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잘하고 싶지만 부모님을 퇴근시켜 드리려면 집에 가야 하고, 앵커도 잘해야 하는데 따로 모니터링을 하거나 준비할 시간은 없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도 아이가 엄마를 자주 못 보다 보니 밤에 깨서도 할머니를 찾고. 지금 그 자리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모든 워킹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정도면 됐다. 우리 죽지 말고 잘 살아남자.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MBC 기자이자 <뉴스투데이> 앵커인 김지경 기자님의 에세이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주중에는 정치부 기자로, 주말에는 뉴스 앵커로, 또 다섯 살 아이의 엄마로 하루하루를 불사르는 김지경 기자님은 잊기 힘든 일화가 많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앵커룸에 77사이즈 옷이 없어 당황하던 일, 관행이라는 말로 머물러 있던 여성 앵커의 자리를 바꾸기로 마음 먹던 일, 일터에서 만난 멋진 언니들에게 감동하던 일까지.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는 치열한 방송국 뉴스현장에서 4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됨과 희열을 솔직한 언어로 기록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김지경 기자님을 모셨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인터뷰 – 김지경 편>
오은: 섭외 연락을 받고, 음주 방송을 꿈꾸셨다고 들었습니다.(웃음)
김지경: 네, 김혼비 작가님 편을 깔깔 웃으면서 들었거든요. 술을 따르는 청아한 소리를 들으면서 ‘저거다!’ 했는데요. 제 책에도 술 내용이 있으니 혹시 술을 준비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웃음)
오은: 기자라는 직업은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실 상황이 많더라고요. 책을 통해 알았어요.
김지경: 실은 아침에도 국회에서 오찬 자리가 있었어요. 일 자체가 워낙 사람을 만나고 술을 먹게 되는 일이 많아요.
오은: 주중에는 정치부 기자로 일하고, 주말에는 뉴스 앵커로 활동하셨어요. 지금은 앵커 일이 끝나셨다고 듣긴 했지만요. 거기에 엄마라는 역할까지 하려면 진짜 정신이 없을 것 같아요.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들려주세요.
김지경: 최근까지 앵커를 했으니까, 그때를 기준으로 말씀드릴게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정치부 기자로 국회에서 취재를 해요. 하루 일과는 아침 8시쯤 국회에 도착해 뉴스가 시작되는 저녁 7시 30분 정도까지 국회에 있는 거예요. 그러는 동안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저녁에도 술자리가 있어요. 토요일에는 아침 뉴스라 집에서 새벽에 나가야 하니까 금요일은 되도록 <뉴스데스크> 리포트는 안 하고, 저녁 6시쯤 퇴근을 합니다. 금요일 저녁에 공포의 피팅 시간이 있어서 다음 날 뉴스에서 입을 옷을 입어보고요. 코디님께서 옷을 세 벌 정도 가져오시면 하나 정도는 무조건 안 맞아요.(웃음) 그러고 집에 가서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요. 앵커로 뉴스 진행을 하고, 아침에 퇴근을 하죠. 그렇게 일주일이 돌아갔습니다.
오은: 그런데 일요일은 또 자녀 분과 시간을 보내야 하니, 사실상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거의 없었겠어요.
김지경: 매일 해야 할 목록이 10개 정도 있다면 3-4개를 하고, 나머지는 계속 미루는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오은: 이렇게 바쁜 틈에 글은 대체 언제 쓰신 건가요?
김지경: 보통 토요일에 새벽에 일어나 뉴스를 진행하고 집에 오면 오전 8시쯤 됐어요. 남편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는데요. 그때 잠을 자는 대신 글을 썼어요. 일단 편집자 분의 강요와 협박이 있었죠.(웃음) 한편으로는 제 일상이 너무 바쁘니까 하루 종일 의무감밖에 안 남는 것 같은 거예요.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 기자로서 해야 하는 일 등을 잘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는 그 시간이 큰 힘이 됐어요.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주 위안이 됐죠.
오은: 앵커와 기자, 엄마라는 역할 가운데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역할은 뭔가요?
