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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심야, 본능에서 얻어낸 해소의 소리

김심야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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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름을 내걸면서까지 얻고자 한 것도 결국 본능에 가장 가까운 소리에서 얻어낸 철저한 해소의 도구다. (2021.01.06)


김심야의 다음 목적지는 개인 작업물이다. 프로젝트 그룹을 거치며 쌓아온 굵직한 커리어에서 벗어나, 10월경 발표된 믹스테입 <Bundle1>과 정규 1집 <Dog>에는 그의 이름 세 글자만이 오롯이 걸려있다. 달라진 주체는 곧 달라진 음악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는 고착화된 힙합 씬에 개혁을 외치던 <LANGUAGE>의 '분노'나, 혹은 주류를 이탈한 선각자의 섬뜩한 스침을 기록한 <Moonshine>의 '허무'와 같이 단순 소재의 차이로 구분되는 일차원적인 다름이 아니다. 변화 가운데서도 묵묵하게 고수해오던 지독한 탐미주의, 그 아티스트를 지탱하는 신념의 붕괴에서 나오는 근본적 다름이다.

'열심히 싸워 / 난 싸워온 이유를 잊었어(Drive slow)'라는 회고처럼 긴 투쟁에도 바뀌지 않은 현실은 모든 전의를 앗아갔다. <Dog>가 지닌 단상은 홀로 '내려놓기'다. 가사는 목표를 겨냥하더라도 기존보다 훨씬 유한 성격을 보이고, 무엇보다 이러한 태도가 강하게 적용되는 곳은 사운드의 영역이다. 5일간의 송캠프 가운데 완성된 앨범은 무작위의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믹싱만을 거친 습작의 형태를 띤다. 작품을 한데 묶으려는 치밀한 계산이나 연출은 그저 선택일 뿐이다.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형상화한 <Dog>는 예술가의 덕목이라 여겨지던 음악의 태생적 방향성을 과감히 포기한다.

앨범은 변주를 최대한 줄이고 최대한 원초적인 반복을 가하는 방식으로 로-파이(Lo-Fi)적 수면을 부유한다. 26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랩이 뒤로 물러나고 지저분하고 잡음에 초점이 맞춰지는 점은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의 <Some Rap Songs>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느긋한 진행의 'Drive slow'는 준수한 시작이다. 허심탄회한 심정을 토로하며 욕심을 '내려놓는' 가사, 그리고 라드 뮤지엄(Rad Museum)의 몽롱한 발라드 라인으로 넘어가는 전개는 전작의 인트로 'Moonshine'과 같은 불씨를 남긴다. 다만 미니멀한 덥(Dub) 인스트루멘탈이 절반을 넘어가는 '0 Balance'는 브라스 충격과 충돌하며 부조화를 이루고, 음침한 트랩 베이스에 훅이 거듭되는 'Okay, dial it up, call me'와 스킷 격의 랩 트랙 'Does it matter'는 클리셰가 산재한 탓에 소비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회의적인 가사 아래 <Moonshine>의 은은한 네온사인 빛을 빌린 'Butting on the glass', 그리고 카랑카랑한 끊어치기로 존재감을 알리는 와이투케인나인틴투(Y2K92)과의 탄력적인 호흡을 선보인 'Uainrealli'의 기조 변화는 꽤 성공적이다. 그러나 쓸모없는 공백과 고조 구간이 속출하는 전자는 굴곡이 산만해 집중을 깨트리며, 일상의 소리를 포착하고 토속적인 박자감을 내세운 'When the right is wrong'의 경우 전면에 위치한 비트가 심히 가라앉는 탓에 김심야의 랩마저 같이 전복되는 위기에 처한다.

분기점은 씨엘(CL)이 참여한 'Loooose controlla'일 것이다. 놀랍게도 곡은 긴박한 드럼을 그루브하게 넘나드는 조화를 선보이며 국면을 한 번 더 뒤집는다. 샘플링 기법이 두드러진 후반부 트랙은 <Dog>가 상징하는 '내려놓기'에 설득력을 덧붙이고 생동감을 회복하는 구간이다. 드레이크 'Nice for what'의 타법과 보이스 활용을 연상케 하는 'Walking on thin ice', 카니예 웨스트의 가스펠 조각을 끈적하게 조립한 선공개 싱글 'Forgotten'. 특히 마지막 트랙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은 전술한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며 독보적 자태를 자랑한다. 여러 겹의 화음 가운데 여유롭게 단어를 내뱉으며 페이드아웃 되는 모습은 무릇 해탈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김심야는 본작을 두고 대중성을 고려한 작품이라 밝혔다. 실제 초기 작풍에 비하면 난이도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대중적'이기엔 여전히 거리가 멀기에 간혹 비칭이나 고해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김심야 역시 결국 대중의 일부가 아닌가. <Dog>는 항상 증명하고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너의 마음 가는 대로 춤을 추'는 것이 아닌 '나의 마음 가는 대로 춤을 추'는 것도, 그가 이름을 내걸면서까지 얻고자 한 것도 결국 본능에 가장 가까운 소리에서 얻어낸 철저한 해소의 도구다.

이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김심야의 랩이 얽히는 접점이 성긴 탓에 대체로 모호하게 붕 뜬 감상이 앞선다. cjb95, ccr, 250, DJ 소울스케이프 등 다양한 프로듀서가 참여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비트는 개개의 매력과는 별개로 유기적인 배치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결과적으로 가공이 덜 된 인상을 선사한다. 병역 문제로 데드라인을 재촉받은 것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다만 첫 정규작인만큼 작품의 주인인 김심야가 그 중심축을 단단히 지탱했어야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태도 또한 미완의 상태를 방치하기 보다는 작금의 강점을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정돈된 영감으로 승화할 수 있었으리라는 입장이다.

천재성이 잘게 흩뿌려진 <Dog>는 그가 힙합 씬에 가져온 파장을 부정하고 폄하할 만큼 불온한 앨범은 아니다. 하나 김심야라는 아티스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매개체로도 부적합하다. 여러 갈래를 열어둔 이 문제작은 훗날 후속작의 계단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퍼즐 조각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또한 대중에게 혼동을 주기 위한 짓궂은 장난의 일부라면, 소비자 역시 기호에 맞춰 즐기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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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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