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섬세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웃음) ‘어떤,책임’ 시간이에요! 오늘 주제는 ‘다른 나를 발견한 책’입니다.
프랑소와 엄: 처음에 이 주제를 보고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생각해보니 정말 좋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책이어도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캘리: 어떤 책을 읽더라도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 그 부분이 무척 중요할 것 같아요. 사실 그러려고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노를 든 신부』
오소리 글, 그림 | 이야기꽃
‘이야기꽃’ 출판사는 그림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예요. 만약 어떤 그림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분들은 이 출판사의 책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다 좋은 그림책이고요. 신진 작가 분들의 그림책도 많으니까 살펴보시면 좋겠어요. 먼저 표지 그림을 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인데요. 강하고, 터프한 느낌이 들고요. 내용이 전혀 짐작되지 않는 흥미진진한 그림입니다. 책을 쓰고 그리신 오소리 작가님은 서양화를 전공했고요. 놀이공원, 공장, 골프장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시대요. 이력이 특이해서 기사를 찾아봤더니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놀이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힘든 일을 경험하고 싶어서 공장 일도 했다. 또 여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으로 골프장에서 캐디를 했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너무 대단하죠? 이 이력에 더 반하면서 책을 읽었어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외딴 섬에 소녀가 있었어요. 친구들이 신부, 신랑이 돼서 섬을 다 떠나니까 주인공 소녀도 신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드레스와 노를 하나를 주면서 말하죠. “너는 이제 소녀가 아니라 신부구나.” 보면 드레스가 특이하죠? 보통 드레스라면 화려하고, 꽃이 달리고, 광택도 나는데 이 드레스는 레이스도 하나 없고, 오히려 약간 헤진 느낌이에요. 신부가 된 소녀는 이 드레스를 입고 부모님이 준 노를 가지고 떠나죠. 저는 이 노가 흔히 신부가 결혼할 때 가지고 가는 ‘열쇠’의 비유라고도 생각했어요.
섬을 떠나기 위해 배를 구해보지만 실패하고, 산으로 가보지만 일이 잘 안 풀리는데요. 산에서 내려오던 신부는 늪에 빠진 사냥꾼을 발견합니다. 사냥꾼을 구하려고 주위를 살피는데 사냥꾼은 신부에게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왜 날 구해주지 않느냐고, 당신에겐 기다란 노가 있잖느냐고 말하죠. 신부는 눈을 반짝이며 “오, 당신은 천재예요!”라고 한 뒤 사냥꾼을 구해요. 이 부분 그림이 정말 좋은데요. 저는 이 그림을 출력해서 걸어놓고 싶을 정도예요. 드레스 어깨 뽕은 더 커졌어요.(웃음) 이후 소녀는 노를 이용해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왜 하필 노였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마 세상을 향해 ‘No!’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의 잣대를 마주할 때 이 신부의 단호하고 결연한 표정과 튼튼한 드레스를 떠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맨 얼라이브』
토머스 페이지 맥비 저/김승욱 역 | 북트리거
27회 람다문학상 수상작이에요. 람다문학상은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에 수여되는 상이라고 하는데요. 이 책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토머스 페이지 맥비의 에세이입니다. 읽는 내내 어려운 쓰기였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더불어 읽어 내기 자체도 어려웠던 글이었어요.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무거워서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는데요. 우선 글이 아주 조심스러워요. 어떤 폭행을 당하거나 한심한 편견의 시선을 받을 때에도 맥비는 그들에 대해 말하기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려고 애쓰거든요. 이것은 남을 함부로 얘기하지 않겠다는 태도이기도 하고, 나에 대해 더 집중하려는 태도이기도 하죠. 엄청난 용기와 굳건한 의지가 엿보이는 글들입니다.
맥비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요.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지만 어린 맥비는 직감적으로 아버지가 떠나거나 구속될 경우 어머니가 어떨지, 집의 상황이 어떨지를 이해하고 경찰이 왔을 때 아버지가 구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요. 그러다 독립해서 아버지와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살죠. 한편 성인이 된 어느 날 맥비는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어요. 맥비의 파트너는 왜 굳이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느냐고 반문하는데요. 거기에 맥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볼 때 그 둘은 그냥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야. 하지만 내가 지금 화를 내거나 겁에 질렸다면 그걸 깨닫지 못하겠지. 그러다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서 지나치게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야.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인간으로 보면, 내게 위협이 되지 못해.
책을 읽는데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한채윤 작가님의 커밍아웃에 관한 글이 떠올랐어요. “커밍아웃 후에 가족과 단절되거나 폭력을 겪거나 해고, 사퇴 권유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그 개인의 커밍아웃 실패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의 실패다.”라는 내용인데요.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위치를 가늠하게 됐고요. 우리가 이 사회의 실패를 어떻게 이해하고, 나아갈지 깊이 고민해보게 됐습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이 세상에 어린이가 100명이라면』
크리스토프 드뢰서 글 / 노라 코에넨베르크 그림 / 강민경 역 | 청어람아이(청어람미디어)
이 책은 장르를 모르겠어요. 그림책도 아니고, 이야기책도 아니고, 청소년 도서도 아니고, 어른이 읽는 책도 아닌 모호한 책인데요. 읽을수록 매력적인 책입니다. 이 제목을 듣고 떠올리는 책이 있을 거예요.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책이 있죠.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의 책이에요. ‘유니세프’ 등에 있는 정보를 토대로 100명의 어린이가 지구에 산다면 그 중 몇 명은 어떤 삶을 살고, 몇 명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인포그래픽 책이기도 한 거죠. 그런데 이 책이 초등학교 3-4학년이 읽을 책으로 분류가 되어 있더라고요. 3-4학년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책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문제의식도 묵직하고요. 가령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어린이의 숫자가 나온 뒤에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를 이야기해요. 누구라도 읽으면 사고의 반경이 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00명의 어린이 중 남자 어린이는 52명이고요. 한국 어린이는 1명이래요. 가장 많은 어린이가 사는 대륙은 아시아인데요. 오세아니아 대륙에는 1명밖에 없다고 해요. 이 외에 종교, 풍속 등을 짚어주기 때문에 그냥 읽고 흘려 보낼 수가 없어요. 그림만 보는 것도 좋지만 내용을 보면 자꾸 ‘왜?’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저는 읽으면서 계속 검색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점이 참 좋았어요. 가령 15명은 바닷가에 산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기후 변화 때문에 수온이 따뜻해지고, 바닷물이 늘어난다는 내용도 함께 나오는데요. 그렇게 되면 무엇이 문제인지까지 얘기를 해주니까 허투루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꼼꼼하게, 여러 번 읽었던 책입니다.
이 책을 작년 말에 읽었어요. 책을 읽고서 어린이 단체에 소정의 기부를 시작했어요. 어린이에게 이렇게나 많은 자극을 받고, 어린이로 말미암아 쓴 글도 많기 때문에 어린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거거든요. 물론 어린이 책을 많이 사서 읽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은 제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생각하다가 실천하게 된 거예요. 이런 책이 있어서 정말 기뻐요.
그런데 이렇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깨달은 점이 있어요. 놀이, 스포츠, 취미 등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보다 기아, 전쟁, 빈곤 등 부정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훨씬 쉬웠답니다. 도움이 절실한 나라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야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구호단체가 애쓴 결과 덕분이지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신연선
읽고 씁니다.
현준맘
2020.03.12
'어떤, 책임'....다른 시선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영민함을 얻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세상에 어린이가 100명이라면]은 꼭 읽어보고 초등생 아들과 함께 다시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