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소설/시 MD 박형욱 추천] 어른들의 성장 이야기
성장의 주체가 작품 속 인물이든 작품 밖의 독자든, 이야기는 반드시 누군가를 자라게 합니다. 여기, 어른들이 성장하는 순간을 엿볼 수 있는 소설 세 편을 소개합니다.
글ㆍ사진 박형욱(도서 PD)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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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 다양한 형태로요. 온갖 종류의 삶과 사랑을 그 안에 담습니다. 수십 년을 이어가는 한 사람의 일생이,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복기하게 되는 유년의 어떤 기억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대를 향한 감정이 거기 있습니다. 그것은 또 추리, 로맨스, SF 등 저마다의 갈래로 나뉘어 불리겠습니다만, 어떤 소설이든 결국에는 성장소설이 되는 것 아닐까요. 성장의 주체가 작품 속 인물이든 작품 밖의 독자든, 이야기는 반드시 누군가를 자라게 하니까요. 여기, 어른들이 성장하는 순간을 엿볼 수 있는 소설 세 편을 소개합니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저/이세진 역 | 창비)

수천수만의 삶이 이토록 빽빽하게 들어찬 세상이라니요. 시간은 무심하게 가뿐하게 훌훌 흐르는 듯하지만, 그 시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매일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턱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책은 26년간 아파트 관리인으로 근무하다 우연한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중간중간 좋은 문장들이 눈길을 잡는, 마지막까지 잘 읽히는 소설인데요, 책을 덮고 나면 그리고 곱씹어보면, 그들 하나하나의 삶이 다시 커다란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삶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별것 아닌 생은 없다는 것을 거듭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역시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그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도요.

그의 소박하고 북방적인 태도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삶일 뿐이고, 모든 것에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으며, 시선을 돌리고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우리 모두가 매일 아침 반짝이는 불협화음으로 생존을 즉흥 연주하는 거대한 교향악의 일부임을 깨닫게 했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109쪽




『복자에게』  (김금희 저 | 문학동네)

인간은 죽을 때까지도 완전히 성숙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맞다 해도 비극은 아닐 거예요. 우리의 성장은 언제나 진행 중인 거니까요. 『복자에게』는 김금희 작가의 새 장편 소설입니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제주의 한 부속 섬으로 이주해야 했던 소녀 ‘이영초롱’이 훗날 판사가 되어 또 한 번 제주로 좌천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전하지 못해 후회와 미련으로 남은 말들과, 끝내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단단해지는 또 다른 마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자라는, 서툴지만 다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실패도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는 작가의 말이 모두의 다음 걸음을 든든하게 지지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어른이란 사실 자기 무게도 견디기가 어려워 곧잘 무너져내리고 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1999년 내가 복자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복자는 그걸 잘 알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래서 씩씩하고 많이 웃고 더 진취적인 아이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속일 수 있기를 바라는 힘으로 어른이 되는 아이들이.

『복자에게』, 143쪽




『프리즘』  (손원평 저 | 은행나무)

사랑은 자꾸 뒷전이 됩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고민거리 걱정거리가 너무 많으니까요. 무엇보다 건강할 것을, 나 자신을 지킬 것을, 시야를 넓혀 더 큰 가치를 좇을 것을 스스로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바라게 됩니다. 물론 모든 것은 크게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보편의 가치 안에 묶일 테지만, 최근에 『프리즘』을 비롯한 몇 권의 소설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사랑에 대해 곰곰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마감이 한참 남아 미뤄두었던 일을 다시 꺼낸 것도 같고, 옷 주머니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었던 돈을 찾은 것도 같았지요. 이상한 말이지만, ‘반가운 숙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프리즘』 속 네 남녀의 만남과 사랑, 이별과 성장을 함께 겪으며 새로운 바람을 갖게 됩니다. 이 불안과 경계의 시절에도 사랑만은 힘을 잃지 않기를요.

나는 누구와 연결돼 있을까.

내내 그 질문을 안은 채 호계의 연필과 붓은 점점 세심하게 낯선 사람들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전에는 연애나 사랑이 의미 없이 흔해 빠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이제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라는 건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단 하나,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프리즘』,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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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