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전, 그러니까 여행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시간만 잘 확보하면 언제든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게 주어진 것만 같던 시절, 나에게 여행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 낯선 도시로 찾아드는 일이었다. 다시 가고 싶은 그리운 곳도 많았지만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미지의 곳들이 항상 더 많았다. 예외라면 늦가을에 방문한 아이슬란드를 2년 후 여름에 한 번 더 간 정도일까. 그마저도 마침 출장 갈 일이 생긴 데다 순전히 오로라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로라는 새로운 나라 낯선 도시를 넘어선 우주와의 만남이니까.
그랬던 내가 팬데믹의 시간을 통과하며 꼭 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여행은, 다녀왔던 곳, 길게는 7년 짧게는 5개월, 한때 내가 살았던 도시들을 둘러보는 것이다. 떠남과 동시에 다시 가지 못한 곳들. 살던 동네, 살던 집, 다니던 회사, 다니던 학교, 부지런히 들락거렸던 단골 식당들, 단골 술집들, 자주 타던 버스, 자주 가던 공원, 한국에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데려갔던 관광 스폿들,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 이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립다. 코로나의 위협이 잠잠해진다 해도 얼마든지 또 다른 바이러스가 지금처럼 창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숙지하고 나니, 그러니까 여행의 시간이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알고 나니, 이제는 마음이 오직 그리운 곳들로만 향한다. 안녕한지, 어떻게 변했는지, 무엇이 여전하고 무엇을 상실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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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