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원 “소설은 내가 원하는 말하기 방식”
저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제 이야기만 해야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해야 하는 말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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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서장원의 첫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됐다.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 너머 도사린 파국의 기미를 정제된 문장과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그는 유수의 문예지에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소설 독자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겨왔다. 이번에 출간되는 소설집에는 그간 발표한 단편소설 9편을 한데 묶어 선보인다.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름, 작가 서장원을 인터뷰로 먼저 만나보자.



오랫동안 소설을 써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을 쓰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소설을 쓴지 정말 오래되었네요. 첫 단편소설을 완성한 것이 2012년 겨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동력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하는 말하기의 방식이 소설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계속 있는 한, 소설도 계속 쓸 것 같습니다. 

등단작인 「해가 지기 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의사 아들을 만나러 가는 중년 여성 기선의 하루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뒤에 발표한 작품에서도 중장년층이 여럿 등장하고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삶이 부정당할 위기에 직면한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 시절에는 그런 위기를 맞이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잘못을 수습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시도할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이 많지 않은, 중년을 넘긴 인물이 이러한 위기에 직면할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해가 지기 전에」의 기선이나 「주례」의 경목, 「해변의 밤」의 화자 모두가 그래요. 이들은 자신이 잘못한 사람들로부터 이미 버림받았기 때문에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시 시도할 시간도 없고요. 하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길게 남아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이 인물들이 주어진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그런 게 궁금했던 것 같아요.  

작가님 소설에는 강아지들도 자주 나와요. 「해변의 밤」에서는 아들이 데려온 강아지, 「태풍을 기다리는 저녁」에서는 펜션에 남겨진 개, 「망원」에서는 주인공이 전 남자 친구와 키우던 반려견 망고가 등장합니다. 소설 속 강아지들은 지나간 시절을 환기시키는 어떤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혹시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사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저의 오랜 꿈이었는데, 여태까지 강아지와 함께 살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소설 속에 강아지들을 등장시켜서 약간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들에게 특별한 상징을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소설 속 강아지의 등장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강아지들은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잖아요. 말씀하신 「태풍을 기다리는 저녁」, 「망원」, 「해변의 밤」에는 인간들이 무참한 감정을 느낄 때 마냥 기분 좋은 강아지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대비가 좋았어요. 아무런 악의 없이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모른 척하는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망원」의 화자의 경우에는 그런 망고의 존재에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표제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사라져버리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의 의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소설가인 등장인물이 겪을 내적 갈등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작가님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처럼도 느껴졌어요. 소설을 쓰실 때 어디에 중점을 두시는 편인가요?

저 문장이 조금은 소설가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다 쓰고 난 다음에 든 생각이지만요. 이 문장은 30대의 시스젠더 헤테로 기혼 여성(나중에는 정체성에 변화를 겪지만 저 문장을 생각했던 당시에는)이 레즈비언 고교 동창 민주를 두고 떠올린 것입니다. 민주가 먼저 부탁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시혜적인 뉘앙스가 있지요. 저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제 이야기만 해야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해야 하는 말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아들을 보러 길을 떠나는 중년 여성, 제자의 주례를 서러 가는 퇴임한 고등학교 선생, 죽은 애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 소설가, 임신중절 수술을 앞둔 친구를 만나러 가는 트랜스젠더 여성 등, 다양한 인물의 삶을 그려내셨어요. 이런 인물들에 대한 실마리는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는지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어디서 제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리고 또 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는지요.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책에 실린 소설은 대부분 다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주례」는 처음에 용주의 이야기였어요. 성인이 된 용주가 고교 시절 자신의 괴롭혔던 교사 경목에게 주례를 핑계 삼아 복수하는 이야기였지요. 다 써놓고 보니 엉망인 글이었고, 저는 그 소설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을 두고 경목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다시 썼어요.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했을 때, 지금의 화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민주가 죽은 연인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거든요. 그러나 그 소설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버려두었어요. 그리고 1년쯤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형태로 다시 썼고요. 그러니까 어쩌면 이 인물들의 실마리는 이전에 쓰고 버린 소설에 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처음에는 조연으로 등장했던 인물들이 자신 몫의 이야기를 하게 된 셈이니까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장면을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 장면은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해피 투게더」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아끼는 소설이  「해피 투게더」인데요.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장면이어서 아마 그 소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그 장면을 쓰는 동안에는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화자가 결국 혼자 남겨지고, 불안하고 쓸쓸한 마음이 된다는 점에서요. 다만 이 장면 이후에는 화자가 어떻게든 삶을 꾸려갈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굳센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프랑스 영화처럼」의 마지막 장면도 무척 좋아합니다. 두 사람이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편안한 밤을 보내니까요. 

요즘에는 어떤 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나요?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요즘 최대 관심사는 ‘학교 내 청소년’입니다. 올해 초봄에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 단편집에 실을 소설을 청탁받아서 이것저것 찾아 읽고 있어요. 사실 마감이 코앞인데, 소설에 대한 가닥은 전혀 잡지 못했고요. 아마도 퀴어 청소년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을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년 초에 앤솔러지 소설집이 출간된다고 알고 있는데, 아마 거기에 실리는 소설이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이후로 발표하는 첫 단편소설이 될 것 같아요. 


*서장원(소설가) 

1990년에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전공 전문사를 졸업했다.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해가 지기 전에」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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