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작가(왼쪽)와 임경선 작가
편지도 나누지 않는 시대에 ‘교환 일기’라니. 이 어려운 일을 요조, 임경선 작가가 해냈다. 출발은 문자 대화였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요조, 임경선은 트위터,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서로의 일상 보고부터 이슈 논쟁까지, 쉴 틈 없이 대화를 나눴다. 너무나 재밌지만 때때로 한심해보이기까지 했던 두 사람의 대화. 결국 ‘고효율 작업자’ 임경선은 요조에게 제안한다. “우리 안 되겠다. 차라리 이걸로 영양가 있는 뭐라도 만들자.” 이렇게 네이버 오디오 클립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 일기’가 탄생했고, 이 방송에서 나눈 대화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로 묶였다.
여성 독자만 읽어야 할 것 같은 책, 그러나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소재는 굉장히 폭넓다. 곁에 있는 여성의 마음이 좀체 이해가 안 되는 남성 독자가 있다면, 필독해도 좋을 책이다. 글쓰고 노래하며 제주에서 ‘책방 무사’를 운영하는 뮤지션 요조와 다수의 에세이, 소설을 펴낸 전업 작가 임경선. 두 사람이 ‘아는 사이’에서 ‘친구’가 된 사연도 흥미진진하다. ‘나라는 존재, 타인, 책임, 관계, 자유, 솔직, 즐거움’ 중 하나라도 꽂혀 있는 단어가 있다면 책장을 펼쳐 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열었다가 순간 몰입하고 책을 읽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
책이 나온 지, 한 달이 좀 지났어요. 평소 공저를 쓸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던 임경선 작가님과 임 작가님과 교환일기를 쓰게 된 요조 작가님, 책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시는 요즘인가요?
임경선 사실 처음에는 저희들끼리 교환일기를 네이버 오디오클립 방송을 통해 주고받는 과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즐거웠던 터라 솔직히 책으로 묶어내는 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욕심이 있진 않았어요. 기록으로 남겨두면 최소한 좋은 추억이 되겠다는 정도랄까요? 한데 막상 책이 출간되고 나니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 있더라고요. 독자 분들의 공감과 즐거움이 전해져오니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네, 결과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 책으로 묶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조 책이든 음반이든 발표해버리고 하면 아쉬움이랄지 후회랄지 꼭 몇 번은 겪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이번 책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네요. 이 책에 대해서 떠올릴 때마다 언제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웃음)
혼자 써온 책과 달리, 좋았던 점도 있고 힘들었던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요조 힘든 것도 좋은 것도 다 ‘우리’ 라는 개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못하는 것도 ‘우리’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는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두 배로 신경을 곤두세웠는데요. 지금은 좋은 점을 톡톡히 누리는 것 같아요. 책 관련 행사를 다닐 때 늘 두 사람이 (편집자까지 세 사람) 다니니까 일한다기보다 노는 기분이 더 많이 들고 외로움도 덜하고요. 내가 좀 말을 못해도 상대방이 메꿔주겠지 하는 여유도 있고요.
임경선 누군가와 함께 책을 내는 것도 저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고, 출판사와 편집자도 처음 호흡을 맞춘 셈인데, 힘든 것은 없었습니다. 요조와는 이미 여섯 차례 벼룩시장을 함께 분기별로 연 적이 있어서 ‘일하는 방식’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또한 저의 리드에 요조가 잘 맞춰주고 따라와주었어요. 문학동네 이연실 편집자의 경우, 워낙 일을 잘하신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에 일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좋았던 점은, 이 책을 만드는 동안 담당 편집자, 요조, 저, 이렇게 셋이 긴밀히 머리를 맞대고 이러쿵저러쿵 시시콜콜 협의하는 과정 자체가 그냥 너무 재미있고 웃기고, 마치 동아리를 주제로 한 청춘 만화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요조 작가
요조 작가님은 이 책에 뒤이어 『아무튼, 떡볶이』 도 출간됐어요. 한 해에 두 권을 쓰시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두 권을 쓰면서 마음가짐이 달랐나요?
아무래도 『아무튼, 떡볶이』 쪽이 마음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는 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경력과 실력이 우월한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일이라 아무래도 마음에 무게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아무튼, 떡볶이』를 쓰면서는 그런 부분에서 홀가분함이 있었죠. 만약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가 잘 안 팔렸으면 전 잠도 못 잤을 거예요. 『아무튼, 떡볶이』 가 잘 안 팔리면 속상하겠지만 그래도 잠은 잘 잤을 거고요. 다행히 둘 다 잘 팔리고 있어서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있습니다.
