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독자들의 기억을 환기하기 위해, 『월간 채널예스』의 신실한 연재 필자였던 두 시인에 대한 소개부터.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이라는 타이틀의 칼럼을 연재한 박연준 시인은 2018년 3월 「밤이 하도 깊어」로 시작해 2019년 11월 「개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총 42개의 원고를 한 치 어김없이 우리에게 전했다. ‘유희경의 이달의 시집서점’을 연재한 유희경 시인은 2019년 7월 「풍경과 만두와 시집서점과」를 시작으로 이듬해 6월 「서점을 잘 운영하는 방법」까지 총 12개의 칼럼을 성실하게 마감했다.
여름볕과 비가 오락가락하던 초여름 어느 날, 두 시인과의 대담을 위해 혜화동에 자리한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원형 계단을 올랐을 때, 두 시인은 예열이라도 하듯 책상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나 성실하고 반듯한 뉘앙스의 포즈로. 인상적인 건, 촬영을 위해 원형 계단을 가운데 두고 두 시인이 마주 섰을 때, 흰 벽 앞에 가로로 놓인 의자에 두 시인이 나란히 앉았을 때, 서점의 공기가 순간 ‘소란’스러웠다는 점이다. 유 시인이 ‘연준’ 하면, 박 시인이 ‘희경’ 하며 정확한 딕션으로 서로를 부르고, 상대에 대한 익숙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화 사이사이 환한 미소와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번졌기 때문이다. 팬데믹 상황과 버무려진 지난 시간의 기억과 근황을 묻고 답할 때의 잠시 잠깐을 빼면, 합이 잘 맞는 두 시인의 티키타카는 대담 내내 경쾌했다. 특히 글쓰기와 책과 『월간 채널예스』를 발음할 때는 더욱더!
팬데믹이라는 무기력한 나날이 거듭되고 있어요. 독자들에게 어떤 근황을 전할 수 있을까요?
박: 매일 얼굴에 이불을 덮고 다닌다는 생각, 정체성을 가리고 다닌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활동적인 편이 아니어서 별 영향은 없는 편인데,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건 정말 아쉬워요. 요즘은 쓰던 글쓰기를 계속하고 7월에 신간을 낼 예정이에요.
유: 서점을 운영하는 터라 절망적이죠. 코로나 초반만 해도 나중에 원위치 하겠지 기대했는데, 요즘은 불안이 커졌어요. 하지만 시로 이야기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시가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뢰와 믿음은 커졌거든요. 사회 현상을 짚고, 팬데믹 현상이 묻어 있는 시들이 보여요. 그런 게 흥미롭죠. 시는 당분간 살아남겠구나 생각해요.
연재를 청탁받고 첫 칼럼을 쓰실 때, 기억하시나요?
박: 최초의 연재여서도 그렇고, 쓰고 싶은 걸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라 정말 설어요. 가장 작은 일, 예를 들면 겨울밤에 혼자 깨기, 봄날 도서관 가기, 편한 옷 입고 카페에 앉아 책읽기 등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이런 소재로 글이 될까 할 수도 있지만, ‘특별한 평범함’이라는 칼럼명처럼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많은 사람의 보편을 끌어낼 수도 있고. 잘 쓰기 어려워도 제대로 잘 써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유: 연재라는 게 기획력 싸움인데, ‘시집서점’이라는 타이틀로 연재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물론 연재에 대한 로망은 늘 있었죠. 연재 필자가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얘기일 수 있으니까. 막상 연재를 하고 보니 1년이 너무 짧아서 아쉽더라고요. 좋았던 건, ‘특별한 평범함’이라는 칼럼 제목처럼 원고를 쓰면서 서점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 점이에요.
연재 칼럼을 쓴다는 일에는 즐거움과 괴로움, 두 가지 소회가 함께 있을 것 같아요.
