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겨울밤에> 한겨울밤에 청평사에서 생긴 일

한겨울 밤의 꿈으로 가는 여행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계기를 엿보며 터질듯한 사랑의 감정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그때 그 시절은 그래서 순수했다. (2020.12.18)

영화 <겨울밤에>의 한 장면

흥주(양흥주)와 은주(서영화)는 부부다. 오랜만에 춘천의 청평사를 찾았다가 서울로 돌아가려는 참이다. 택시 ‘뒷좌석’의 은주가 별안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며 ‘운전 보조석’의 흥주를 당황하게 한다. 택시기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생각에 난색을 보이면서도 결국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서 유턴합니다.”

청평사는 30여 년 전 흥주가 부근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은주와 연애하면서 찾았던 장소다. 한창 좋았을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각자 앉았던 택시 좌석의 위치만큼이나 마음의 거리감이 생겼다. 핸드폰은 통신 목적 외에 주고받은 문자,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등 개인의 과거가 담긴 일종의 기억 재생 장치이기도 하다. 그들이 진짜 찾으려는 건 핸드폰일까, 연애 당시의 기억과 기분일까. 

‘거슬러 올라간’ 청평사에서 흥주와 은주가 맞닥뜨리는 건 군복을 입은 남자(우지현)와 그를 면회하러 온 여자(이상희)다. 흥주와 은주의 연애하던 시절과 상황이 똑같다. 아니나 달라, 남자와 여자의 대화가 심상하지 않다. “근데 여기 낯이 익어”, “여기 기억 안 나?” 흥주와 은주는 자신들의 과거를, 남자와 여자는 미래를 서로에게서 거울로 비춰보는 듯하다.

청평사는 출발점이 서로 다른 커플의 시간이 등을 지고 원을 돌아 한 점에서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와 미래를 경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이들 관계의 역사가 일종의 윤회(輪廻)로 담겨 있다. 남자와 여자는 호감이 있으면서도 아직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아 서로의 마음을 빙빙 돌며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중이다. 계기를 엿보며 터질듯한 사랑의 감정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그때 그 시절은 그래서 순수했다. 

잃어버린 핸드폰에 집착하는 은주의 의도가 순수 찾기에 있다면 흥주는 뚜렷한 목적 없이 은주의 뒤를 따라다닐 뿐이다. 눈 위의 뚜렷한 발걸음은 은주를 향하면서도 등 너머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은주와는 다른 기억에 가 있는 듯하다. 은주가 잠든 사이 청평사 주변을 홀로 걷는 흥주의 눈에 들어온 건 대학 동창 해란(김선영)이다. 술에 잔뜩 취해 해란에게 뽀뽀해달라는 등의 언사를 하는 걸 보니 흥주는 은주에게 충실했던 것 같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를 통해 흥주와 은주의 관계를 밟아 나가다 보니 현재의 거리감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물론 흥주·은주 부부와 남자·여자 커플은 전혀 별개의 관계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현실을 초현실로 착시하게 의도한 건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사이로 지나가는 인물의 장면 구성하며, 과거의 어느 지점을 몰래 살피듯 여자를 창밖에서 바라보는 흥주의 설정하며 환상적인 요소가 두 커플의 사연을 하나의 시간으로 중첩하여 입체감을 더한다. 


영화 <겨울밤에> 공식 포스터

영화는 사연 중간중간 단락 구분처럼 네 차례 선화(禪畵)를 노출한다. 동자가 소를 잃어버린 후 이를 찾는 과정에서 해탈에 이르는 내용이 10장의 그림에 담겨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불리는 심우도(尋牛圖)다. <겨울밤에>를 연출한 장우진 감독은 심우도가 중요한 레퍼런스였다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는 여행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그렇다면 은주와 흥주가 이번 여행을 통해 이른 해탈의 내용의 무엇일까. 

흥주는 응어리진 마음을 토하듯 무언가를 눈 위에 뱉는다. 흥주가 떠나고 그 자리를 찾은 은주는 흥주가 뱉은 그 위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해란과의 관계를 뱉어내려 한 흥주의 과거를 묻겠다는 건가? 헛구역질에 그쳐 과거를 떨치지 못한 흥주를 무시하겠다는 건가? “외로워,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아.” 결국, 은주는 핸드폰을 찾지 못한다. 이들은 영화 첫 장면에서처럼 같은 택시의 같은 좌석에 앉아 내려온다. 은주와 흥주가 경험한 건 한겨울 밤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이었을까. 


영화 <겨울밤에> 예매하러 가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기사와 관련된 영화

  • 새창보기
    겨울밤에 (GV)
    • 감독: 장우진
    • 장르: 드라마
    • 등급: 12세이상관람가
    • 개봉일: 20201210
    리뷰 50자평 영화정보
  • 새창보기
    겨울밤에 (영문자막)
    • 감독: 장우진
    • 장르: 드라마
    • 등급: 12세이상관람가
    • 개봉일: 20201210
    리뷰 50자평 영화정보
  • 새창보기
    겨울밤에
    • 감독: 장우진
    • 장르: 드라마
    • 등급: 12세이상관람가
    • 개봉일: 20201210
    리뷰 50자평 영화정보

오늘의 책

웃고 있는데 왜 슬프지, 공감백배 장류진 첫 장편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이 첫 장편을 선보인다. 그가 선택한 것은 이른바 ‘직장인 3인방의 코인열차 탑승기'. 이 평범한 듯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순식간에 몰입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겪는 희비극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자, 종착역이 궁금한 당신, 어서 탑승하시라!

2021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1986년 1월 미국 챌린저호의 도전과 불운을 배경으로 10대인 세 남매들이 겪는 현실적 고민,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커다란 주제인 우주와 세 남매의 실생활을 교차하며, 각자의 궤도를 돌던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유대감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탁월하게 그렸다.

5가지 중 하나가 바뀌면, 인생이 다 바뀐다!

『하루 한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등 폭넓은 연령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인문학 작가 김종원의 신작. ‘사는 환경, 만나는 사람, 시간을 쓰는 방식, 언어를 대하는 태도, 생각하는 방법’ 5가지 요소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법을 알려준다.

자꾸만 쓰고 싶어지는 글쓰기 수업

어렵고 부담스러운 글쓰기.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재미있고, 쉽고, 하고 싶어지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초등 아이가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자유글쓰기 주제와 초등 논술 제시문을 통해 떠오르는 생각을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나는 글쓰기 수업.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