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7월 우수상 - 아버지의 술빵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술빵이었다. 어떤 이는 술떡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막걸리 빵이라고도 하는, 하얗고 폭신한 그것.
글ㆍ사진 이지영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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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올해 아버지 제사상은 간단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음식을 올리는 것도 좋겠다고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음식. 김치말이 국수, 평양식 만두, 냉면 등이 떠올랐다. 그러나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술빵이었다. 어떤 이는 술떡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막걸리 빵이라고도 하는, 하얗고 폭신한 그것. 아버지는 술빵을 제일 좋아하셨다. 술빵을 드실 때마다 어린아이의 미소가 얼굴 가득 번지곤 하셨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술빵을 좋아하셨는지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춘기 시절에는 술이 얼마나 좋으면 간식조차 술이 들어간 것을 좋아할까 냉소하기도 하였다. 어른이 된 뒤로는 폭신한 질감과 새큼달큼하면서 살살 녹는 맛이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그러니 아버지가 술빵을 좋아하는 데 딱히 이유란 필요 없었던 셈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친정을 찾을 때면 시장에서 파는 술빵을 먼저 사곤 했다. 제대로 된 떡집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수레에 냄비 하나 놓고 시장 골목 귀퉁이에 자리 잡은 아주머니를 찾아가면 됐다. 향긋한 술 냄새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서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 술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내려가시기 전날에도 나는 술빵을 사서 병실에 갔다. 환자복을 입고 힘없이 누워계시던 아버지는 비닐봉지 안에 허름하게 담긴 술빵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말랑한 술빵을 조금 뜯어 드시더니 말씀하셨다. 

“냇가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이렇게 술빵을 쪄서 주시곤 했어.”

술빵에 대한 아버지의 추억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게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아버지의 고향은 평양이다. 아버지는 전쟁 때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이셨다. 배를 놓칠까 봐 서두르는 바람에 맨발로 집을 나선 일, 맨발로 눈길을 걷느라 동상에 걸린 일은 술에 취한 아버지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따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었던 어머니를 잃어버린 순간. 분명 손 꼭 잡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던 순간. 아버지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 순간에서 멈추곤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흐느껴 우셨다. 매번 같은 대목에서 아홉 살 어린아이의 얼굴이 되곤 하셨다.

중환자실에 내려간 아버지 목에는 구멍이 뚫렸고 그 자리에 긴 호스가 연결됐다. 아버지는 꼼짝없이 침대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뻐끔뻐끔 눈을 깜빡이거나 약간의 신음을 하는 정도가 다였다.

하루는 잠든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봤다.

“지금 무슨 꿈 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냇가에서 물고기 잡는 꿈을 꾸고 계실까? 옷이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혼이 나고도, 갓 쪄낸 술빵을 먹어 보라는 어머니 말씀에 배시시 웃는 어린아이의 꿈. 폭신폭신, 몽글몽글한 술빵을 입안 가득 넣고 우물우물 어머니를 불러 보고 계실까. 그랬으면 좋겠다. 꿈에서라도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를, 술빵처럼 따뜻한 어머니 품속에 안겨 쉬기를.

아버지 제사상에 술빵을 올리며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떠올린다. 이제 술빵은 아버지만의 추억이 아니라 나의 추억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술빵이란 어머니였듯이, 나에게 술빵이란 아버지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그리움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되었다. 

술빵을 뜯어 먹는데 그 질감이 새삼스럽다. 구름을 뜯어 먹으면 이런 맛일까? 아버지가 구름 위에서 우릴 내려다보는 상상을 하며 슬며시 웃는다. 사진 속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본다.

“딸내미가 주는 술빵도 맛있지?”


이지영  영화 '라붐' 속 소피 마르소의 할머니처럼 유쾌하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입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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