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가 바라본 세상
U2의 음악과 사회 방향은 어느 정치 체제나 경제 이데올로기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 다만 현실정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글ㆍ사진 이즘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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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8일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록밴드 U2의 내한 공연이 실현되었다. U2는 독창적인 사운드와 진솔한 가사로 대중적 성공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우리 시대 최고의 밴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외국 밴드의 내한 공연에 국내 많은 언론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난 40년 동안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이들의 두드러진 활동과 업적 때문이다. 이로 인해 U2의 리더, 보노(Bono)는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며 뮤지션으로서는 특별한 영향력을 펼쳐 왔다. 이들의 방한이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많은 이들이 기대한다.

 

U2의 음악 여정은 유럽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된다. 1976년 당시 14세였던 래리 뮬린 주니어(Larry Mullen Jr.)가 마운트 템플 학교 게시판에 밴드 맴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보노(본명 Paul Hewson), 에지(David Evans), 아담(Adam Clayton)과 래리가 '피드백'(Feedback)이란 그룹명을 정하고 방과 후와 주말에 맹연습에 돌입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과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더블린 소년들의 자기 발견과 음악적 소명은 1집 (1980)와 2집 (1981)의 수록된 가사에 잘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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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가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들의 세 번째 앨범 (1983)부터이다. 이 앨범은 시종일관 분노 가득한 비판의 어조로 가득하다. 제목이 말해주듯 그 타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전쟁'이며, 그 폭력으로 인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담아냈다. 타이틀곡 'Sunday Bloody Sunday'는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 델리(Delly)에서 평화적 시위를 하던 아일랜드인들 28명이 영국군의 발포로 잔혹하게 희생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이 사건을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라고 부른다.

 

아이들 발밑에 뒹구는 깨진 병들.

막다른 골목에 쓰러진 시체들, 전쟁이 시작 되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승자는 누구일까?

우리 가슴에 구멍을 파는 아픔

어머니와 아이들과 형제와 자매들을 찢어놓았지.

일요일 피의 일요일

우리는 이제 면역이 생겼나봐.

지금도 이런 희생은 계속되고 있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죽어가지.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 Sunday Bloody Sunday -

 

그 날을 담아낸 방송엔 총탄이 발사되는 와중에 가톨릭 주교 에드워드 달리(Edward Daly)가 자신의 하얀 손수건을 흔들면서 부상자들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보노는 그 하얀 손수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눈에 비친 손수건은 항복의 백기라기보다 발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용기 있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어떤 명분과 이념도 생명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U2는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흰 깃발을 휘날리며 청중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U2의 공연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상징적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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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U2의 멤버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쟁과 분열로 인한 갈등 상황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었다. U2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현실을 고발하며 듣는 이들의 양심을 일깨운다. 'Seconds'에서는 핵무기의 비인격적 파괴성과 국가 이기주의에 의한 핵 확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New Year's Day'는 폴란드 정부가 자유노조운동(Solidarno) 지도자 바웬사(Lech Walesa)를 투옥한 것에 반대하며 그의 석방을 요청하는 곡이다. 'Like a Song'은 둘로 쪼개진 이익집단의 탐욕으로 인한 전쟁에 희생되는 '이름 없는' 젊은 세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Refugee'는 정치적 이유로 난민이 된 한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다룬다.

 

우린 매일 전쟁과 혁명 속에 살고 있지.

소비에트, 독일, 런던, 뉴욕, 베이징!

배후를 조종하는 앞잡이들이 있어.

'굿바이'하며 작별하는 데 불과 몇 초면 돼.

플러그를 당기고 버튼을 눌러. 그렇게 굿바이.

- Seconds -

 

사람들은 지금이 황금시대라 하지만

황금은 바로 전쟁의 이유야.

- New Year's Day -

 

매 맞고 찢겨진 이름 없는 세대,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지. 그냥 아무것도 없어.

분노의 말들은 싸움을 막을 수 없지

서로 다투는 두 세력은 절대 옳은 일을 할 수 없어.

- Like a Song -

 

전쟁, 전쟁이야. 그녀는 난민이 되었지.