김지경: 기자라는 호칭이 가장 익숙하고요. 앵커를 1년 넘게 하긴 했지만 누가 “김앵커”라고 부르면 “저요?”라고 되묻게 돼요.(웃음) 끝까지 그 정체성에는 별로 안착하지 못한 것 같아요. 엄마도 어색한 정체성이긴 한데요. 적응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오은: 이제 김지경 기자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기자, 뉴스 앵커, 취재 현장에서 늘 가슴이 뛰는 사람. 세 자매 중 첫째로, 태어날 때부터 왕언니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김지경. 2005년 12월 MBC 38기로 입사했다. 수습 기자 시절은 잘 씻지 못해 늘 꼬질꼬질 냄새가 났고, 사람이 잠을 이렇게 못 자도 살 수 있구나, 하며 하루하루 한계를 확인하는 극한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경찰서를 헤매다 지친 몸으로 회사에 복귀해 뉴스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을 들으면 설레고 뿌듯한 기분이 들어 늘 그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2012년 <시사매거진 2580> 소속 기자였던 김지경은 회사에 신고하지 않고 외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는다. 정직처분무효확인 소송을 냈고, 2015년, 대법원은 그 징계가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사측은 그 해 다시 악의적인 정직 1개월의 재징계를 내렸다. 부당한 재징계에 대해 또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은 사측의 재징계 처분도 무효라고 판결했다. 힘든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아 그저 천천히 질식해가는 기분으로 살았다. 정직 3개월이라는 시간을 때우려고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운명은 그를 영국 유학으로까지 이끌었다.
비혼으로 살 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을 했고,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는 멘붕에 빠졌던 그에게 육아휴직 1년은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이었다. ‘모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따뜻함보다는 불편함이 앞서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시스템이 부당하다는 게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늘 ‘아기냐 일이냐’를 저울질 하며 어떤 선택을 하든 죄책감을 느끼는 생활을 하면서도 후배들만큼은 출산, 육아로 고민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길을 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왕언니 김지경. 허당에, 패션꽝에 ‘술’을 생각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주당이다. 버거운 하루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면 영국 유학 끝무렵 3주 동안 가족 몰래 했던 아프리카에서의 스카이다이빙 장면을 떠올린다. 가장 큰 꿈은 현장을 뛰어다니는 백발의 할머니 기자가 되는 것이다.”
김지경: 엄청나네요.(웃음)
오은: 왕언니의 포스가 느껴졌는데 역시 셋째 중 첫째셨군요?
김지경: 왕언니라기보다 걱정 끼치는 언니에 가까웠어요.(웃음) 허당이라서요.
오은: <시사매거진 2580> 소속 기자 당시 외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했다고요?
김지경: 언론의 자유가 매우 탄압 당하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당시 시사 프로그램에 있었는데요. 시사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폐지하는 움직임이 먼저 있었어요. 기자들이 많이 저항했지만 결국 제가 있던 프로그램도 없어지고 <시사매거진 2580>으로 이동했죠. 그곳에서는 당연히 다뤄야 할 아이템을 막곤 했어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라는 식이었고 기자들이 납득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었어요. 내부에서도 많이 싸웠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외부에 문제제기를 하는 차원에서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러자 바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가 나왔죠. 소개된 것처럼 대법원에서 징계가 무효하다고 판단했는데 다시 정직 1개월을 주고, 그런 엄혹한 시절이었어요. 그때 부당한 전보, 해고 등의 조치를 당한 사람이 100명은 족히 넘을 거예요. 저뿐 아니라 동료들이 당시 워낙 많은 고통을 겪었죠.
오은: 직접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를 소개해주실 차례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김지경: 가제가 ‘77사이즈 아줌마의 앵커 도전기’였어요. 이 안에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데요. 77사이즈의 아줌마인 제가 처음으로 앵커가 되면서 겪는 이야기가 총망라되어 있고요. 사이즈 이야기와 더불어 제가 스튜디오 안에서 만난 세계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습니다.
오은: 책을 읽기 전까지 아나운서와 앵커가 같은 말인 줄 알았어요. 앵커와 아나운서, 기자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세요.
김지경: 앵커란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을 뜻하고요. 앵커는 기자도 할 수 있고, 아나운서도 할 수 있어요. 프로그램 앵커 같은 경우 외부인도 가능하죠. 학자나 연예인도 앵커를 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주로 아나운서와 기자가 앵커를 맡게 되는데요. 기자들은 주로 취재를 하면서 일부가 뉴스 앵커를 하고, 아나운서는 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일부가 뉴스 앵커를 맡게 되는 거예요.
오은: 그래서 ‘기자 앵커’, ‘아나운서 앵커’라는 말이 나오는 거군요.
김지경: 그렇긴 한데요. 시청자 입장에서는 별로 신경을 쓰실 이유가 없어요. 손석희 앵커도 아나운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기자 출신인지 아나운서 출신인지와 무관하게 뛰어난 앵커시잖아요.
오은: 앵커로 발탁이 됐을 때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맞는 옷이 있을까, 라는 걱정부터 했잖아요.
