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별일 없는 게 별일인, 경력 재설정기를 지나는 중인, 전직 기자 김수정 저자의 유쾌명랑한 오늘 에세이.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생일의 덤덤함, 권고사직 당하던 날의 씁쓸함, 다이어트 댄스를 하다 오히려 2kg 늘어난 체중, 육아의 3할은 커피가 도와주었고, 서른여섯이 되도록 진로 걱정을 하고 있으며 외향적이지만 혼자도 좋은 어느 전직 기자의 안녕한 오늘 이야기 42편을 담았다.
『나는 나와 사이가 좋다』,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책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하고 물었을 때 “있잖아, 우리 둘째 어린이집 보내고 내가 운동을 시작했거든”하면서 편하게 꺼내 놓은 듯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보통의 삶을 사는 여자, 사람, 엄마의 에세이입니다(제가 그 보통의 여자 사람 엄마죠(웃음)). 평범한 수많은 ‘나’의 이야기가 담긴 더블엔의 ‘나의오늘’ 시리즈 첫 번째 책이기도 하고요.
코로나로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느끼는 고충, 엄마들이 매일 하는 숙제 ‘오늘 저녁에 뭐 먹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감정, 서른여섯이 되도록 진로를 걱정하는 여자의 고민 등을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친한 친구와 편하게 얘기하는 기분으로 읽어주세요.
사실 『나는 나와 사이가 좋다』라는 제목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처음부터 책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다 보니, 막상 글을 모은 뒤 제목 정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제목 진짜 여러 번 바뀌었어요. 출판사와 계약을 할 당시 제목은 ‘서른여섯 안녕한가요?’였습니다.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글의 제목과 같았죠. 그런데 출간될 책의 제목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다음에 나온 제목은 ‘나의 꿈은 비키니 입는 할머니’였습니다. 이 제목으로 표지 일러스트까지 진행이 됐어요. 나쁘지 않았지만, 그즈음 한창 인기 있던(지금도 인기 있는)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가 영 마음에 걸렸어요. 이 제목이 글 전체를 아우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제목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나는 나와 사이가 좋다』가 떠올랐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모두 긍정적이었죠. 편집장님께서도 제목을 들으시곤, 진행 중이던 표지 추가 일러스트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시안 작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책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큼 자신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하거든요. 물론 자신과 사이좋은 일은 쉬운 일이 아니죠. 작가님께서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이 있나요?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계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아닐까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여긴대요. 나와 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진짜 내 마음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게 자신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지 못한 날이 많았어요. 제 자신과 싸우기도 하고, 왜 이것밖에 못하냐며 스스로를 채근하기도 했죠. 내 마음조차 돌볼 겨를이 없었어요. 내 마음이 뭔지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나니 스스로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된 기분이 들었어요.
이를테면, ‘아 밥하기 싫다.’ -> ‘뭐, 엄마가 밥하기 싫은 날도 있는 거지.’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편식이 심할까’ -> ‘아이마다 다른 게 있는 거지’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듣다 보니, 마음의 마음을 알게 됐달까요?
아이 둘 키우는 엄마시잖아요. 다들 아이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육아만도 힘든데,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첫째 때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요. 낮엔 아이를 돌보고 밤엔 일을 했죠. 그래도 일을 놓지 않고 있음이 주는 만족감이 컸어요. 그러다 둘째를 낳고 그나마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렇게 아이만 보며 2년을 지내니 몸은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어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성장만으로 내 삶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글쓰기 멤버를 모집한다는 맘 카페 글을 보게 된 거예요. 뭔가에 홀린 듯 댓글을 달았고 모임에 합류해 매주 한 편의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처음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는데,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막막하더라고요. 누구 엄마로만 살고 있으니 제 자신을 소개할 게 없는 거죠. 가장 힘들게 쓴 글이 그 자기소개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쓰고 싶은 글이 계속 생각났어요. 마음 안에 있는 서랍 속에 쓸 글이 쌓여 있었어요. 1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쓰며 브런치에도 올렸어요. 그 글이 모여 이렇게 책이 됐습니다.
