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코리안 티처』. 이 책은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네 명의 한국어 선생님 선이, 미주, 가은, 한희의 이야기다. 5부로 구성된 소설은 학기마다 한 명의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코리안 티처』를 읽어나가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도 열심히 살았던 네 명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위기에 봉착하는 걸 지켜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고민 앞에 서고 만다. “일의 존엄이 없는 곳에 사람의 존엄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서영인 평론가의 말은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일하는 사람의 존엄에 대한 논의가 성숙한 지금이기에,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코리안 티처』가 바꾸어나갈 한국소설, 그리고 한국사회의 모습이 더욱 기대된다.
『코리안 티처』는 한국어 강사 네 명이 주인공인 소설인데요. 한국어 강사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K-POP, K-드라마와 같은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외국인에 대한 보도를 다들 보셨을 거라 봐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로 소개될 때가 많지요. 그런 기사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물론 아름다운 일이지만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것에 화가 날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한류의 맨얼굴이랄까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처한 자랑스럽지 않은 현실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학기당 계약을 연장하고, 그러니 잘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도리어 매 학기 잘리지 않기 위해 부당한 대우에 침묵하면서 그 안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삶이요. 그리고 이것이 한국어 강사들만 겪는 삶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삶의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 순간 고비를 넘기는 삶이랄까요. 그래서 그럴듯해 보이는 대학 어학당 강사들의 고단한 삶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부분이 소설 속에 많이 나오는데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여성으로서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또 작가님은 여성으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언제셨나요?
우리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여자들도 모두 교육받고 사회에서 일하지만, 여전히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아기를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들이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들 하고, 그런 직종에 여자들이 많잖아요. 다시 말해 전력을 쏟지 않아도 되는 일, 메인은 아기를 키우고 서브로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들요. 교육직이 그렇게 이야기될 때가 많죠. 대학 어학당 일도 그렇고요. 하지만 전력을 쏟지 않아도 되는 일은 없어요. 서브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요. 그러나 아무리 전력을 다해서 임해도 서브로 취급받아요.
저 역시 결혼했으니까 한국어 강사를 하는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한국어 교육에 열정이 있었는데 말이죠. 시수를 줄일 때도 기혼 강사들한테는 미안해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남편이 번다는 거죠. 반대로 시수를 늘려 열심히 하면 남편이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도 들어봤어요. 여자가 일을 하는 것이 남편의 무능으로 이야기되는 분위기에 힘이 빠질 때가 많아요. 우리는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하잖아요. 그래서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여자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오랜 기간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많은 외국인들을 만나오셨고, 또 지금은 호주에 거주하고 계시죠? 한국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어떤 나라이고,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 거 같으신가요?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있어요. 한국인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까지 하기 위해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이죠. 호주에서는 워라밸이 중요해서 승진을 마다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책임을 지고 스트레스받으면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그런데 호주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틀 쉬어서 뭐하냐면서 주 6일씩, 심하게는 주 7일씩 투잡 쓰리잡을 뛰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희생’인 것 같아요. 한국인들은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포기하고, 힘들어도 죽겠어도 계속하죠. 놀랍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때로는 이제까지 우리 할 만큼 했으니 조금 쉬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죠.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 순간을 극복하는 일상의 기술도 궁금합니다.
목숨을 걸고 글을 썼을 때가 있었어요. 당시 소설 합평집 이름을 ‘소설, 목매달아 죽을 나무’라고 지었을 정도였으니까 말 다 했죠.(웃음) 그때는 공모에서 떨어질 때마다 제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어요. 절망의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죽을 각오를 내서 다시 쓰기를 반복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오래 쓸 수가 없더라고요. 모든 일에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얻기 위해 제일 필요한 건 ‘그 외의 행복’인 것 같아요. 내가 꿈꾸는 것이 내 행복의 전부가 되면 삶 전체가 무너져버리더라고요. 지금 책이 나와서 행복하지만 사실 저는 여전히 일상의 다른 행복들에도 집중하면서 살려고 해요. 여전히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있고, 학생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 즐거워요.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고요. 시간을 정해서 운동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역시 아주 중요한 일이고 제게 큰 기쁨을 줘요. 그렇게 다른 행복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어요. 그 행복이 제게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줘요.
차기작을 집필 중이신지 궁금하고, 집필 중이시라면 어떤 이야기인지 슬쩍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여성의 이야기인가요?
요즘 다음 책을 고민하고 있어요. 호주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호주의 한인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여성들만의 이야기로 생각했었는데,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민자 2세대의 이야기에 끌리더라고요. 한국인의 얼굴을 한 호주인들의 이야기랄까요. 한국인도 호주인도 아닌, 동시에 한국인이면서 호주인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코로나가 종식되어 다시 여행을 갈 수 있게 된다면 어디를 가고 싶으세요? 또 호주에 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꼭 추천할 만한 장소가 있다면요?
말 그대로 어디든 가고 싶네요. 여행이 이렇게 간절해지기는 처음이에요. 상금을 받으면 친구들과 발리에 가기로 했는데 아직 못 가고 있어서요.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가장 먼저 발리에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호주에 온다면, 오프로드를 달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빨간 흙이 끝도 없이 펼쳐진 오프로드에서 해가 지면 은하수가 펼쳐지고 별똥별이 여기저기서 떨어져요. 떨어지는 별을 보면서 소원을 많이 빌어보세요.
독자들이 『코리안 티처』를 이렇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으셨을 거 같아요. 얘기해주시겠어요?
우리 모두 간절해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살면서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생기고,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기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너를 돕는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반대로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응답받지 못하는 순간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정말 간절히 바랐고,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온 우주가 나를 저버리는 것처럼 배반당하고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요. 그 순간을 겪는 이들에게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이 책의 모든 여성들은 그런 배반과 절망을 겪어요. 그럼에도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미래를 선언하죠. “사는 거 너무 힘들죠, 그래도 우리 살아남아 봅시다. 우리는 살아남을 거예요.” 그런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책을 통해서.
* 서수진 『코리안 티처』의 저자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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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