김지경: 77사이즈 옷 생각이 처음 들었던 이유는 과거 기자로서 스튜디오에 출연했을 때 앵커룸에 갔는데 맞는 옷이 없었던 경험 때문이었어요. 그렇지만 기자로서 앵커를 맡게 되는 건 진짜 좋은 경험이고, 감사한 일이라 무엇보다 ‘망하지 말고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오은: 남자 앵커가 화면의 왼쪽, 여자 앵커가 화면의 오른쪽에 서는 게 관행이었는데요. 그것 역시 바꾸셨어요. 바꾸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김지경: TV 뉴스가 중요한 게 그걸 보면서 특히 아이들이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그런데 중년 남성과 아름답고 젊은 여성 구도였던 거죠. 남자는 기자, 여자는 아나운서인 경우가 대다수예요. 기본적으로는 그런 것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우연찮은 기회지만 여자 기자와 남자 기자가 앵커를 맡게 됐고, 게다가 제가 선배였어요. 제가 선배인데도 남자 기자가 메인 앵커를 맡는다면 말 그대로 남자라서 메인 앵커가 되는 게 여실한 상황인 거죠.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문제 제기를 안 하고 넘어가면 평생 후회가 될 것 같더라고요. 지금 명확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이대로 고착화될 텐데 그렇다면 너무 부끄럽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문제 제기를 했어요.
오은: ‘자리’라는 것을 겨우 얻어서 비집고 들어가는 소극적인 의미로 생각했는데 내 자리는 내가 정한다고 말을 하니까 아주 능동적인 삶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좋은 자극으로 다가온 제목이었어요.
김지경: 여성들은 살면서 자주 겪게 되는 일 같아요. 책을 내고 기억을 떠올려 보니까 고등학교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더라고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장이었는데요. 학교에서 조회를 하면 각 반의 반장들이 가장 앞에 섰거든요. 그런데 당시 여자 반장이 저 혼자였던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앞줄에 섰는데요. 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너 혼자 여자가 앞에 서는 게 튄다. 뒤에 서라.”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남자 부반장을 앞에 세우라고요. 그때 제가 다음 전교 학생 임원 회의 때 역시 참지 못하고(웃음)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문제 제기를 했어요. 그래서 그때도 자리를 바꿨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오은: 역시 왕언니, 관행을 부수는 사람이었습니다.
김지경: 그보다는 욱하고, 나중에 피해를 보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오은: 책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그 여성 앵커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고요. 나이 들어도 남자는 앵커를 계속 할 수 있는데 여성 앵커는 왜 사라지는 걸까 궁금해졌어요. 실제로 현장은 어떤가요?
김지경: 박혜진 아나운서가 제 책을 보고 SNS에 후기를 올려주셨는데요. 10여년 전에 했던 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다니 안타깝다는 내용이었어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 지금도 메인 뉴스 방송을 보면 연차가 많지 않은 분들이 앵커를 맡고 있거든요. 실력을 많이 쌓고, 연륜이 있는 훌륭한 여자 아나운서 선배들은 어디 있는지 생각해보면, 찾기가 힘들죠. 그런 것을 보면 여전히 젊음과 미모처럼 외적인 면만 보고 기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요. 변화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KBS 메인 뉴스 앵커도 40대 여성이 맡았고, MBC도 평일 아침 뉴스를 40대 여성 기자가 맡게 됐잖아요. 이런 정도의 변화는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오은: 취재 현장을 가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고 하셨어요. 김지경 기자님이 생각하기에 기자가 꼭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면 무엇을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김지경: 어려운 질문인데요. 실무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논리력이죠. 자기 생각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느냐가 기본인 것 같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해요. 선한 마음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악한 마음을 먹을 때 나쁜 짓을 할 여지가 많거든요. 예전만큼 그게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을 기록한다고 해도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시선이 기사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선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기자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웃음) 부끄럽지만 다른 분들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은: 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시사매거진 2580>과 <후 플러스> 제작하던 2010년에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잖아요.
김지경: 저는 처음부터 소수자에 관심이 있었어요. 2010년, 베트남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온지 8일 만에 정신질환이 있는 남편에게 살해 당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너무 속상하고, 기억에 남았던 사건인데요. 그 여성이 당시 20살이었어요. ‘오빠’라는 단어밖에 모르는 채로 결혼을 하러 온 건데 살해를 당한 거죠. 그때 급히 사건을 취재하러 베트남으로 갔어요. 한국 취재진은 저희뿐이었어요. 부모님이 딸의 장례를 치르는 현장에 갔으니 얼마나 좌불안석이었겠어요. 그런데도 부모님이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취재를 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동성애 사례도 취재를 했었고요. 안타까운 것은 그걸 보도한 게 벌써 10년 전인데 여전히 차별금지법도 제정이 안 됐고, 이주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정책적 변화도 없는 것이고요.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은: 워킹맘, 유리 천장으로 힘들어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는 한 마디 부탁드려요.
김지경: 일단 지금 그렇게 살아내고 계신 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여기저기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그런 것 신경 쓰지 마시고요. 조금씩은 나아지더라고요.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요. 건강 챙기시고, 최대한 즐겁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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