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화분까지 과습으로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 집이 삭막한 것 같아 화분 두어 개를 집에 들여놓았는데, 나는 매번 싱싱하게 우리집에 온 그들을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식이건 내 손에 들어와 죽어간다는 건 나의 잘못 때문이다. 역시나 나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인 걸까. 버거울 때에는 메신저를 닫아 놓고 답장을 하지 않는 요즘의 나처럼, 원하는 때에만 관심을 주었던 걸까. 혼자가 자꾸만 더 편해지는 것이, 식물조차 제대로 못 기르는 일방향의 사람으로 더 변해가는 내가 된 건지 슬슬 걱정이 된다.
나의 식물 살해 주요 요인은 바로 과습이다. 건너편의 건물들에게서 보이는 게 싫어서 되도록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사는 우리집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무실로 사용해야 할 곳을 집으로 개조하다 보니, 창문의 모양도 특이해서 통풍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식물이 잘 클 리는 만무한 걸 알아서 내가 선택한 식물들은 대개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들이었다. 선물 받은 친구들도 몇 있었지만, 그들 역시 ‘똥손‘도 잘 키우기로 유명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나에게로 온 것만으로 싱그러워지는 것 같아서 행복했다. 살아있는 게 집에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잘 자라라고 기특할 때마다 물을 주었다. 심지어 스투키나 다육이에게도. 나는 그들이 한두 달에 물을 한 번씩 주어야 하는 식물들인지도 제대로 몰랐다. 알아보지도 않은 채로 그들을 기르려고 했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통통했던 이파리가 쭈글해지더니 노랗게 변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됨을 알게 되었고, 그들에겐 물이 그리 자주 필요한 게 아님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무지한 주인을 잘못 만나 죽어간 그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어요, 식물을 키우는 일은 곧 ‘관심’의 문제라는 걸요. 내 집의 어떤 창에서 가장 빛이 잘 들어오는지, 내가 키우는 식물이 건조한 걸 좋아하는지 습한 걸 좋아하는지, 일년생인지 다년생인지 관심을 갖고 길게 바라봐주면 즐겁게 크는 게 바로 식물이라는 걸요.
(중략) 사람과 사람 사이에 궁합이 있듯 사람과 식물 사이에도 궁합이 존재해요. 각자 자기한테 맞는 식물이 자그마한 화분에서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가며 영차영차 새순을 내고 산소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며 살게 된다면, ‘나도 언젠가 괜찮아지지 않을까? 천천히 조금씩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위안을 얻을지도 몰라요.
임이랑,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중
시간이 나면 꼭 초록이 물결치는 곳을 찾아 산책을 하는 편이다. 한강 근처에 살면서부터는 초록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해가 좋은 날엔 나무들이 빛을 머금고 더 반짝여서 좋았고, 해가 져도 저마다의 공기를 뿜고 있는 것 같아 길을 지나는 동안 고마웠다. 시간이 나는 점심마다 찾았던 ‘나의 정원‘이 좋은 이유도 식물이 많은 곳이어서였다. 초록을 좋아하는 동안 그 빛을 집에도 담고 싶다는 욕망만 커져갔나보다. 그래서 들이게 된 친구들이건만, 욕심만 앞선 주인에게는 사랑을 주고 싶을 때마다 물을 주곤 흙의 상태도 짚어보지 않는 ‘줬으니 자라렴’이라는 요구만 있었다.
뒤늦게 그들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흙을 말리고 뿌리를 말려봤지만 소용 없었다. 간혹 이런 식물들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던데, 나에게는 해당 될 리 없다. 사실 물을 주는 것까지가 나의 최대 관심이었던 것이다. 분갈이를 한다거나, 때 맞춰 공기와 햇볕을 쐬게 하는 건 추가적인 노동이 들어가는 것이니 더 행동을 취하기는 귀찮았던 것이지. 그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맞추어 줄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시간 여유가 있고 마음이 허락할 때만 봐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참으로 이기적인 이 마음으로 감히 이 친구들을 기르려 했다니 어리석었다. 초록이 내뿜는 기운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 기운을 어떻게 살려줄 지는 생각지 않고 소유만 하려 했다
걱정하는 마음이 차올라 저질렀던 그 모든 일은, 실수였습니다. 잠시 생장을 멈췄던 식물은 갑자기 과해진 물과 해를 견디지 못해 픽픽 쓰러졌어요. 식물의 멈춤에는 이유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만, 그들에게는 무조건적으로 넘치게 주는 것이 제일 위험해요. 이제는 식물이 조용히 멈추거나 시들해 졌을 때 그 속도에 맞춰 물과 햇빛도 줄여줍니다. 그들도 잠시 정적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잠깐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식물을 위한 길입니다. 휴식기를 맛있게 잘 보낸 식물은 반드시 다시 깨어나 이파리에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예쁘게 자라줄 테니까요.
임이랑,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중
문득 살짝 겁이 났다. 깨달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요즘 나는 사람 관계에서도 이런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내 기분을 추스르기도 버거운 때가 잦은 날들이라 조금은 이기적이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내가 불편한 관계는 피하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말은 하지 않고, 되도록 내게 익은 사람들만 만나왔다. 그러다 보니 혼자가 편해졌고, 밥조차 혼자 먹는 게 어떤 때는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추석을 맞아 가족들을 만났지만 3일쯤 지나니 가족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혼자 여유롭게 보내는 일상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가끔 애인도 내게 “내 말은 잘 기억 못 하잖아”하고 흘리듯이 핀잔을 줄 때가 있다. 미안해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나에게 그는 “그것도 너니까 이해하겠다”고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모습이 나오리라곤 생각 못 했다. 수신은 버겁고, 원하는 때에 발신만 하길 원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 이대로 괜찮을까.
점점 사회성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해 왔지만, 이토록 다른 것에 신경을 안 쏟고 살았다고는 미처 느끼지 못했다. 식물을 몇 번이나 죽이고 나서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다니 우스웠다. 꼭 잃는 게 있어야 알게 되는 법이구나 하고. 운동을 하기 위해 돈을 번다고 말할 만큼 운동에 빠져 있는 요즘인데, 실은 그 이유도 내 몸 하나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내 몸의 변화에만 신경 쓰다 보면 나를 잘 챙길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으나, 과해져서 다른 이들은 돌아보지 못했다. 한 번 놓은 관계를 다시 잡기에는 이젠 기력이 예전만큼 나지 않는다. 마음은 불편하지만 금방 잊어버리려 한다. 점점 더 나 편한 쪽으로 몸이 기운다.
어떻게 나의 균형을 맞추어야 식물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반려동물이나 식물과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아끼고 보살핀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점점 더 알게 되니까. 아무래도 아직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엔 배우고 익혀야 할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이번 화분 이후에는 식물을 들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한번 더 부딪혀 봐야겠다. 언젠가는 잘 길러서 내 곁에 두고 초록을 한껏 내뿜도록 해 줄 주인이 될 때까지. 문제가 생긴 뒤에 고치려는 주인이 아니라 매일 인사를 나누는 주인이 되고 싶다. 이름을 불러주고, 목이 마른지 볕이 필요한지 너에게 맞추어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아닌 것들과도 균형을 찾고 싶다. 너의 초록을 망쳐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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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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