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영의 언어는 권력이다] 지방 : 변방에서 살아가기
스무살까지 내 입에 배어 있던 강원도 억양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장소를 떠나며 주변이 비강원도인으로 배치되다 보니 억양은 탈락했으나 어휘는 남았다.
글ㆍ사진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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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팔다리일까

“사람 몸으로 치면 머리는 점점 커지는데 팔다리는 자꾸 쪼그라드는 꼴입니다.” 

2021년 1월 6일 KBS 9시 뉴스,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을 전하는 앵커의 발언이다. 출산율이 떨어지며 한국의 인구는 차차 자연감소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는 비대해지는 중이다. 2019년 12월 이후로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를 넘었다. 5200만 명 가까운 인구 중에 약 2600만 명이 수도권에 거주한다. 수도권이 팽창하는 만큼 지방 인구는 줄고 있다. 그래서 이를 두고 머리는 커지는데 팔다리는 쪼그라든다고 말한다.

수도권의 ‘수’는 머리 수(首)이니, 수도권 인구 증가를 ‘커지는 머리’로 비유하는 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게다가 교통을 살펴보면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역으로 뻗어나간다. 강원도 양양에서 강원도 철원을 가는 것보다, 물리적으로 더 멀리 있는 서울로 가는 교통이 훨씬 더 편하고 빠르다. 이동인구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듯이 서울, 나아가 수도권은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다.

게다가 실제 물리적 방향과 별개로 늘 수도로 ‘올라간다’고 표현한다. 위도상으로 보자면 고성에서 서울로 ‘내려간다’가 적합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 동부의 로렌 지방 사람들도 서쪽인 파리로 향하며 ‘올라간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왕이 살았고, 오늘날에도 왕이나 대통령이 거주하는 수도는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머리처럼 높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도가 머리로 비유된다고 하여 지방이 팔다리가 될 수 있을까. 비유는 기본적인 사상을 담는다. 우리가 정말 지방을 인간의 몸 중에서 팔다리로 여긴다면 수도의 명령을 지방이 수행해야 마땅하다. 또한 사람에게 머리가 없으면 곧장 사망이지만 팔과 다리는 그렇지 않다. ‘수족 부리듯 하다’에서 알 수 있듯이 손과 발은 실질적 업무를 수행하지만 결정권은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몸집은 다를지언정 각각의 지역이 모두 하나의 세계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를 머리-팔다리에 비유함으로써 은연중에 지방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팔다리가 쪼그라드는 것을 걱정할 때 걱정의 대상은 팔다리인가, 팔다리를 잃어서 아쉬운 머리인가. 팔다리처럼 핵심은 되지 못하지만, 없으면 모든 면에서 아쉬운 존재인 양 바라보게 되는 지방. 그래서였을까. 지난여름 부산에서 집중호우로 순식간에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재난방송은 한 발 늦었다.

언스플래쉬쓰레기가 모이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외곽들

서울을 둘러싼 서울 바깥의 도로인 외곽순환고속도로가 2020년 9월부터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재명 도지사의 공약이었다. 지방 분권 시대에 경기도가 서울의 ‘외곽’으로 불리는 것은 낡은 관념이라는 이유였다. 고속도로 이름에서 ‘외곽’을 빼는 것이 정치인의 공약이 될 정도로 외곽, 변방, 변두리, 주변 등은 위계상 낮은 위치이며 덜 중요하고 나아가 업신여겨지는 대상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에서는 수도권이 중심이지만 수도권 안에서는 서울과 경기도 간의 위계가 있다. 이 위계에 민감히 반응한 데에는, 서울시장만큼 경기도지사의 위치를 정치적으로 ‘동일한 중심’에 두고자 하는 이재명의 야심도 개입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도로명에서 ‘외곽’을 빼는 것으로 수도와 경기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다면 좋겠지만, 단지 ‘외곽’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여전히 세련되지 못함을 ‘촌스럽다’ 하고, 비하의 의미로 특정 지역을 ‘깡촌’이라 부른다. 그러다가 ‘로컬’을 소환한다. 요즘은 ‘로컬 힙스터’들도 생겼다. 이때 ‘로컬’은 서핑을 하고, 맛집을 가는 등 대체로 소비의 대상이 되는 개념이다. 부르디외는 ‘촌사람’이라는 단어를 농촌을 떠난 사람 앞에서 사용했을 때, 이 단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는 거라며 “어떤 단어도 결백하지 않다”고 한다.