처음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는 이 책의 원고가 아니라고 들었어요. 어떤 원고였나요? 그 원고 대신 이 책이 나온 이유는 뭔가요?
작년 여행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지난해 9월 한 달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어요. 가족이 온전히 외국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죠. 여행을 사진으로만 남기기엔 아쉬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20여 개의 꼭지가 나왔죠. 글이 어느 정도 모이자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판사 투고를 시작했어요. 몇몇 출판사의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 메일을 받고 진짜 책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들떴었는데, 그게 정중한 거절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렇게 거절의 메일이 쌓여갈 때 더블엔을 만났어요. 더블엔이 만든 여행 에세이가 좋아 내 글이 책이 된다면 더블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투고 메일을 보냈는데, 마침 편집장님께서 그 글을 읽으시고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하셨어요. 여행기보다는 브런치에 올린 에세이가 재밌으니 그것으로 책을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요. 여행기를 쓰기 전 브런치에 올려둔 글을 읽어보시고 연락을 하신 거예요. 그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1년 중 가장 심장이 크게 뛴 날일 거예요.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소 브런치에 써둔 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아마 지금도 여행기 투고 메일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공감 간다’는 리뷰가 많더라고요. 책의 어떤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책을 내는 작가들은 보통의 엄마들과는 달라요. 엄마가 읽어준 영어책으로 아이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거나,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거나, 이유식이나 반찬을 기똥차게 잘 만드는 대단한 분들이죠. 그런데 저는 그런 작가들과 비교해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없어요. 엄마표 영어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쉽지 않고, 아이 데리고 하는 여행은 고난의 연속이며, 아이 반찬을 매번 그렇게 잘해 먹일 솜씨도 시간도 없거든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대신 저는 보통의 엄마들이 느끼는 일상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어봤어요. 제 이야기지만, 옆집 언니의 하루이기도 하고, 내 친구의 어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코로나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우울감이 크다고 해요. 그런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 주변에서도 불안해하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느니 힘들더라도 데리고 있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아무리 예쁜 내 자식이라 해도 하루 종일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생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힘든 건,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거죠. 오늘은 어제와 같고, 오늘과 같을 내일에 대한 기대감도 없으니까요. 요즘엔 ‘코로나 블루’를 넘어 ‘코로나 앵그리’라는 말까지 생겼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화 한 번 안 낸 엄마는 성인군자라는 말도 합니다. 저 역시 옴짝달싹 못 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내내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아내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세요. 그 시간이 다가오는 일주일을 살게 할 겁니다. 건강하게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으면 우리의 일상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으니, 엄마의 시간을 지나는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 책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소중한 사람의 일상에 고마움을 전하는 그런 책이요. 남편이 아내에게,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딸에게, 이제 막 육아 집중기에 들어선 친구에게 선물하는 그런 책. 그들이 힘들다고 말하기 전,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누군가의 대단한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저 깊은 곳 한구석에 두고 지나친 내 마음을 이해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참! 이 책은 더블엔의 ‘나의오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에요. 두 번째 책도 『아이 앞에서는 핸드폰 안 하겠습니다』도 아주 재밌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며 손에서 놓지 않았던 휴대폰을 아이 앞에서만큼은 내려놓는 결심과 도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이 앞에서 휴대폰 내려놓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아주 어려운 도전을 한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김수정 언론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기삿거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사람 만나는 게 좋았고, 내 기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천천히 식어가는 가슴을 보며 덜 날카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콘텐츠 제작사에서 기획서를 만들었고, IT 보안 회사에서 글을 썼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 어려운 게 아이를 키우는 일임을 깨달았다. 평범한 일상도 쓰고 보면 달라진다는 걸 실감하고 다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평생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요즘엔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좋다. 경력 단절기가 아니라 경력 재설정기를 갖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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