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가져온 대대적인 인류의 격리는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를 강제했고, 이는 곧 정신적 피폐로 이어졌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거리두기 가운데 관계라는 정체성을 잃기 마련이다. 제시 웨어의 정규 4집
두아 리파의 < Future Nostalgia >와 위켄드의 < After Hours >, 그리고 레이디 가가의 < Chromatica >처럼 최근 음악계는 디스코를 지향하는 추세다.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에서라도 흥겨운 환각을 가져오려는 일종의 리바이벌 운동이다. < Devotion >에서 거창한 스케일의 신묘한 감상을 구사하던 제시 웨어(Jessie Ware)가 돌연 1980년대 디바로 등장한 것이 의아스럽지 않은 것도 그 흐름의 일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스타일 변모는 제목이 던진 물음의 답처럼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 사라진 즐거움을 복구하고 접촉의 정의를 재정립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앨범들이 인위적인 신시사이저로 차트에 쏘아붙인 댄스 팝 광선이라면, < What's Your Pleasure? >는 은은한 달빛에 비친 우아하고 세련된 무도곡에 가깝다. 영국의 록 밴드 악틱 몽키즈의 < AM >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James Ford)의 손길을 거친 앨범은 청자를 사람이 부대끼는 광란의 클럽과 고고한 무도회장의 중간 지점으로 데려간다. 다분히 감각적이고 농염하지만 가볍지 않다. 넘실거리는 도나 섬머(Donna summer)의 융단이 오디오 너머로 재생되고 꿈틀대는 욕망과 육체의 감각이 깨어난다.
스웨덴 뮤지션 로빈(Robyn)의 < Honey > 프로듀서 조셉 마운트(Joseph Mount)가 참여한 선공개 싱글 'Adore you'가 진지한 딥하우스 이미지를 선사하고, 베이스 라인 아래 희로애락이 격동하는 'Spotlight'과 'What's your pleasure?'가 앨범의 서두를 차지하며 두 가지 인상을 단단히 휘어잡는다. 초반부 수록곡은 대체로 긴박한 도취를 유도한다. 잡다한 사운드가 뒤엉키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Ooh la la'는 하나의 거대한 골드버그 장치와 같으며 명징한 신스 라인이 주가 되는 'Soul control'은 디스코 볼의 광채를 재현한다.
반면 후반부로 들어서자 앨범은 차분한 기조 아래 낭만을 머금기 시작한다. 스타카토 보컬 아래 능란하게 진행되는 'Step into my life'와 묵직한 위기감을 이내 희열로 끌어올린 'The kill'과 같이 앨범은 다채로운 모습 아래 여러 정서를 동반한다. 제시 웨어는 팝의 반짝이는 단면을 다룬 전작 < Glasshouse >에서 더 나아가 디스코의 긍정성과 발라드의 연성을 오가며 노련하게 지휘하는데, 이는 그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Remember where you are'의 웅장한 코러스로 마무리 되는 그가 주조한 53분의 멜로 뮤지컬 속에는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온기가 담긴다. 즐거움의 정수와도 맞닿아 있다. 비록 인간 본연의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찾기 힘들지 몰라도, < What's Your Pleasure? >가 가진 원초적 그루브는 무료함에 질린 이들에게 훌륭한 디스코텍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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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