두 분은 독자 리뷰를 찾아보시는 편인가요?
임경선 리뷰를 찾아보거나 참고하지 않는 편이에요. 대신 북 토크에서 들은 리뷰 중에 좋았던 것을 말씀드리자면, “제목에 ‘여자’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젠더로서의 ‘여성’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보다는 ‘인간 전체’를 아우르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이야기라서 참 좋았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조 얼마 전 북토크 때 들었던 리뷰였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밝히는 것이 좀 쑥스럽습니다. 다만 제가 글을 쓰면서 ‘이렇게 읽어주었으면' ‘이렇게 나를 칭찬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저의 내심을 정확하게 들킨 리뷰였어요.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그 리뷰를 말씀해주시는 분 뒤로 후광이 비치더군요. 이해받고 싶은 대로 이해받는 영광을 그때 누렸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제목이 굉장히 폭넓게 다가왔는데요.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왠지 임경선 작가님이 정하지 않았을까, 짐작했어요.
임경선 제목에 대한 고민을 오래도록 편집자와 함께 셋이 했어요. 아마 각자 백 개 정도 제목안을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공유했는데요, 어느 날 제가 생각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가 돌연 채택이 되었습니다. 한편 이 책의 콘셉트, 혹은 메인 카피라 할 수 있는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은 요조의 멋진 작품입니다.
카피도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제목과 부제를 두 저자님이 함께 만드신 거네요? 공저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표지에 관한 질문도 드려 볼게요. 임 작가님은 표지 디자인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자 분 중 한 분이시니까요.
임경선 표지 디자인 역시도 편집자와 우리 셋이서 수백 가지의 표지 이미지를 각자 찾아와서 공유하고 갑을론박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생각을 원점으로 돌려, ‘심플하게’ 가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표지의 이미지보다 우리 두 사람의 글에 더 무게 중심을 싣고 싶기도 했고요.
임경선 작가님은 함께 책을 작업하는 분들을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듯해요. 또 다들 작가님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프로페셔널하시다고요. 살아오면서, 작가님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확고해지나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이 궁금합니다.
임경선 (웃음) 제가요? 고맙습니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편 호불호 인간 유형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정하고 솔직하고 자기 일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거기에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유머 감각이 더한다면 금상첨화고요. 싫어하는 사람은 비겁하고 변명하고 남 탓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뜨끔했던 건 24쪽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어떤 솔직함은 못됐다는 거 언니도 아시죠.” 솔직함에 관한 가장, 적확한 마음과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서 인상적이었어요.
요조 사실 저는 솔직함보다도 더 우위에 두는 것이 '그 의도'입니다. 선한 의도를 위해 얼마든지 솔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무조건 솔직한 게 좋은 거야, 라는 태도로 자기 속내에 있는 말을 듣는 사람 생각 없이 거침없이 꺼내는 사람을 좀 힘들어 합니다. 저 자신도 타인에게 굳이 솔직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의도’에 집중하려고 하고 ‘의도'에 맞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29쪽을 보면, 요조 작가님의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하는 것” 리스트가 나옵니다. 그런데 임경선 작가님은 이미 이것들은 안 하고 계신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하는 일들은 정말 없나요?
임경선 올해(2019년) 초, 제사 지내는 것을 안 하기로 협의를 마친 바 있어, 이제는 ‘하기 싫지만, 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기 싫지만, 하고 있고, 하고 나면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은 것’ 하나는 있습니다. 바로 운동(피트니스)입니다. 오로지 글을 쓸 수 있는 체력을 갖기 위해 하고 있습니다.
혹시 너무 괜찮은 남자 후배가 “선배, 나랑도 이런 책 쓰자”고 한다면 쓰실 건가요?
임경선 그 남자 후배가 괜찮을수록, 그 남자 후배를 좋아할수록, 같이 책을 안 쓸 것 같습니다. 그냥 같이 놀기만 하면 안 되나요?
임경선 작가
다 봐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거야
요조 작가님에 대한 칭찬으로 넘어가볼게요. 요조 님은 최근 『아무튼, 떡볶이』를 쓰시기도 했는데, 역시 글을 잘 쓰시더라고요. 요조 작가님만의 문학성도 느껴졌고요.
임경선 요조의 글은 표현이 독창적이고 문학적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우면서도 서늘하고, 서늘한 가운데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가운데 예리하고, 예리한 가운데 허를 찌르는 유머를 구사합니다. 제가 이번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조의 글은 ‘피와 땀’입니다. 제가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요조가 그에 반응하는 글을 썼지요. 그 중 일부를 발췌해 드릴게요.