유: 단연 마감 데드라인이죠. 엄지혜 기자님이 마감 늦는 걸 진짜 싫어한다고 들었거든요. 마감을 잘 못 지키는 편이라 긴장한 탓에 첫 칼럼을 써놓고도 보내는 걸 까먹고 있었어요. 분위기가 바뀌더라고요.(웃음) 그다음부턴 한 번도 늦지 않았어요. 놀랐던 건, 발행 부수가 많은 건 알았지만 많은 곳에서 ‘서점일기’ 책 출간을 묻는 거였어요.
박: 엄지혜 기자님이 첫 독자였는데, 늘 짧은 코멘트를 주셨어요. 그게 응원과 힘이 됐어요. 얼굴도 모르는 편집자들에게도 피드백이 올 정도로 제일 많은 피드백을 받은 연재였고요. 개인적으로 냇물에서 강가로 나가게 해준 고마운 매체입니다.
독자 유희경이 읽은 필자 박연준의 글, 독자 박연준이 읽은 필자 유희경의 글에 대한 독후감도 궁금하네요.
유: 제가 생각하는 박연준 시인은 A급 필자예요. 좋은 소재를 찾아 글을 쓰는 게 필자가 할 일인데, 그걸 해내는 필자거든요. 1980년생 동갑내기 중 메이저에서 첫 시집을 낸 시인이라 반하기도 하고 질투도 했는데, 『소란』을 읽은 후 완전 무릎을 꿇었어요.(웃음) 연재한 칼럼들이 실린 산문집 『모월모일』을 읽곤, ‘이 소재를 이렇게 쓴다고?’, ‘이 친구, 완전 선수다’라고 생각했고요. 클래스 차이를 느끼는데, 그런 박연준 시인이 “유희경이 이렇게 잘 써”라고 SNS에 글을 올렸을 땐 정말 기뻤어요.
박: 유희경 시인의 등단시가 정말 인상적이에요.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게 너무 좋았어요. 시는 한 구절이 제대로 꽂히면 그냥 끝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같은 나이에 시 잘 쓰는 시인이 나타났구나 생각했죠. 얼마 전에는 잠 안 오는 밤에 희경이 쓴 산문을 읽다가 눈물이 툭 떨어지기도 했어요. 역시 멜랑콜리한,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세심한 부분을 건드리는 문장을 잘 쓴다 생각했죠.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과 ‘유희경의 이달의 시집서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칼럼과 문장을 골라주신다면요?
박: 2018년 7월에 쓴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 카페에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눈앞에 일곱 살의 내가 나타나 물끄러미 지켜보는 상상을 하게 됐어요. 어렵고 슬펐고 혼자였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썼는데, 쓰고 나니 괜찮았어요. 마지막 문장을 ‘떠나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미안하지 않다.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다’라고 썼어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산문을 쓰고 치유받을 때가 있는데, 이 원고가 특히 그랬어요. 그런 점에서 산문은 독자와 직접 대화하는 장르 같아요. 시는 노래이고.
유: ‘일요일의 서점’이라는 제목의 칼럼인데, 그날 찾아온 손님들 얘기로 시작해요.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요일?. 사실 일요일에 서점을 여는 게 좋지만은 않은데, 이맘때였나 여전히 해가 다 지지 않은 시간, 생활인들이 혜화동 로터리를 오가는 풍경을 보면서 오늘도 서점 열길 잘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어요. 살짝 클리셰지만, 단 한 명이 시집을 사가더라도 서점 열기를 잘했다고, 힘들어도 이 일은 꽤나 멋지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흔한 말장난일 수도 있지만, ‘박연준의 평범한 특별함’이라는 제목으로 시즌2 연재를 의뢰하면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혹은 필자로서 꼭 한 번 쓰고 싶은 연재의 주제가 있다면 귀띔을 부탁드립니다.