그녀의 엄마는 넌 언젠가 미국에서 살게 될거라 말했지.

이른 아침 그녀는 배를 기다리고 있어.

전쟁, 전쟁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터로 나갔어.

그녀의 엄마는 아빠가 곧 돌아올거라 말했지

늦은 저녁 그녀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 Refugee -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비극은 곧바로 다른 지역의 고통으로 전이되어 공감을 부른다. “깨진 병들과 쓰러진 시체들”은 이후에도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쿠웨이트와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앨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40'는 다음 가사로 마무리된다. “얼마나 오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밥 딜런이 'Blowing in the Wind'에서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을 깨닫게 될까?”

 

“이 노래는 저항노래(rebel song)가 아닙니다!” 보노가 공연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부를 때 자주 외치는 말이다. 그는 이 노래가 영국군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아일랜드의 정치적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한 무장 조직 IRA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대한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IRA의 강경한 무력 도발의 원인이 되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의 원인이기에 한 편이 그 반복적 복수의 사슬을 끊는 것이 평화의 길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U2가 노래에서 말하는 '용기 있는 선택'이며 '진정한 전쟁'(real battle)이고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이다.

 

누가 너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을까?

나도 너의 눈물을 씻어줄게.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지.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를 성취하자.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

- Sunday Bloody Sunday -

 

이 노래가 말하는 '진정한 전쟁'은 비폭력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 상징물로 그가 공연에서 사용한 것이 '백기'였다. 이 노래는 폭력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과 예수가 화해의 피를 흘린 '부활절 일요일'(Easter Sunday)을 대비하며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인류 역사에서 나온 최고의 사상은 바로 '은혜'(grace)이입니다.

 

이것이 내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입니다. '응보'(karma)가 궁극적 판단이라면 난 희망이 없습니다. 복음은 응보가 아니라 은혜입니다.”U2는 내한공연에서 'Sunday bloody Sunday'를 오프닝 곡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피의 일요일이 아일랜드뿐 아니라 한국인의 상처임을 알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피의 일요일! 그 날 이후 이 아픈 전쟁의 상처는 우리들의 기억과 마음에 여전히 깊게 새겨져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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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음악과 사회 방향은 어느 정치 체제나 경제 이데올로기의 입장에 서지 않는다. 다만 현실정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인권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한 1980년대 중반부터 U2는 대규모 자선 공연에 참여하면서 “록의 양심의 대변자”로 불리게 되었다. 봅 겔도프(Bob Geldorf)가 주도한 에티오피아 기아 난민 구호 프로젝트인 'Band Aid'와 'Live Aid' 캠페인은 그 시작이었고, 아일랜드 실업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 'Self Aid,' 남아공 인종차별법의 폐지를 촉구하는 'Sun City' 공연, 성차별주의를 반대하는 'Rock against Sexism' 공연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1984년부터 U2는 소위 '아메리카 3부작'이라 불리는 세 앨범을 연속해서 발표했다. U2의 눈에 비친 미국은 로큰롤 고향이며 발전된 문명을 이룬 곳이지만 물질만능주의와 패권의식으로 구원의 힘을 잃어버린 모순의 땅이었다. 미국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이중적 이미지는 많은 아티스트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왔다. U2는 (1984)와 (1988)에서 자신이 존경한 미국의 인물들과 대중음악 전통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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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랑의 이름으로 왔다네...

4월 4일 이른 아침 멤피스의 하늘에 총성이 울렸지.

마침내 자유다! 그들은 당신의 목숨은 앗아갔지.

그러나 당신의 자부심은 빼앗지 못했어.

사랑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

사랑의 이름 위에 그 무엇이 있으랴.

- Pride(in the name of Love) -

 

이 노래에 등장하는 '한 사람'은 마틴 루터 킹(Martin-Luther King Jr.) 목사이다. U2는 그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졌고, 이 노래와 또 다른 곡 'MLK'를 그의 영전에 바쳤다. 'Pride'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에 대한 울분과 추모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면, 'MLK'는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에서 또한 그의 평생 품었던 간절한 평화와 자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2006년 오바마(Obama)가 흑인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역사적 날에 U2는 백악관에 초대되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다름 아닌 'Pride'였다.