“사랑에 빠진 상대와 눈을 맞추고, 키스를 하고, 각자의 손이 서로의 몸을 내 몸처럼 절박하게 쓰다듬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애와 섹스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될 때면 저는 내 몸 안에서 무언가가 배 아래로, 더 아래로 우루루 몰려가는 것을 느껴요. 아마도 그것은 피이겠지요. 남자의 몸 안에 있는 피도 그 순간 아래로 아래로 몰려가서는 어떤 기관을 발기하게 만들고, 동시에 피는 볼로도, 입술로도, 손끝으로도 몰려가 우리를 더욱 붉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 이 피들은 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나서 여기저기로 몰려다니는 것일까. 피의 활약을 입고 붉어진 두 사람이 사랑과 장난기로 충만한 섹스에 열중하느라 모든 것을 잠깐 잊어버리는 사이, 그들의 표면에서는 땀이 흘러요. 재미있지요. 피땀 흘려서 고생과 수고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신나고 아름다운 일도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해요.”
글을 쓸 때, ‘최소한 이것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것들이 있나요?
요조 지키는 법칙까지는 없습니다만 바라는 점은 몇 가지가 있지요. 잘 읽혔으면 한다. 재미있었으면 한다. 아름다웠으면 한다.
임경선 작가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요조 단호함이 아닐까 싶어요. 에세이에서 그것이 아주 두드러지지요. 속이 다 시원한 단호. 누가 뭐래도 난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그 오만이 참 멋지고 근사합니다. 그런가 하면 소설에서는 또 다른 뭉근한 문체를 구사하는데 그 안에서도 단호함이 빛나고 있어요. 흐리멍텅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나요?
요조 하나만 꼽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하나만 생각나는 문장을 말해보자면 이거예요.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상대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아. 그냥 자연스럽게 노는 것 같지만, 실은 스텝이 엉키지 않도록 볼 거 다 봐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거야.”
임경선 작가님이 일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셨잖아요. 가장 감탄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조 게으르지 않다는 점이에요. 지금 이 인터뷰도 아마 임경선 작가님은 바로 질문지 체크하고 준비 끝냈을 거예요. 언니는 늘 그런 식이에요. 마감까지 질질 끌지 않고 바로바로 빨리빨리 해버려요. 그러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 졸일 일이 없지요.
자, 이번엔 편집자님 칭찬으로 넘어가 볼게요. 이연실 편집자님은 김훈, 하정우, 이슬아 등 베스트셀러를 많이 편집한 분이시잖아요? 저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책을 만드시는 분으로 알고 있어요. 편집자님과의 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그리고 편집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작업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임경선 일단 책과 편집 일과 저자를 너무나 좋아하고 아껴 주시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재미있고 웃기기까지 하니 함께 일하는 게 너무 즐겁고요. 작업하는 방식에 있어서 타 저자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책의 콘셉트, 제목, 디자인, 마케팅 등에 매우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함께 일하는 편이라는 점입니다. 반대로 원고에 대한 편집자의 수정요청이나 전문가로서의 식견은 전적으로 수용합니다. 다시 말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게 아닐까 조심하고 몸을 사린 후, 나중에 불평하기보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의견에 관해서는 완전한 신뢰를 기반으로 열린 귀와 입을 가지려고 합니다. 소통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랜 직장생활 경험이 도움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임경선 작가님의 전작 『자유로울 것』 도 사랑을 많이 받았던 에세이입니다. ‘~ 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또 한 권의 책을 쓴다면, 어떤 삶의 태도가 있을까요?
임경선 만약 그러한 책을 또 한 권 써야만 한다면 아마도 <섬세할 것>을 고려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자책하는 걸 보게 되는데요, 사실 ‘예민함’이라는 성향이 잘 관리가 되면 ‘섬세함’이 되니깐요. 그리고 지금은 과다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각자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섬세하게 가려낼 수 있어야 하고요. 갈수록 ‘섬세함’이 어른스럽고 이로운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플함’도 ‘섬세함’을 관통해야 얻을 수 있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고요.
