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무덤덤한 편인 내가 가끔 발을 동동 구를 만큼 기대되는 때가 있는데 백희나 작가의 새 책을 받아 든 순간이 그렇다. 무슨 이야기일까? 어떤 캐릭터가 나올까? 어떤 웃음을 줄까? 설레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열게 된다. 한번 읽었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면 처음 읽을 때는 안 보였던 웃음 장치가 꼭 나온다. ‘어떻게 이걸 못 봤지?’ 하며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작업을 몇 번 반복해야 비로소 제대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다.
백희나 작가의 책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책은 『장수탕 선녀님』이다. 『알사탕』도 『달 샤베트』도 좋지만 볼 때마다 나를 웃게 만드는 책은 『장수탕 선녀님』이다. 표지부터 ‘자, 웃을 준비를 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얼굴에 비해 상당히 조그만 손으로 요구르트를 꼭 잡고 그 맛을 음미하는 선녀님의 오묘한 표정에서 매번 웃음이 터진다.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울지 않고 때를 밀면 엄마가 요구르트를 하나 사주실 거다.’라는 텍스트 뒤로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며 냉장고 속 요구르트를 바라보는 덕지의 뒷모습이 그려진 장면이다.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내민 덕지의 재미있는 자세도 물론 좋지만 글에서는 충분히 되지 않은 요구르트에 대한 덕지의 갈망, 저것을 위해서라면 때 미는 것쯤은 견뎌낼 거라는 의지가 그려져서 좋다. 이어 나올 내용에서 덕지가 요구르트를 양보할 때 얼마나 큰 것을 양보한 것인지가 이 장면으로 인해 풍성해진다. 구체적인 대사나 표정 묘사 없이 동세만으로 인물의 마음이 표현된다는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감탄하며 바라보게 되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보면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나라면,
첫째, 울지 않으면 요구르트 사줄 거라고 말하는 엄마와 그 말을 듣는 덕지의 옆모습을 그리면서 엄마의 머리 위로 요구르트가 담긴 말풍선을 넣기.
둘째, 요구르트가 담긴 냉장고를 바라보는 덕지의 결연한 표정을 보여주면서 말풍선 안에 우는 덕지의 얼굴 위로 엑스표를 그리기.
하아… 이런 나의 상상력과 비교해보면 이 장면이 얼마나 멋지게 표현된 것인지 더 잘 알 수 있다.
문득 백희나 작가의 책이 얼마나 좋은지를 계속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일 텐데. 그래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나는 10여 년 전에 백희나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경험이 있다. 열명 이하의 학생이 모여서 숙제로 써온 글을 돌아가며 읽고 코멘트를 해주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그 수업에서 내가 배운 것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베스트셀러 작가 백희나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 공개
1. 매주 두 개의 글을 쓴다.
숙제로 매주(혹은 격주) 두 편의 글을 썼다. 1년 정도 반복하다 보니 글감 찾기나 글쓰기에 조금 익숙해졌다.
2. 써온 글을 소리 내어 발표한다.
혼자 읽는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학생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이 역시 반복하다 보니 글을 여러 사람 앞에 내어놓는 일이 편해졌다.
3. 다른 이가 발표하는 글을 경청하고 코멘트한다.
내용이 불분명한 부분, 다르게 생각해 봐도 좋을 부분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한다.
4. 완성된 글은 며칠간 보지 않고 내버려 둔 후 다시 읽어본다. 그리고 수정한다.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만화든 글이든 며칠 묵히는 시간까지 생각해서 마감 일정을 잡으려 한다.
다른 글쓰기 수업은 들은 적이 없어서 특별한 수업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지금도 내 일에 적용하려고 한다. 얼마전 트위터를 통해 백희나 선생님이 신작을 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보았다. 내 발이 다시 동동 구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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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