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란 무엇인가』는 오롯이 기업과 기업인을 위한 기업론 교과서다. 기업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기업 자신이어야 한다.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 기업이 기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의 모든 기업은 영속하고 번영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를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가? 이 책은 기업을 둘러싼 외부의 온갖 이데올로기에 맞서 기업의 본질을 도출하고 방어하고 추동해낸다. 이 책은 기업을 자본주의?경제활동?사회복지의 중추이자 주체로 복원해내고, 기업 밖의 논점과 이슈가 아니라, 기업의 본질을 총체적이고 구체적으로 규명해내려는 시도다. 이 책은 지금껏 없었던, 비로소 우리 손에 주어진,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단 하나의 기업론 교과서다.
선생님께서는 기업론 분야에서 가장 신뢰받는 경제학자로, 현재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계신데요.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부터 기업과 경제가 결합된 경제학을 추구했습니다. 박사논문이 일본과 한국이 반도체산업과 철강산업에서 어떻게 캐치업(catch-up)했는가를 분석한 것이었고, 그것이 첫 번째 영문 책
기업과 경제 간의 관계에 대해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이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정책 당국자들도 잘 모르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고쳤으면 하는 생각에서 매일경제신문에 2018년부터 <기업과 경제>라는 정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도 기업과 경제를 결합한 강의를 합니다.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셨는데, 특히 이번에 출간하신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역작’으로 소개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동안 낸 책들은 상당 부분 ‘기업 비판에 대한 반(反)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정말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제대로 된 공통 인식이 마련되어야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서양 학계와 법조계에서 최소한 100년 넘는 논쟁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서양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을 다 함께 보면서 논쟁을 총정리하고 해답을 상식선에서 내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두 가지 현실, 즉 법인의 존재와 시장경쟁을 공리(公理, axiom)로 삼아 상식선에서 따라가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8대 기업명제(命題, theorem)를 도출했습니다. 이 기업명제들을 중심으로 기업 관련 정책에 관한 논쟁을 엮어냈고, 독자들이 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사랑이 그룹’이라는 인공지능(AI) 가상 회사의 기업성장 스토리와 결합시켰습니다.
윤세리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명예대표)께서 추천사에서 “국내 최초로 기업을 역사적, 법적, 경영학적, 경제학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했다고 평해주셨는데, 제가 보기에 이런 책은 ‘세계 최초’인 것 같습니다. 지금 영문 책을 내기 위해 한참 작업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장기번영공동체’를 기업의 목표로 제시한 점도, 한국의 기업 현실에 비추어보면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장기번영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장기번영공동체’라는 말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기업 현실에서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주주가치론’이 득세하면서 주주들의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업을 맘대로 쪼개 팔거나, 회사 문 닫고 자산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퍼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법인으로 운영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 기업은 법인 설립의 취지에 맞게 영속 혹은 장기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기업이라는 조직은 공동체입니다. 구성원들이 잘 되어야지요. 공영해야 합니다. 회사가 번 돈 주주에게 다 내주고, 회사 구성원들은 최소 생활을 하든지 쫓겨나든지 해서는 안 됩니다. 또 ‘공익’이라는 것이 앞서 조직원들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영리법인인데 구성원에게 영리적 보상이 제대로 따라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장기성장에 기여하면 그에 따라 과실을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지만 신이 나서 일하게 되고 결과도 좋습니다. 책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장기투자보상위원회’와 ‘장기투자보상신문고’를 제안했다.
책의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다소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하고 책을 열었는데, AI 강아지를 개발한 ‘내사랑이’라는 주식회사 이야기가 펼쳐져 몰입해서 읽게 됩니다. 이런 서술 방식을 차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흥미롭게 읽었다니 반갑습니다.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집어넣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실제 현실, 즉 창업해서 성장하고, 기업공개하고, 다양한 도전을 겪으며 대응하는 과정이 책 안에 들어와 있어야 8대 기업명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이론과 역사가 합쳐진 책을 내려고 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제가 그동안 내놓았던 여러 저작들이 이론과 역사의 종합을 지향했습니다. 이렇게 실제 상황이 책 속에서 그려지면 기업에 일하면서 “내가 왜 여기서 일하나”, “내가 어떤 원칙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하나” 등의 질문을 해왔던 사람들이 그동안 부분적으로 해왔던 생각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사랑이 그룹 이야기를 통해 기업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기업명제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테고요.
