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며칠 전에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했잖아요. 저희 단톡방도 들썩였는데요. 그러다가 나온 주제였습니다. 오늘 주제는 ‘윤여정 님만큼이나 멋진 책’입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김금숙 글, 그림 | 딸기책방
예전에 ‘이프로’님이 <어떤,책임>에 출연하신 적이 있죠. 그때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를 소개해주셨는데요. 저도 소개 후에 바로 읽었어요. 한 번 읽으면 잊히지 않는 강렬한 책이었어요. 그밖에도 김금숙 작가님은 제주 4.3 항쟁의 비극을 다룬 만화 『지슬』도 그리셨거든요. 영화 <지슬>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만화는 김금숙 작가님만의 시선을 볼 수 있어서 새롭게 좋았고요. 이후 완전 작가님의 팬이 됐어요. 작년에 또 놀라운 소식이 있었죠.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옥선 운동가님 이야기를 다룬 『풀』이라는 작품이 2020년,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미국 ‘하비상’ 최고의 국제도서상을 수상했어요. 그 외에도 2019년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최고의 그래픽노블’에 선정되었고요. 미국 <뉴욕타임스>가 2019년 최고의 만화로 꼽기도 했습니다.
『기다림』은 2020년 출간된, 김금숙 작가님의 가장 최근작이고요.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이 『풀』 작업을 할 때 『풀』의 2부격으로 어떤 소재를 선택할까 생각하다 이산가족을 떠올렸대요. 실제로 작가님의 어머니가 이산가족 당사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책은 화자인 ‘진아’라는 인물이 엄마 ‘귀자’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면서 시작하고요. 장이 넘어가면서 엄마 귀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귀자의 이야기는 흔히 이산가족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요. 이 작품을 보면 개인의 독특한 경험, 이산가족이라는 단편적인 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깊은 아픔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생각하게 돼요. 앞서 『풀』 이야기도 했잖아요. 우리가 ‘이옥선 할머니’라고 칭하는 이옥선 평화운동가님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 한 명 한 명이 어떤 고통을 겪고 평생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깊이 들여다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김금숙 작가님의 작품들이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들려주어서 너무 좋아요. 한 개인의 단독성이라든지 그 개인들만이 가진 그 독특한 위치가 놀라운 동시에 그렇다면 독특한 위치를 가진 이야기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신미나(싱고) 저 | 창비
저는 제가 못하는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을 보면 더 매력을 많이 느끼고, 멋지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 시집이 그랬습니다. 저라면 다르게 쓸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었거든요. 그런 느낌 때문에 이 시집이 더욱더 사랑스러웠던 것 같고요. 최근 읽은 아주 인상적인 시집이었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신미나 시인님은 2007년 <경향신문>으로 데뷔하셨으니까 데뷔한 지 14년인데요. 그동안 시집 두 권을 내셨어요. 7년 한 권 꼴로 시집을 내신 거죠. 그만큼 천천히 쓰시는 것도 같고요. 한 권의 시집이 하나의 세계라고 했을 때 그 세계를 일구는 시간을 굉장히 촘촘하게 갖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맨바닥에서
제 무게를 이고 있는
그릇의 굽
그 높이를
당신이라 불러도 좋겠습니까
늦어도 천천히 오라고
기다려준 이들에게
이 노래를
함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이 시집이 계속해서 여운이 남았던 것은 함께 사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집에는 어머니도 많이 등장하고요. 아버지도, 할머니도, 병든 사람들도 많이 등장을 해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역설하는 시들이 참 많은데요. 보통 시인이라면 어떤 세계를 창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시작하는 이야기를 많이 할 텐데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는 시작이 아니라 지금껏 해왔던 것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지, 어떻게 잘 계속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속되는 것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시에 많이 등장한다고 말씀드렸던 어머니나 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런 유한한 것들이 가득한 세계에 사니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응시하고 붙들려는 마음이 없으면 이런 것들을 쓸 수 없지 않을까 싶어요.
만나본 적이 없는 그 사람들의 육성이 시에 실린 느낌이 들었거든요. 모든 아름다움은 정말 오랫동안 응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응시했을 때 발견이 가능해지고요. 발견이 싹텄다는 것은 사랑이 그 안에 있었다는 얘기기도 하잖아요. 또 이것을 기록한다는 건 묵묵하고 진득한 태도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모든 어떤 과정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시집이었습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씨네21(주) 저 | 씨네21(주)
너무나 윤여정스러운, 너무나 윤여정을 말하는 책입니다. 예스24에서 잡지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씨네21> 창간 26주년 기념 특대호이자, 윤여정 배우가 커버로 실린 잡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마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것을 예상하고 기자 분들이 밤새면서 준비한 잡지일 것 같아요. 저는 기자들 중에 주간지 기자가 가장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물론 유료로 보는 페이지나 기사도 있지만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기사를 다 볼 수 있고, 정기 구독도 많이들 하지는 않아서 잡지가 되게 힘들잖아요. 그런데 <씨네21>이 창간 26주년을 맞았다는 것도 되게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봤어요.
스페셜 에디션으로 실린 윤여정의 이야기가 정말 다양하게 있는데요. 편집장 레터에 제가 이 잡지를 가지고 온 이유가 담겨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스페셜 에디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증언으로 추측건대, 배우 윤여정은 어쩌면 이 책을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 인생 선배로서의 한마디를 원하는 후배 연예인에게 “나 메시지 주는 거 제일 싫어해! 내가 교황이냐?”라고 응수하는 사람, 감독과 제작진에 기립박수를 선사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박수의 몫은 감독에게 돌리고 자신의 현실의 무대도 담담하게 복귀하려던 이가 윤여정이니까.
대단한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그냥 주간지, 정말 지금 현실에 있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잡지를 소개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윤여정의 사람들이 말하는 윤여정’이라고 해서 윤여정 배우님의 지인 분들이 글을 보내오기도 했는데요.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게 연시우라는 비주얼 디렉터의 얘기였어요. 화보 촬영을 막상 가면 연예인들이 되게 준비를 안 해오고, 술 마셔서 눈 퉁퉁 부어오는 사람들이 많대요. 그런데 윤여정 배우님은 페이스 커버를 가지고 온 거예요. 연시우 디렉터는 자신이 10년 넘게 화보를 찍으면서 페이스 커버 준비해 온 배우가 처음이었다면서 이런 글을 남겼어요. “그녀는 말 대신 페이스 커버를 이용하는 세련된 방식으로 낯선 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첫째, 어떤 방식으로든(설사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고 상대방 역시 난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둘째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윤여정 배우님이 수상 소감을 말할 때 김기영 감독님, 정이삭 감독님을 얘기하기도 했잖아요. 어쨌든 자기를 발견해주고, 자기를 선택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모습이 너무 좋았거든요. 여러분들이 꼭 잡지를 보고, 기사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무기력해질 때 ‘윤여정’을 유튜브에서 몇 개 검색해서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자극이 되고 힘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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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