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하루] 그 남자의 취미 – 이수연
아빠는 부지런했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복이 많았다.
글ㆍ사진 이수연(나도, 에세이스트)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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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언스플래쉬

아빠는 부지런했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복이 많았다. 주5일제가 기본이던 시절에 그는 티브이 채널만 돌리면서 무료하게 휴일을 보냈다. 그리고 가끔 엄마의 눈치를 보다가 낚시를 하러 갔다.

엄마는 아빠의 유일한 취미인 낚시를 싫어했다. 점집에서 남편 사주에 살이 많아 더이상 살생을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평생 유리 다루는 일을 해온 그는 필연적으로 자주 다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게 다 전생의 업보라고 현생엔 덕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했다. 낚시보다 직업을 바꾸는 편이 더 현실적이었겠지만 한 명이 벌어 겨우 입에 풀칠하던 시절에 그녀가 포기할 수 있었던 선택지는 아마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말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았다.

낚시에는 조수가 필요했다. 그는 나를 봉고차에 태우고 가까운 개천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낚싯줄에 지렁이를 꿰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초보기 때문에 미끼를 아껴 써야 했다. 나는 돌로 지렁이를 찧어서 반 토막을 냈다. 어린 딸은 물고기를 잡기도 전에 살생을 했다. 그렇게 몸통이 반밖에 없는 지렁이를 달고 낚싯대를 던지면 힘이 달려 멀리 가지 못하고 낚싯바늘이 코앞에 떨어져 번번이 바위틈에 걸리곤 했다.

돈이 들지 않는 낚시에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수가 있어야 했다. 그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떠드는 쪽은 주로 나였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풍경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햇빛을 받아 일렁이며 반짝이던 잔물결과 그 위에 부드럽게 흔들리던 형광색 찌, 녹이 슨 낚시 의자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던 그의 둥근 등, 물에 젖은 흙냄새와 풀냄새. 고요한 풍경 속에서 두 부녀는 햇살을 받으며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동안 낚싯대만 드리우다 입질이 오는 건 매운탕 거리나 겨우 할 정도의 피라미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빠는 정말 나를 데리고 낚시할 생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주말에 어린 딸에게 바람이라도 쐬어 줄 요량으로 데리고 갈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애꿎은 미끼만 동강 내고 별 수확 없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가 늘상 하는 말이 있었다.

“이만한 거 잡았는데 불쌍해서 다 놔주고 왔지.”

훌륭한 조수답게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먹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와의 낚시 동행은 오래가진 못했다. 그러고 자연스럽게 그가 혼자서 낚시를 하러 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는 이제 티브이에서 <도시 어부>와 <나는 자연인이다>를 재밌게 본다. 엄마가 걱정하던 현생에서의 살이 준 만큼 그의 낙도 그만큼 줄어버렸다.

호기롭게 딸의 방문을 벌컥벌컥 열던 그는 이제 집에 한번 내려오라는 말도 쉽게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오는 것도 고생이고,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 당분간 올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한다.

“단디 먹고 단디 잘해라.”

무엇이든 ‘단디’하라는 그의 짧은 조언이 끝나면 전화는 엄마에게로 넘어간다. 엄마는 ‘단디’ 해야 할 것들을 끝도 없이 길게 푸는 재주가 있어 그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 전한다. 그리고 우리 걱정은 말고 잘 지내라며 아쉬운 전화를 끊는다.

이제 모든 것들을 혼자서 단디 처리하고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 내 힘으로 미끼를 단 낚싯대가 쉴새 없이 흔들린다. 수면에 걸친 찌가 밑으로 빠져들어 가는데 나는 낚싯대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낚은 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두려운 나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간다. 그럴 때면 조수 노릇을 하던 그때가 무척이나 그립다.


이수연 부산에서 상경해 동생과 불편한 동거 중.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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