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물치고는 흔하지 않게 <원더 우먼 1984>는 배경을 특정한다. 보통 슈퍼히어로물은 시기를 특정하지 않거나 근 미래 배경인 경우가 보통인데 <원더 우먼 1984>는 제목에서부터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오프닝에서의 원제 역시 ‘Wonder Women 1984’ 대신 ‘WW 1984’로 표기하여 원더 우먼의 활약상 이면에 담긴 메시지에 주목하기를 기대한다.
다이애나/원더우먼(갤 가돗)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함께 맞서다 전사한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를 잊지 못한다. 그 후 70년이 지나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1984년이 되었지만, 다이애나의 마음은 이제 더는 만나지 못할 스티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감정 표현이 빈곤한 상태다. 그의 죽음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
소원을 빌면 현실에서 그대로 이뤄지는 고대 유물이 거짓말처럼 스티브를 1984년에 되살린다. 불행이라면 누구나 그런 고대 유물을 원한다는 것. 바바라(크리스틴 위그)는 다이애나를 동경한 나머지 그녀처럼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이 되기를 바라고, 맥스 로드(페드로 파스칼)는 그 자신이 아예 소원을 들어주는 고대 유물의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처럼 모두가 소원하는 바를 이루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원더 우먼 1984>가 묘사하는 세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다. 뜻하는 대로 살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운 것 같아도 인간의 욕망은 한계치가 없어 그럴수록 타인의 행복권을 침해하게 되고 갈등이 폭발하면서 전쟁통과 같은 혼란한 상황으로 발전한다. 나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을 전제하는 것인데 그걸 부러 조장하여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빅 브러더의 횡포를 얼마 전까지 현실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이 영화의 맥스 로드는 영락없는 도널드 트럼프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성공한 사업가로 TV 쇼에 나와 대중이 혹할만한 언변으로 인지도를 얻은 후 대통령의 자리까지 차지하려 든다. <원더 우먼 1984>의 패티 젠킨스 감독은 맥스 로드의 설정에 대해 트럼프에게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재 미국이 처한 혼란한 시대상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이 영화의 메시지와 더불어 원더 우먼의 필요성과 직결한다.
<원더 우먼>(2017)의 배경이었던 세계 1차 대전의 발발 형태가 독재자가 바란 세력 확장, 즉 무기를 앞세운 세계 정복이었다면 <원더 우먼 1984>의 세계 대전, 즉 ‘월드 워 World War’는 백인 남성의 기득권이 혐오와 차별과 증오를 부추겨 다양성을 위협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이에 직면한 원더 우먼은 다양성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기득권의 사리사욕을 막는 한편으로 기존 남성 슈퍼히어로들과 다르게 최대한 교화하는 쪽으로 빌런을 다룬다.
<원더 우먼>에 이어 <원더 우먼 1984>에서도 세상을 구한 원더 우먼의 표정에는 안도감보다 빌런으로 몰린 이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더 크게 감지된다. 남성 폭력을 견디다 못해 치타로 변한 바바라와의 대결에서 원더 우먼은 방어를 우선하면서 흑화된 그녀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지만, 끝내 의도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원더 우먼이 응징을 목적으로 한 세계 경찰이 아니라 연대와 사랑을 우선하는 평화의 수호자로서 슈퍼히어로의 가치를 삼는다는 걸 보여준다.
보수의 시대였던 로널드 레이건의 1984년을 경유하여 미국의 현재를 점검하는 <원더 우먼 1984>는 유효한 메시지에도 몰입을 방해하는 유아적인 설정으로 재미를 반감시킨다. 고대 유물의 설정으로 별 설명 없이 살아 돌아오는 스티브의 존재 하며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별안간 전향하는 결말부의 맥스 로드하며, 메시지를 강조하려 무리하게 끌어들인 설정이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재미가 없으면 메시지도 소용없다, 세상을 구한 원더 우먼도 이는 어쩌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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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