행복하지 않은 관계에 시간을 쏟지 마세요
요조 작가님이 118쪽 ‘난 이런 사람들이 싫어요’라는 글에서 뒷담화를 좋아하신다고 쓰셨어요. 그리고 타인이 내 욕을 해도 별로 화가 안 난다고요. 저도 비슷한데요. 뒷담화는 전해질까 봐 무서운 거잖아요. 그럼 신뢰하는 분들과만 뒷담화를 하시는 것인지요? 뒷담화를 현명하게 하는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요조 뒷담화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뒷담화의 주인공이 행여나 내용을 알게 되더라도 심하게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하는 것이 좋고. 설사 이 뒷담화가 절대 전달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더라도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는데요. 어쨌든 뒷담화라는 것도 독이라, 너무 심하게 말하고 나면 말한 당사자의 마음도 굉장히 안 좋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내뱉은 욕에 내가 상처를(충격을) 받는 기분이랄까요. ‘뒷담화를 현명하게 하는 노하우'를 알려달라시기에 말씀드려보자면 저는 정말 친한 사람들하고만 뒷담화를 나누고요,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너무 나갔다 싶으면 서둘러 좋게 마무리합니다. ‘그래두 좋은 사람이야.’ ‘그래도 난 그 사람이 싫진 않아.’ 이런 식으로요. 구차하지요? 제가 좀 구차한 데가 있답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자주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임경선 우선 공적인 인간관계와 사적인 인간관계로 나누시고요, 공적인 인간관계(회사 동료 등)에 대해서는 최대한 마음보다 머리를 써서 공존을 위한 최적의 타협안을 강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반면 사적인 관계(가족, 친구, 애인)에서는 내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뭔가 좋지 않으면 그 분들을 죄책감 없이 다 놔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인간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요.
어른으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임경선 수치심을 가지는 일이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뻔뻔해지고 얼굴이 두꺼워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를 인지하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기 규율을 섬세하게 다져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요조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할아버지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문득 두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네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임경선 난임의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기로 한 일입니다.
요조 조깅을 시작한 것. 저는 지금 PT를 받고 있고, 요가도 하고 있는데요. 러너에 적합한 몸이 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아직 정말 초짜이고 무릎과 발목이 좋은 편도 아니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꼭 마라톤에 출전해보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두 분은 SNS를 잘 활용하는 편에 속하세요. 특히 요조 작가님은 신요조, 요조, 신수진 등 다양한 이름으로 SNS에 글을 올리시는데, 세 이름의 정체성이 각각 다른가요?
요조 크게 다르진 않지만 미묘하고 분명하게 다른 느낌입니다. ‘요조' 라는 이름은 굉장히 공식적인 느낌이고, ‘신요조' 는 제가 저를 공식적으로 불러야 할 때 자주 쓰는 편이고 ‘신수진' 은 정말 모든 수식을 걷어낸 제 알몸 같은 단어이죠. 그래서 정말 제가 내심 좋아하고 있던 사람이 저를 본명으로 불러주면 뮤지션이 아니라, 작가가 아니라, 그냥 저 자체를 바라봐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강아지처럼 좋아합니다. 반대로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애가 뜬금없이 저를 ‘요조' 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저는 그게 서운해서 데면데면하게 굴었던 적도 있어요.
하하, 저라도 왠지 서운했을 것 같아요. 최근 <한겨레>에 연재했던 인터뷰 연재가 끝났어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고 있지만, 종이신문의 인터뷰어가 되신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인터뷰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요?
요조 질문을 ‘잘'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했고요. 그 점에 대해 한계를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막연한 스몰 토크가 아니라 이 사람의 위대한 지점을 제가 대중 앞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제가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럼에도 일년간 너무 값진 경험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저의 인터뷰이들과 한겨레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를 잘 읽은 독자가 있다면, 임경선의 또 다른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임경선 (이 책과 이어서 읽으면 좋을 책) 이번 책에서 읽으신 저의 생각이 좋으셨다면 산문집 『태도에 관하여』 를 읽으시면 더 입체적으로 ‘즐독’하실 것 같고요, 겨울이라는 계절의 특성에 맞게 따스한 독서 체험을 원하시면 소설집 『곁에 남아 있는 사람』 과 산문집 『다정한 구원』 을 추천드립니다.
임경선 작가님은 후속 장편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시라고요. 요조 작가님의 후속작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요조 네? 뭐라고요? 안 들려요.
독자로서 바라는 점은 요조 작가님이 시를 쓰셨으면 좋겠어요. 시집 출간 계획은 영영 없나요?
요조 뭐라고요?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안 들리죠?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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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요조, 임경선 저 | 문학동네
그녀들은 솔직과 가식에 대하여, 어정쩡한 유명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강연하고 글쓰고 노래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어린 시절, 자물쇠 달린 하드커버 노트에 비밀스럽게 주고받던 교환일기의 추억이 두 여성 작가의 대화에서 되살아난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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