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이제 보아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 솔로 가수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아시아의 별' 같은 거창한 칭호를 잠시 내려놓아도 케이팝 세계화의 프로토타입, 가혹한 트레이닝과 거듭된 의문을 모두 감내하고 이겨낸 극복 스토리, 쉬지 않고 탄탄히 쌓아 올린 디스코그래피가 넘볼 수 없는 입지전(立志傳)을 구축한다. 하지만 10번째 정규 앨범
'Better'의 전면 배치부터가 그렇다. 실험적이었던 'Woman'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Kiss my lips', 'Only one' 대신 오랜만에 정통 SMP를 복각하는 모습은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결코 대중적인 선택지라 볼 수 없음에도 이 곡을 상징적인 작품의 타이틀로 선정했다는 데서 회사는 'ID : Peace B'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아의 서사를 핵심 아이덴티티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이것이 자사의 세계관 중심에 있음을 역설한다. 과감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힘 있는 가창과 퍼포먼스로 완성하는 노래 속 2020년의 보아가 2000년대의 보아, 2010년대 보아와 함께 호흡한다.
여러 부분에서 <Better>는
그럼에도 보아의 영민한 곡 해석 능력과 장르 불문의 아우라는 안이한 노래에도 특별함을 부여한다. 런던 노이즈(LDN Noise)가 제공한 선 굵은 베이스 기반의 디스코 곡 'L.O.V.E'에서 팔세토 가창으로 코러스와 호흡을 맞추며 감각적인 면모를 더하더니 모던한 'Honey & diamonds'에서는 섬세한 가녀림과 강한 확신을 오가며 내부의 다양한 무드를 오간다. 미니멀한 비트에서 한껏 숨을 죽이고 냉정하게 켄지의 가사를 내뱉는 'Cut me off'도 독특한 지점. 2010년대 초중반 유행한 팝 스타일을 가리키는 수록곡임에도 매끄럽게 잘 소화하여 현재의 것으로 옮겨오는 관록이 돋보인다.
일률적 기획의 아쉬움은 감동을 선사하는 쪽이 퍼포머로의 보아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현재와 미래를 투영하는 보아의 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로파이 질감의 유행하는 얼트 알앤비 장르를 활용한 'Cloud', 공간감 있는 구성과 두터운 하모니, 벅차오르는 드럼의 'Start over'는 그가 갈 수 있는 길이 아직도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잘 만든 팝 앨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멈춤 없이 진격을 외친 것에 비해 음악 그 자체로 큰 파도를 몰고 오진 못한다. 자연스러운 감동 이전에 SM 브랜드 철학의 재확립 전략과 그 속에서 보아의 '경영철학' 역할이 먼저 다가온다. SM은 보아가 있기에 어떤 확장과 다소 허황되어 보이는 도전이라도 과감히 시도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최근작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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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sj1413
202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