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하면, 나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편이다. 예컨대 뜨개질. 코스터를 하나 떠볼까 하고 시작했다가 20L 봉지만큼 털실을 샀다. 코스터, 방석, 물병 가방, 가방, 카드 지갑, 컵 슬리브,... 사람들은 내가 굵은 니트를 입을 때마다 그것도 뜬 거냐고 물어보곤 했다. 최근에는 오븐을 샀다. 브라우니를 두 번, 마들렌과 케이크를 한 번씩 구웠다. 찬장 한 켠에 베이킹 관련 물건만 넣는 공간을 만들었다. 쇼핑몰 장바구니에 종류별 밀가루와 빵틀이 잔뜩이다. 요즘은 베이킹이 조금 시들해진 시점이다. 날이 더워지면서부터이다.
그럼 다음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는 포식자처럼 다음 먹이를 찾아 헤맨다. 문제는 포식자라는 것보다 에너지가 그다지 없는 포식자라는 것이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화려하게 불을 태운 다음 나는 나자빠진다. 아이코 더는 못 하겠어요! 그리고 다음 에너지가 쌓였을 때 다른 것에 도전한다. 그렇게 취미는 늘고 어지간히 할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나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을 불타오르는 내 에너지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싫증을 빨리 느끼는 것과는 다른 문제, 나는 초반에 모든 에너지를 불태우는 사람이다.
일 처리도 똑같다. 일이 생기면 즉시 착수하고 빨리 끝낸다. 대학교 때는 수업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부터 그 수업에서 부과된 과제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친구는 내가 늘 새로운 한글 파일을 만들고 있었다고 했다. 주연이는 늘 과제 받으면 해당 과제명으로 파일을 만들더라고. 바로바로 해, 그리고나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빨리 처리해야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아플 수도 있고 힘에 부칠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에너지가 있는 이 때에 빨리 이 일을 해두어야 한다고. 요즘도 그렇다. 메일함에 메일이 쌓이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 일생을 걸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맹렬히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해결할 수가 없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힘을 기울여 집중하는데 그럴 때마다 실패한다. 차에 기름 넣듯이 내 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에너지를 넣었다면 연비가 너무 좋지 않아 아무도 나라는 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이 차는 관리하기 쉽고 평상시에는 잘 굴러가는데 오르막길만 나오면 연비가 꽝이야.
“우리는 문제를 덥석 받아들고 기적의 성장촉진제를 듬뿍 뿌려서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자라게 만든다. 그런 잘못된 해결책 가운데 으뜸이 노력이다. 그냥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시도도 하지 말고, 애쓰지도 말라는 뜻이 아니다. 10점이 만점인데 11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역효과라는 얘기다. 지나친 노력은 문제를 더 크게, 우리의 능력은 더 작게 보이도록 만든다.”
-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 데이비드 니븐.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하는 노력은 의미 없는 노력이었을 수 있겠구나. 의미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적 의미를 가진 노력이었겠구나. 지난 세월의 무상함에 눈물이 흐르지만 어쩌랴,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온 에너지를 털어 하나에 집중한 뒤 털고 나오는 나의 생존 습관이, 고맙게도 이제까지는 나를 먹여 살려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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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도서 MD)
수신만 해도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