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만지다』는 평생을 물리학자로 살아왔고,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을 지낸 저자가 정년퇴임 후 처음으로 집필한 물리학 에세이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세밀하고 작은 원자로 이루어진 미시세계부터 감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 너머의 거시세계까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을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무한한 우주 세계에 관한 탐구로 호기심을, 또 머나먼 우주를 우리의 삶과 연결 짓는 시로 문학성을 동시에 잡은 『우주를 만지다』는 tvN 「알쓸신잡」의 과학박사 김상욱 교수,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소설가,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렌지 기하학』 함기석 시인 등 여러 분야의 인사들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과학으로부터 전해지는 문학적 감동이라니! 불가능할 것만 같은 두 분야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빚어낸 권재술 교수와 함께 나눈 우주와 물리학, 삶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책의 제목이 참 독특하고 인상적입니다. ‘우주를 만지다’라고 하니 우주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행위보다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우주를 만지다』라는 제목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나요?
사람들은 ‘우주는 너무 커서 다룰 수도 없고, 너무 멀어서 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우주에 대한 관심은 많으면서도 직접 다가서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우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주를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끌어와서 친근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과학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는 이 책에서 과학적인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서 우주를 좀 더 친근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과학과 우주가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렵게만 보이는 물리학 이야기를 삶과 연관 지으며 과학과 문학을 접목한 것이 참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특히 물리학자가 시를 썼다고 하니 호기심을 갖는 반응도 있었고요. 이처럼 전문 과학서가 아닌 ‘시가 읽는 물리학 에세이’를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과학이 어렵다고 생각하지요. 물리학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사실 과학이 마냥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물론 과학이나 물리학의 학문적 내용을 쉽다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과학이나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개념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또,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서 알게 된 자연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저는 우주와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하고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우주와 자연에 접근할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 방법으로 에세이 형식을 택했고, 또 좀 더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시를 가미했습니다.
사실, 제가 정년퇴직을 하고 시를 배워 보니까, 시를 포함한 문학도 자연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인들이 자연을 보는 방식과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에세이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글을 집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또, 시를 쓰실 때 물리학의 어떤 매력을 담아내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그렇게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우 즐거웠습니다. 과학을 문학적인 장르에서 다룬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으니까요. 이 책에 실린 시가 전업 시인들의 시에 비해 그렇게 수준 높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딱딱한 과학을 시로 표현함으로써 과학의 색다른 맛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과는 달리 시는 사실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좀 더 표현의 자유가 있지요. 이 자유가, 과학에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시도를 한 유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자부심도 없지 않았습니다.
집필하면서 시와 물리학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우주의 모습은 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세상과는 매우 다릅니다. 시인들도 세상을 볼 때, 일반인이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봅니다. 그들이 본 독특한 세상의 모습을 글로 쓴 것이 시입니다. 그런데 물리학의 양자론이나 상대론은 시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 하나가 지구를 돌돌 굴리고 있다’라거나, ‘아이가 지구를 발에 올려놓고 돌린다’라는 표현이 시적입니까, 물리학적입니까? 이 문장은 시적이지만 물리학적으로도 정확한 문장입니다. 좌표계 선택의 문제니까요. 다른 말로 하면 관점의 차이라는 거지요.
사실, 과학자가 발견한 세상은 어떤 면에서 시인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기도 합니다. 최근 우주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평행우주나 다중우주로 들어가면 어떤 공상 과학 소설가도 상상하기 힘든 세상이 펼쳐집니다. 시인이 보는 세상도 놀랍고 과학자들이 보는 세상도 놀랍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는 과학을 표현하는 좋은 장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내에서 분자들의 여관방은 인간들의 여관방과 달리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연은 인간보다 더 공평하다.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게 참 인상 깊었어요. 그 외에도 또 자연을 보면서 삶의 깨달음을 얻으신 게 있나요?
다른 학문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과학을 깊이 알면 알수록 인생의 의미를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모든 성현의 말씀이 모두 자연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식물이 싹을 내고 자라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나 삶의 방식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까?
「분자들의 여관방」이라는 글에서 평등의 의미를 살펴보았지만,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보가드로수의 비밀」이라는 글에서 원자들의 수가 그렇게 많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나아가 우주 만물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양자역학에 들어가면 관찰자와 관찰 대상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를 생각한다면 지구는 하나의 티끌에 불과한 것인데, 그 티끌 위에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겠습니까? 자연을 알면서 그런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지요. 더 알면 더 보이고, 더 보이면 더 인생의 의미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대성이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짚으면서,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오해를 바로잡아 가는 과정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이것 역시 과학의 즐거움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작가님께서는 과학의 즐거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자들이 과학을 알아가면서 어떤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시나요?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상대성이론은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알려지다 보니 오해도 많아졌습니다. 사실, 그 오해는 상대론의 ‘상대적’이라는 그 용어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을 바로잡는 것도 이 책이 추구하는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물리학이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교수가 된 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부터였습니다. 과학적인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면서 감동하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감동을 하지만, 이 자연을 이해하면서 얻는 감동 역시 다른 어떤 감동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뉴턴의 역학을 이해하면서 ‘뉴턴이 이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까’ 하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뉴턴이 발견한 것임에도 마치 내가 발견한 것 같은 희열이 느껴집니다. 다른 학문도 그렇겠지만, 과학에도 이런 희열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느낀 이 희열을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독자들만 알겠지요?
평생을 물리학자로 살아오신 만큼, 한 권의 책에는 채 담지 못한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아요. 아쉽게도 책에는 담지 못했지만 꼭 들려주고 싶은 과학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제가 어느 신문에 오랜 기간 동안 과학 칼럼을 게재했었습니다. 그것을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책으로 내기로 한 것이 바로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데 책을 편집하다 보니 제가 쓴 글을 상당 부분 싣지 못했습니다. 특히 생물의 진화와 관련된 내용과 인공지능에 관한 글은 한 편도 싣지 못했습니다. 진화론과 인공지능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미래 사회에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주론을 다루기는 했지만 최근 부각되고 있는 평행우주, 다중우주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인류와 우주의 미래를 그려 보는 내용으로,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을 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주를 만지다』를 읽는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어 주길 바라시나요? 또, 과학을 재미없고 딱딱하다고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눈은 책에 있어도 마음은 저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자연을 묘사하는 학문이니까요. 예컨대, 뉴턴의 운동법칙은 수식(F=ma)으로 표현하지만 이 수식을 보면서도 대포알이 날아가는 모습, 인공위성이 지구를 도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저도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은하’라는 글자를 눈으로 보면서도 마음은 저 우주 공간의 수많은 별로 이루어진 은하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과학을 안다는 것은 자연을 보는 일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자연을 보는 독자들의 마음이 달라지기를 바라고, 과학이 독자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기를 기원합니다.
*권재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과학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교원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한국교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했으며, 한국과학교육학회 회장, 한국물리학회 물리교육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학에서는 과학교육론과 상대론을 강의했으며, 초·중등 과학 및 물리 교과서를 다수 집필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과학교육론』(공저)과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실한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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