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연재를 마칠까 한다. 인사 없이 시작했으니, 끝도 그렇게 해야지 생각했지만 난 또 그렇게 쿨 하지 못하지.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오직 한 사람 때문이었다. ‘나는 첫인상이 나쁘다’ 라는 자격지심이 있는데, 그런 소리를 종종 들어왔기 때문이다. 웃어주면 좋게 봐 줄까 싶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웃어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돌아서면 공허해져서 혼자 있을 때는 웃지 않길래 진작에 때려치웠다. 웃고 싶을 때만 웃는 삶을 살아야 스스로에게도 많이 웃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준 나에게 아직도 감사한다. 내 인생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는 것은 완벽한 시간 낭비다.
작년 봄에 출판업계에서 일하신다는 Y님이 날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만났다. 영화와 인터뷰를 통해 느낀 내 캐릭터가 재밌어서 만나고 싶었다고 하시며, 왠지 글을 써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정말 글을 못 쓸뿐더러 출판에는 관심이 없어서 대충 대화를 마무리했다. 첫 만남 후 Y님의 트위터를 훔쳐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인상적인 칭찬이 적혀져 있는 게 아닌가.
‘맙소사! 이거 내 얘기 같은데? 내 인상이 재수 없었던 게 아니라 무려 기록을 남길 만큼 좋았다고?’
나는 그랬다. 내가 서비스를 베풀지 않았음에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평생 일기를 안 쓰던 나였지만, Y님이 내 글을 보고 싶다고 해서 후딱 쓴 일기를 보내드렸다. 마침 그 일기를 좋아해 주셨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괴롭게 울며불며 몇 달을 쓴 시나리오를 보내도 받아본 적 없던 사랑을 한 시간도 안 돼서 쓴 한 장짜리 글로 받다니. 이렇게 쉬울 수가. 이런 것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고, 글에 관해 애정 결핍에 걸려 있던 나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때마다 Y님에게 일기를 써서 보냈다. 그런 나의 남루한 사랑의 구걸들이 모여 연재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연재가 어디에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이렇게 속전속결로 칭찬받을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 내 바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걱정됐지만,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재미있어 한다면 얼마든지 였다. 떠돌이 개인 나에게 가끔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주던 Y님과 산책을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심 ‘설마 이 글을 누가 보겠어? 아무도 모를 거야’ 라는 생각으로 걱정을 지웠다. 물론 네이버에 내 이름을 치면 이 일기가 연동된다는 사실은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되어 슬펐지만 괜찮았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산책은 즐거우니까. 결국 비밀스럽게 시작한 나의 취미 생활은 아직도 매일 내 이름을 검색하는 아버지에게 딱 걸려서 온 가족이 다 읽는 일기가 되어버렸는데, 금기 단어가 좀 생긴 것 말고는 나쁘지 않았다. 얼마 전 아버지 생신에 고향에 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한우를 사주시며 ‘이건 육우가 아닌 한우다’ 라고 하는 말에 온 가족이 웃었다. 이따금 주변 지인들도 조용히 내 일기를 훔쳐보고 문자로 보내오는 관심도 따뜻하고 고마웠다.
늘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나의 무모함을 혐오하면서도 잘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나는 그 무모함을 먹으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보면 계획적인 삶이 훨씬 안정적인 생산을 하지만 세상에는 무계획적이어서 만들어지는 것들도 있다. 나에게는 결혼이 그랬고, 광화문시네마의 시작도 그랬다. 결론적으로 인생에 가장 큰 두 가지가 그랬으니 나에게는 나쁘기만 했던 방식이 아니었다. 결혼의 경우는 남편이 나에게 고백했을 때, 나는 네가 아는 몇몇과 사귀었는데도 아무 상관없냐고 물었다. 그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에 반한 것을 시작으로 결혼까지 갔다. 광화문시네마의 경우는 남성은 안 좋아할 줄 알았던 내 단편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에 김태곤 감독과 친해졌고, 그의 독립 장편 영화까지 같이 만들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아주 무계획적으로 멤버들이 모여 즉흥적으로 영화를 찍다 보니 광화문시네마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동력발생기는 혼자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뿐이다. 타인은 늘 내 마음 같지 않기에 기쁨이 큰 만큼 슬픔도 커서 힘들지만, 결국 골고루 다 얻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야기가 많이 돌아왔지만 그러니까 이 6개월의 격주 연재는 철저히 ‘유선사’의 Y님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모난 나를 매력 있게 봐 주었다는 그 이유 하나가 순간들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한 사람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 그릇이 작은 나에게는 늘 한 사람도 많다. 동력 발생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고 퀄리티의 일러스트로 연재를 함께 해준 이홍민 작가님께 감사를 드리며, 저의 별 거 없던 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반가움을 남기고 떠돌이 개는 다시 떠납니다.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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