 

1984년 U2는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시작하며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니엘 라누아(Daniel Lanois)를 프로듀서로 영입하면서 음악적 변화를 도모하였다. 이노는 신디사이저를 통해 주 선율 이면에 흐르는 배경음을 통해 공간감을 불어넣는 획기적인 방식을 고안해냈다. '앰비언트'(Ambient)라고 불리는 이 연주 방식은 영롱한 딜레이 사운드와 스트레이트한 록큰롤을 표방한 U2의 음악에 안정감과 화사한 세련미를 불어 넣었다. 이 만남은 U2의 개성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메시지의 경건함을 극대화한 최고의 조합이었다. 의 타이틀곡 'Where the street has no name'의 인트로는 절망을 넘어 비춰오는 희망의 여명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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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대중음악 역사에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이다. 이 앨범의 대 성공으로 U2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밴드로 우뚝 서게 된다. 무려 2,5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고 빌보드 앨범 차트 9주 연속 1위, 두 곡이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과 '베스트 록 퍼포먼스'(Best Rock Performance) 상을 수상하였고, 록 밴드로는 세 번째로 시사주간지 Times 표지를 장식했다.

 

이 앨범의 또 다른 타이틀은 'The Two Americas'였다. 이 앨범에서 U2는 미국을 '사막'으로 비유하며 성경의 메타포를 이용해 풍부한 영감으로 내면화하고 있다. U2에게 미국은 “공간이며 동시에 철학이다.” '사막'은 이 앨범을 관통하는 중심 이미지이다. 죠슈아 트리는 황량한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일종으로 희망과 생명 그리고 종교적 구원을 상징한다. 이 앨범에 묘사된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먼지 구름과 산성비로 가득한, 황폐해져버린”사막이다. U2는 이 앨범에서 11곡의 수록곡을 통해 '공간'과 그 안의 인간의 삶의 관계성을 풍성한 영감으로 펼쳐 놓았다. 이 앨범의 수록곡, 'In God's Country'에서 U2는 '신의 나라'를 꿈꾸던 미국의 이중성을 고발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사막의 하늘, 그 사막 하늘 밑의 꿈.

강은 흐르지만 곧 말라 버릴거야.

우리는 새로운 꿈이 필요해

그녀는 자유, 그녀가 곧 나를 구원하러 올 거야

희망, 믿음, 그리고 그녀의 허영.

가장 귀한 선물은 금이겠지.

신의 나라에서, 잠은 마역처럼 찾아오지.

신의 나라에서, 슬픔은 십자가를 짓밟고 있지.

- In God's Country -

 

풍요로운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그 가치를 잃었으며 황량한 사막에서 이제는 새로운 꿈이 필요하다. 미국은 자유를 외치며 세계를 돕는다고 나서지만 허울 좋은 희망의 가치는 단지 미국의 허영일 뿐이다.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결국 돈이다. 또 다른 곡, 'Bullet the Blue Sky'에서 U2는 1980년대 북중미 국가에 행사된 미국의 강압적 개입에 분노를 터뜨리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악마의 씨를 뿌리고 화염을 일으킨다.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보라. 솟구치는 불꽃을...

가시덤불의 장미처럼, 로열 플래시의 모든 색깔처럼

그는 달러 지폐를 낙하시키고 있다...

벽을 통해 우린 이 도시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미국이 밖에 있다. 미국이 밖에 있다.

- Bullet the Blue Sky -

 

1989년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기록한 저서 <아메리카>에서 미국이란 장소 안의 허상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며, 그 문화 자체를 '사막'에 비유하였다. 그는 뉴욕은 초현실주의적 텍스트와 이미지를 '수직적으로' 구현한 허상이라면, 캘리포니아는 일종의 자기증식 과정 속에 '수평적으로' 확장된 '사막'으로 그 안의 거주자들을 “외국인과 좀비와 관광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하며 “희망 없는 낙원” 미국의 폐부를 저격한다.