이 책은 어떤 독자들이 읽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첫 번째 독자층은 기업인들입니다. 경제성장은 새로운 기업이 만들어지거나 기존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루어집니다. 야심적인 기업인들이 좌충우돌 뛰어다녀야 경제에 활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강한 반(反)기업 정서에 싸여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마치 한국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인 듯이 치부되는 상황까지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왜 내가 기업에서 일하나,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가, 내가 하는 일들을 통해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가 등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만 자신의 일을 더 잘해나갈 수 있고, 외부에서 닥쳐오는 도전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독자층은 법조인들입니다. 기업 문제와 관련해서 법률가를 만나거나 판결문, 검사 논고 등을 접하면서 느꼈던 것은 법조계에 반(反)기업 정서가 상당히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많은 법조인들에게 법률을 배우는 과정과 기업을 배우는 과정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법에서 법인 설립의 원칙 및 운용 방식에 대해 배우지만, 기업에 대해서는 대부분 주주가치론이나 이해관계자론으로 배웁니다. 앨런 대법관이 미국 법조계가 ‘기업에 대한 정신분열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법조인들이 법원리에 맞게 기업을 대하는 풍토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독자층은 연기금, 투신사, 증권사, 은행 등에서 일하는 금융인입니다. 펀드자본주의 추세에 따라 금융 투자자의 힘이 갈수록 강화되고 이들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이래저래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 기업의 경영 논리와 금융 투자자의 투자 논리 간에는 충돌할 여지가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경영인은 기업 존재론 실현의 과업을 부여받은 ‘경영수탁자’이고 금융투자자는 고객이 맡긴 돈을 잘 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자금수탁자’입니다. 고객이 다르기 때문에 또 고객이 원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경영수탁자와 자금수탁자가 수행하는 내용이 같을 수가 없고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자금수탁자는 기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때 경영수탁자가 자신과 많이 다른 수탁자 의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금융인의 기업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져서 금융 투자자와 기업 간에 충돌할 여지가 줄어들고 건설적 소통이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면 반갑겠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내사랑이그룹’은 ‘장기번영공동체’로 존속하기 위해 그룹의 본거지를 한국에 둘지, 아니면 한국을 떠날지 고민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왜 한국에는 ‘내사랑이’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남아 있기 어려운 것일까요? 한국 기업들이 어떤 지점에서 분발해야 할지요? 한국 정부나 정치권이 어떤 지점에서 기업들을 지원해야 할지요?
많은 사람들이 ‘전문경영체제’가 되면 한국 대기업의 안고 있는 지배구조문제라는 것이 해결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전문경영체제가 잘 된 것은 20세기 중반 50년 정도 밖에 안 됩니다. 20세기 초반 대주주 경영인들이 보유주식을 팔고 경영에서 손을 떼던 때는 미국에 기관투자자나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이 거의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대주주가 시장에 파는 주식을 매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이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은 기업통제에 관심이 없었고 주가차익이나 배당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문경영인들은 창업정신을 이어받아 중장기투자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금융상황에서 대주주가 주식을 팔면 사게 될 주체는 해외 경쟁사들이거나 기관투자자나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이 금융기관입니다. 회사를 매입한 다음에 통제력을 바탕으로 자산을 쪼개 팔든지 회사를 통째로 다른 곳에 넘기게 됩니다. 매입하는 회사들은 해외 경쟁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대주주에 대한 상속세율이 65%인데 이 세금 그대로 다 내면 2세대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3세대로 가는 것은 엄두내지도 못하고요. 그러면 회사는 분해됩니다. 회사의 장기번영을 생각하는 대주주나 경영자라면 본사를 해외에 옮겨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안입니다. 그것이 경영수탁자 의무를 수행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배임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세계는 지금 글로벌화되어 있습니다. 다국적기업들이 세계경제의 주력이고요. 그 기업들이 국내에 머무르고 국내에서 확장하도록 하는 책임은 각국 정부에 있습니다. 기업 경영자들은 전세계의 여건을 살펴서 가장 사업확장하기 편한 지역을 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정부가 세계적 현실, 국제금융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업이 한국 내에 머물고 한국을 중심으로 번성할 수 있는 다방면의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반기업정책이 강화되면 한국이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마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장섭 기업과 금융, 경제가 결합된 경제학에 천착하며 독보적 영역을 개척해왔으며, 기업론 분야에서 가장 신뢰받는 경제학자다. 그로 인해 재계는 물론, 정관계 및 언론계에서 가장 많이 호출받고 등장하는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캐치업(catch-up)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와 반도체산업과 철강산업에 관한 사례 연구를 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글을 쓰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에는 국제금융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5대 금융명제’를 내놓고 정책 제안들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기업지배구조와 헤지펀드 행동주의에 대한 국제 연구를 진행해왔고 『매일경제신문』에 ‘기업과 경제’라는 정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현대경제사에 관한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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