소비의 대상인 ‘로컬’이지만 동시에 수도에서 배출한 쓰레기를 받고, 수도가 사용할 에너지를 공급한다. 서울의 쓰레기는 그동안 인천으로 모였다. 인천은 2025년 매립지를 종료하기로 했다. 전력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충남 지역이지만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경기도이다. 지역에 새로운 발전 시절이나 쓰레기 매립지 등이 들어올 때마다 지역 주민의 반발은 늘 지역민의 이기심으로 왜곡되었다.

그린뉴딜 정책의 일환인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를 전라남도의 신안에 지을 예정이다. 아무리 전환을 거듭해도 서울에서 사용할 에너지는 서울에서 생산하고, 서울에서 만들어진 쓰레기를 서울에서 처리할 방안에 대해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이익은 도시로, 피해는 지역으로 향한다.

지방은 기후 위기로 인한 변화도 먼저 알아차린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지역은 주로 해안가이다. 지구 온도의 상승으로 해수면이 올라가고 진짜 외곽 도시들이 사라질 것이다. 2100년 즈음이면 지도상에서 프랑스의 몇몇 도시들이 사라질 것이라 한다.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칼레의 시민들’로 잘 알려진 프랑스 북부의 칼레, 카트린 드뇌브가 나오는 <쉘부르의 우산>의 배경인 쉘부르 등 유명한 항구 도시들이 서서히 물속으로 잠기고 있다.


방언의 위계

어릴 때 강원도의 우리 집에서 하숙하던 학생들은 서울 남성, 혹은 경상도 남성이 다수였다. 하루는 서울 출신 하숙생이 나를 ‘간나’라고 불렀다. 간나는 북한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속어이다. 어린 여자 아이를 가리키는 욕이지만, ‘년’이 남성을 향한 더 상스러운 욕으로 쓰이듯이 ‘간나’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욕으로 쓰인다. 하숙생이 장난스럽게 나를 ‘간나’라 부르며 큭큭 웃을 때 나는 곧장 화를 냈다. 그는 “간나는 북한에서 그냥 여자한테 하는 말이다. 강원도에서 북한 말 비슷하게 쓰지 않느냐”라며 욕이 아니라고 우겼다. ‘간나’는 북한에서도 강원도에서도 욕이다. 실제로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다닐 때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에게 아주 심한 쌍욕을 할 때 ‘간나’를 사용했다.

이 일화는 지방/여성/아이를 대하는 서울/남성/어른의 차별적 태도가 농축된 ‘좋은’ 사례다. 지금도 강원도 말이 북한 말과 비슷하다고 하거나, ‘조선족’ 말투라고 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난다. 표준어가 아니며, ‘권력의 표준어’라 불리는 경상도 언어도 아닌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언어는 훨씬 더 웃음의 대상이 된다. ‘아무런 의도 없이’ 하는 말일지라도 실은 은근한 비하가 내포되어 있다. 게다가 강원도 말과 북한 말, 또 북한에서도 평안도와 함경도의 언어는 조금씩 다르다. 실제로 2019년 삼척에 목선을 타고 온 북한 사람을 만난 주민은 ‘북한 말투를 쓰는 사람’이 왔다고 신고했다.

노예제 폐지론자 소저너 트루스가 1851년 오하이오에서 한 유명한 연설,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는 처음에 남부 방언이 들어간 연설문으로 작성되었다. 뉴욕 출신이며 네덜란드어가 모국어인 트루스는 남부 방언을 사용하지 않았다. 스스로 글을 쓸 수 없었던 그의 연설은 다른 사람에 의해 여러 차례 수정되어 문자로 옮겨졌다. 오늘날 알려진 연설은 1863년 수정된 것으로, 실제 트루스의 연설에 가장 가까운 연설문이다. 노예 출신 흑인은 ‘올바르지 않은’ 남부 언어를 쓴다는 차별적 의식 때문에 실제 그의 연설과 달리 연설문에는 남부 방언이 들어간 것이다.  『언어와 상징권력』에서 부르디외가 ‘민중언어’는 “올바른 언어에서 배제된 것 전체를 가리킨다”며 ‘민중적’이라는 개념을 다각도로 비판했듯이, ‘구수한 민중의 언어’는 동시에 올바르지 않은 언어로 평가절하된다.

스무살까지 내 입에 배어 있던 강원도 억양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장소를 떠나며 주변이 비강원도인으로 배치되다 보니 억양은 탈락했으나 어휘는 남았다. 나는 표준어 사용자지만 새치, 심퉁이, 섭, 뚜거리, 감주 등 지역성이 담긴 먹거리 관련 어휘는 굳이 방언을 고집한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질 때마다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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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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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비

2021.05.25

와! 이런 글이라뇨! 지방에 살면서, 나이들면서 새롭게 느끼는 부분이라 이 글이 더 와닿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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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