 

이는 같은 프랑스인으로서 1831년 미국을 여행하며 미국식 공화정과 정교분리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큰 감동을 받아 미국을 새로운 희망의 땅으로 묘사한 알렉시스 토그빌(Alexis de Tocqueville)의 보고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보드리아르가 이런 희망의 땅이 20세기를 거치며 사막으로 황폐해진 풍경을 U2는 1987년 이 앨범을 통해 먼저 구현해내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가 미국을 진정성과 의미가 사라진 이미지만 남은 허상으로 바라보았다면, U2는 그 사막의 절망 속에 새로운 사유를 시작한다. 그 사막은 현실의 모순과 절망에서 신을 의지하고 구원의 희망을 꿈꾸는 장소이다. 보노는 이 사막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막을 그저 황량한 곳이라고만 생각하죠.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사막은 아주 긍정적인 이미지입니다. 사막은 어떤 일이든지 시작할 수 있는 아주 깨끗한 캔버스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사막은 아주 상반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U2가 바라본 미국 역시 그런 이중적 애정과 분노가, 절망과 희망의 공존을 음악 속에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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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에게 미국은 '마음의 땅'(Heartland)이기도 하다. 보노는 1987년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이 특히 중미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악몽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미국은 농부와 인민의 황폐화를 자행하고 있죠. 그러나 난 미국 시민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미국은 '악몽'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꿈'입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U2가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급진적 체제 변혁이 아닌 온건한 체제 수정을 모색하는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비판을 미국인들은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바로 이 점이 보수적인 그래미상이나 주류 언론이 지속적으로 U2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호의를 보여준 이유일 것이다.

 

“당신과 함께이든, 당신 없이든, 난 못견딜 것 같아요.” U2의 대표곡 'With or without you'는 언뜻 남녀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이 노래는 삶의 실존 속에 지속될 수밖에 없는 회의와 진리 사이의 갈등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그 고뇌의 해답이나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U2의 노래는 인간 실존의 부조리와 믿음과 회의 사이의 고뇌를 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이다. 이 노래는 가사와 음악 모두에서 가스펠송을 표방한 U2의 대표곡이며 빌보트 차트 1위에 올랐다.

 

나는 높은 산을 오르고, 저 들판을 달려 왔습니다.

오직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하여.

나는 달리고, 뒹굴며, 이 도시의 담을 해메며 다녔습니다.

오직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서.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것들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장차 임할 왕국을 믿습니다.

그 때에 모든 인종들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달려갑니다.

당신은 모든 속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죠. 내 부끄러움의 십자가를.

당신은 내 믿음을 아시지요.

그러나 나는 내가 구하는 것들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

 

이 노래는 상투적인 신앙고백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그 제목이 말해주듯 “갈구하는 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회의를 말하고 있다. 이는 일상 속에 신의 존재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의 믿음을 말한다. 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나는 계속 달려갑니다.”(I'm still running)라는 가사에 있다. 실상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I still haven't found)는 부정적 고백은 그래서 난 포기하고 말았다는 허무와 좌절이 아니라,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진리를 향한 여정을 계속 달려가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 희망은 황폐한 사막 너머 서로 간의 구별이 사라진 “이름 없는 거리”를 향하고 있다. 바로 그 곳이 U2가 바라보는 약속의 땅이며 구원의 도시이다.

 

난 달아나고 싶어, 숨어버릴테야

나를 가두는 이 벽을 무너뜨리고 싶어

난 손을 뻗어 희망의 불꽃을 만지고 싶어

이름 없는 거리에서.

내 얼굴을 비추는 햇빛을 느끼고 싶어

그 곳에서 먼지구름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

나는 산성비를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해

이름 없는 거리에서이 도시는 홍수가 범람하고 우리 사랑은 녹이 슬었지

세찬 바람은 우리를 때리고 먼지 속에 쓰러지고 말았어

내가 이제 보여줄게 이 사막 너머 있는 세상을

이름 없는 거리에서

내가 그 곳에 갈 때 너를 데려갈게

- Where the street has no n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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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John Lennon)이 우리를 천국과 종교 없는 세상을 '상상'(imagine)하게 한다면, U2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천국으로 세상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한 인터뷰에서 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천국이 우리가 죽으면 가는 하늘 위의 어떤 곳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 우리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라도 말이죠.”.