박 : 『월간 채널예스』의 연재 의뢰라면 언제든 오케이죠.(웃음) 요즘 쓰고 싶은 시어가 ‘작은’이라는 형용사예요. 의도한 건 아닌데, 사소함, 작은 인간 같은 단어를 많이 쓰고 있더라고요. 연작으로 쓴다면 ‘작은’이 들어간 글을 쓰고 싶어요. 또 하나는 ‘몸’인데, 어깨는 왜 구부려질까, 발목, 발가락, 옆구리 등 부위를 나눠 심도 있게 써보고 싶고요.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시적인 이야기가 버무려진 내용으로.
유: 연준은 뭘 써도 잘할 거예요. 옆에서 듣다 보면 천재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월간 채널예스』에 실리는 칼럼의 성실한 독자라는 전제로, 두 분이 애정하는 칼럼 필자가 있을까요?
유: 장강명 작가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작가가 지금 같은 주목을 받기 전, 일면식도 없는데 편집자로서 장문의 메일을 보낸 일이 있어요. 출간을 제의하는 메일이었고 결국 불발됐지만 응원의 마음이 컸거든요. 서로 수줍어하며 안부와 응원을 주고받던 사이인데, 시집서점 하면서 조금 멀어졌어요. 고집은 세지만 여리고 소박한 작가라 칼럼을 읽을 때마다 기쁘기도 하고, 얼마나 상처가 많을까 걱정도 하는 중이에요.
박: 저는 이기준 디자이너의 ‘두루뭉술’. 정말 재밌게 읽고, 좋아했어요.
‘종이’라는 물성을 차치하더라도, ‘종이 잡지’는 말 그대로 올드 미디어인 세상이에요. 그런 시대에 ‘종이 잡지’에 연재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종이 잡지’만의 매력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유: 제가 생각하는 연재는 존경하는 선배 문인들이 쓴 결과물이 차곡차곡 쌓이는 거였어요. 문학이 힘을 내던 시절에 대한 동경과 오버랩되는 거죠.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한 뒤 여러 매체에서 연재 의뢰를 받고 진행 중이기도 한데, 앞에서도 얘기했듯 종이 잡지에 연재하는 건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로망을 실현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박: 제 경우엔, 그런 로망은 없어요. 사실 신문이나 잡지는 제일 먼저 처분당하는 입장이잖아요. 하지만 물건을 소유한다는 게 물성이라는 전제로 보면, 디지털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전자책은 편리해서 읽긴 하지만 정말 필요한 책은 사야 하는 것처럼. 책을 들고 어디든 펼쳐 읽는다는 건, 책의 장소성을 공유하는 거라고 봐요. 종이책에는 페이지마다 거리가 있어요. 만지고 닿는다는 느낌도 있고요. 위기라곤 하지만, 생각을 물성화한 종이 책이 없어지진 않을 거라고 봐요.
산문 얘긴 접고, 두 시인과 한자리에 있으니 팬데믹 상황에 놓인 독자들을 위로하고 감동하게 할 만한 시집을 추천받고 싶네요.
유: 덥고 짜증 나고 답답할 때, 민구의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박 신미나의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김복희의 『희망은 사랑을 한다』. 꼭 위트앤시니컬에서 구입하세요.(웃음)
팬데믹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솔솔 들려옵니다. 독자들에게 전할 현재 진행형 작업에 대한 선공개를 부탁드려요.
유: 7월 1일이 위트앤시니컬 5주년이에요. 마침 ‘서점일기’가 책으로 나올 거고요. 제목은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박: 저도 7월에 신간이 나와요. 제목은 『쓰는 기분』.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이라는 가정을 부제로 달았는데, 시가 대단하고 특별하고 시인만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닌, ‘글 쓰는 기분’이 전부인 장르라는 걸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그분들에게 작은 격려와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소박한 추동을 하는 역할인 셈이죠. 또 하나는 『악스트』에 연재 중인 첫 장편소설을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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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완
kirkir
2021.07.16
채널예스의 6주년도, 위트앤시니컬 5주년도 정말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