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일에는 하나도 떨리지 않지만, 문득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질문지를 준비할 때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를 띄워 두고, 내가 던진 질문이 끝내 전달되지 못하고 상대의 말문이 막히는 상황을 상상한다. 막막한 기분을 전환하려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괜히 책을 뒤적이고, 인터뷰에 대한 칼럼을 찾아 읽고… 그때 도움이 됐던 말.
“인터뷰를 가기 전에는 무엇을 물을까 보다, 어떤 말을 하지 않을지 정하고 간다.”(김현우 PD)
지금보다 인터뷰가 더 서툴 때, 할 말을 많이 준비해갔다. 책을 여러 번 읽어가며 나름의 해석을 내리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래, 이 책을 쓴 작가라면 이런 말을 해줄 거야. 이런 주제로 인터뷰를 구성해봐야겠다. 그러나 인터뷰 당일, 그렇게 완성된 질문지를 쥐고 상대를 마주하면 그제야 깨닫는다. ‘아, 상대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닌데.’ 원하는 대답을 유도하려는 마음을 누르고 겸손해진다. 나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야 할까? 어떤 말을 하지 않을지 정하는 것은 ‘듣기 모드’를 정하는 데 유용하다. 가령, 나는 상대를 부를 때 직함을 덜어내고, ‘작가’로 통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업 작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자유롭게 책을 쓰는 시대다.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이나 PD, 뮤지션이라도, 익숙한 직함으로 부르고 싶지 않았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건, 그 직업이 거창한 것이건 그렇지 않건 어쨌든 글로서 소통하기를 마음먹고 행동에 옮긴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 알기 쉬운 이력 대신에, 글을 쓸 때의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들을게요. 그래서 난 직함을 말하지 않도록 애쓴다.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어떤 말은 하지 않는 게 필요하다.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인터뷰이를 만났을 때, 나는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정했다. 보통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하면, 고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그 직업을 하대하거나 지나치게 대단하다고 말하게 된다. 힘들겠다는 자동적인 반응 대신,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를 물어야 하는 건 아닐까? 막연히 해왔던 생각이 상대를 만나서 깨지는 경험을 인터뷰에 담고 싶었다. 그러려면 선입견에 기댄 말을 하지 않는 게 우선이겠지. 내가 타인에 의해 쉽게 판단되고 싶지 않듯이, 남도 그럴 테니까.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말들을 찰랑찰랑 담아 돌아올 때면, 정말이지 뿌듯한 기분이 든다. 단, 마감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인터뷰 원고를 쓰기 위해 다시 백지 앞에 앉을 때면, 질문지를 준비할 때의 내가 속삭인다. “질문지 짜는 게 세상 어려운 일인 줄 알았지? 이제 시작이야.” 그렇게 말을 글로 옮기면서 또다시 괴로워하며 한 달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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