 첫 출간이기도 하고 ‘시무 7조’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 글이 많이 부담됐었나 봐요. 하루 종일 써도 한 페이지를 못 채운 날도 많았고 하루 종일 생각만 하다 끝난 날도 많았어요. 그렇게 겨우 에필로그까지 송고를 하고 보니 8월이 다 됐네요. 차기 대선 후보에게 할 말은 너무 많아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딱 한마디만 하자면 ‘먹고살게 해 달라’입니다. 먹고사는 것만큼 위대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저는 모든 죄악과 혼돈은 가난에서 비롯되는 거라 봐요. 그러나 모두가 잘사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죠. 하지만 모두가 ‘지금보다’ 잘 사는 나라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앞으로 작가님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정치 사회 비평 논객으로서 향후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치 사회 분야만큼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접점에 선 몇몇 사람들 중 하나가 논객이라는 사람들이고요. 그런 논객이라는 신분으로 지난 1년간 잠시 살아봤어요. 때론 후회가 들기도 했죠. 이토록 아픈 말들로 뒤덮인 세상을 굳이 마주해야 하나.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이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해요. 곧 결정을 내려야 하겠죠.
그러나 만일 제가 정치 사회 비평 논객으로서 계속 살아가게 된다면 먼저 공부를 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의 제게도 ‘시무 7조’를 쓴 것만큼의 거시적인 안목은 있을 수 있겠죠. 또 살며 살아오며 알게 된 경험칙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어떤 현상의 근원이 되는 기초 학문을 알아야 지식과 경험의 일체를 이룰 수 있다고 봐요. 어차피 지식도 우주처럼 팽창해가는 것이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아갈 수는 없겠죠. 그러나 최소한 어느 한 분야의 전문적 지식은 갖춰야 진정한 논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님의 국민청원 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똑같은 현실을 살아가며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우리 역시 모두 조은산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이 세상의 조은산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처음 진인 조은산이라는 필명을 저 스스로 바라봤을 때 많이 기뻤어요. 그리고 세상의 먼지 같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했죠. 그들 중 하나가 된 듯해 평범함 속에 특별하고 당당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이 시대의 모든 진인들이 다 그렇듯이요.
그러나 일고 사라지는 먼지처럼 사람의 인생이 ‘나고 살다 죽었다’로 표현되기엔 그 찰나의 시간들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우리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그곳엔 사랑도 있지만 이별도 있고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있어요. 그런데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것을 때론 아름다운 추억으로 여겨요. 아프지만 우리 스스로 만든 날들이고 기억이기 때문이죠. 저는 이 시대의 모든 진인들과 함께 국가가 아닌, 정치인도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어갈 날들을 살고 싶어요.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조은산 "1982년생, 한 여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 그리고 당신의 이웃이다. 낮에는 월급쟁이로, 밤에는 글쟁이로 산다. 진정한 나는 잊힌 지 오래다. 산 사람을 만나는 일에 종사한다. 종종 죽음을 본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고 또한 두려워한다. 듣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 나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시무 7조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 국민청원 이후에도 블로그에 예리한 비유와 풍자를 담은 ‘정부에 뼈 때리는 글’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은 한 사람의 비판이 아닌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언론과 정치인의 발언에 인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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