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다. 다들 겨울이 춥다고 하지만 나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몇 해 전 어떤 옷을 만난 이후로 전처럼 심하게 추위를 타지 않는다. 조금 비싸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산 니트였는데 이상하게 그 옷을 입은 날은 덜 추웠다. 유난히 두꺼운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찬찬히 살펴보다가 섬유 혼용률을 보게 되었다. 울 90% 캐시미어 10%. 내가 가진 다른 니트의 섬유 혼용률을 확인하니 면이나 아크릴이 대부분이었다. 소재에 따라 따뜻함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조금 비싸도 니트는 울이나 캐시미어가 함유된 것을 구입한다. 옷뿐 아니라 양말도 울 소재로 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사서 신으니 더욱 덜 추웠다. 믿기 어렵겠지만 서른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다.
남들은 어떨까? 다들 옷을 살 때는 섬유 혼용률을 확인하면서 구입하고 많이 추운 날에는 면보다 울 소재 옷을 꺼내 입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런 것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엄마에게? 아빠에게? 선생님에게? 나에게 그런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화들짝 놀라시려나? 어쩌면 다 알려준 것을 잔소리로 흘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옷뿐만이 아니다. 옷장 정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신발 관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당연히 알아야 할 것 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잘 모르는 것이 많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자신만만 생활책’ 시리즈는 이런 ‘사소해 보여서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런 것까지 책으로?’라는 생각이 들 법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참 귀하다. ‘이런 것까지’의 ‘이런’은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책상 잘 쓰는 법』, 『옷 잘 입는 법』, 『음식 잘 먹는 법』, 『쓰레기를 다시 쓰는 법』, 『멋진 사람이 되는 법』 등 제목만 봐도 흥미롭다. 그중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책은 이고은 작가가 쓴 『책상 잘 쓰는 법』이다. 이고은 작가는 전작 『나의 엉뚱한 머리카락 연구』 를 통해 엄청난 관찰력을 뽐낸 작가인데 (『나의 엉뚱한 머리카락 연구』는 내 머리카락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머리를 감고 말리는 방법 (바쁠 때와 안 바쁠 때의 방법이 다르다), 아빠 머리카락(탈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엄마 머리카락(볼륨 살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모자, 가발, 미용실 등으로 뻗어나가는 관찰 보고서이다.)
『책상 잘 쓰는 법』에서 ‘책상’이라는 소재를 만나 이 관찰력을 화산처럼 폭발시킨다.'책상이라면 내가 일가견이 있지, 하루 종일 머무는 곳이 책상인 걸’ 하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작업했을 작가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책의 제목은 『책상 잘 쓰는 법』이지만 책상 사용법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책상 위에서(혹은 아래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과 물건 사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목차를 보면 ‘책상에서 노는 방법’, ‘책 읽는 방법’, ‘연필 깎는 방법’, ‘지우개 가루 정리 법’ ‘A4 종이로 할 수 있는 것들’ 등이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직선을 긋는 방법’, ‘동그라미를 그리는 방법’, ‘남는 종이를 모아 두는 방법’ 등 세세한 노하우가 가득하다. 모두 꼼꼼한 그림과 함께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냥 웃으며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는 사용법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콘텐츠란 보고 난 다음에 할 말이 많이 떠오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좋은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나는 어떤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쓸 수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집 안을 둘러보다가 싱크대에 눈길이 갔다. ‘싱크대 잘 쓰는 법’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싱크대의 종류, 칸마다 담으면 좋을 물건, 설거지하는 방법, 수세미의 역사, 세제의 종류,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방법 등등 꽤 흥미로운 목차가 떠오른다. 냉장고는 어떨까? ’냉장고 잘 쓰는 법’을 쓴다면? ‘세탁기 잘 쓰는 법’은? ‘텔레비전 잘 보는 법’은? 끝도 없이 많은 상상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어진다. 친구나 가족과 책을 같이 보고 서로 어떤 책을 쓸 수 있을지 추천해 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린이가 어른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고 했을 때, 어떤 어른을 만나느냐에 따라 정보의 양과 질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한다.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부분은 이런 책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활 습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어른보다 더 멋진 선생님이 되어 줄 책이다. 나는 다음 책으로 『옷 잘 입는 법』을 읽으려 한다. 섬유 혼용률외에도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이고은 이 책을 그리는 동안 둘째 아이를 품고 낳았습니다. 임신 중의 불안과 육아의 수고로움, 모든 엄마들이 겪었지만 그렇다고 당연하지 않은 그 과정이 그림을 그리면서 이해받고 격려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이제 제가 다시 용기 내서 성장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나의 엉뚱한 머리카락 연구』 『책상, 잘 쓰는법』 을 쓰고 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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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