 

폭력과 탐욕으로 대변되는 절망적인 세계에서 이들은 평화의 세상을 꿈꾼다. 그 구원의 희망은 이들에게 응보가 아닌 신의 은총이며 그 상징이 사막에서도 꿋꿋하게 서있는 조슈아 트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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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대성공 이후 밴드는 중대한 전환의 기로에 서게 된다. 맴버 간의 음악적 방향에 대한 의견 충돌과 모든 것을 이룬 뒤의 목표 상실은 이전 슈퍼 밴드들이 무너져간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그런 가운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암울한 이념적 대립의 해빙 무드는 이들이 다시 한 번 서로 간의 존중과 대화 속에 길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발표된 앨범 는 화해의 상징이 된 도시 베를린에서 작업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돌파구와 변화의 시발점이 된 명반이다.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모든 팬들과 평론가들은 그들의 예상치 못한 과감한 변화에 경악했다. 스트레이트한 창법이 돋보였던 보노의 보컬은 감정 없이 낮고 건조하게 그리고 때론 뒤틀리고 찌그러진 읊조림을 반복했고, 과도한 이펙트와 전자 사운드를 장착한 에지의 기타는 분명 전작의 심플한 매력과는 달랐다. 그들의 음악은 당시 급부상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인더스트리얼 음악 트랜드를 수용한 전혀 다른 밴드로 돌아왔던 것이다. 가사 역시 이전의 진솔하고 시적인 내용과 달리 암울하고 냉소적인 어법으로 그들의 경건한(?) 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앨범 커버의 이미지도 여러 모습으로 분장한 보노의 얼굴들과 요상한 소품들의 모자이크로 디자인되어 차갑고 뒤틀린 자아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러한 그들의 파격은 그 다음해에 진행된 “Zoo TV” 월드 투어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일단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다양한 카메라 효과들을 극대화한 영상 테크놀로지의 극치였다. 수없이 쏟아내는 모호한 이미지 컷들이 스트린을 통해 현란하고 어지럽게 난무하더니, 보노는 공연 중반 “플라이” “미러볼맨” “맥피스토”라 명명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해 연기하는 비주얼 쇼킹을 보여줬던 것이다. 보노는 이런 이미지 변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감각의 과부하이다. 우리는 모든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을 착취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제 U2는 이전의 진지한 양심을 뒤로한 채 화려한 슈퍼 엔터테이너의 길을 걸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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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인상의 충격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앨범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이내 일관된 U2의 진정성이 이 파격적 앨범에도 그대로 녹아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풍부한 기독교적 사랑과 정의에 대한 수사가 넘쳐나고, 선명한 멜로디 라인도 여러 트랙에 담겨져 있다. 과거와 현재, 연속성과 불연속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U2가 갈등을 딛고 발표한 이 앨범은 그들을 “1980년대의 밴드”로 멈추지 않고 이후에도 지속적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준 변화의 산물이었다. 특히 지금까지 U2의 드라마틱한 콘서트의 원형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U2는 테크놀로지와 문명에 대한 회의를 사운드 조작과 과장된 이미지로 비판하는 이중적 전략을 활용한 것이다. 즉 이미지와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가치가 소멸되어 가는 현실을 이전의 진지함과는 달리 자조적인 기지로 대치하며 질문을 던진다.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당신을 만족시키겠어...

오 이제 그녀가 온다.

나를 더 높이 데려가줘, 더 높은 곳으로.

당신은 진짜야. 당신은 진짜야.

심지어 진짜보다 더 좋은걸.

-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

 

1990년대 부상한 음악의 새로운 흐름 가운데 일부 아티스트들은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휴머니즘 상실을 테크놀로지를 통해 비판하는 역설의 미학을 강조하였다.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메시지를 강화시키는 도구인 것이다.

 

U2는 1997년 앨범 에서도 연속적 작업의 일환으로 보다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이 앨범은 소비지상주의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맥도널드와 대형마트를 상징하는 무대와 스크린에서는 “사세요! 더 많이! 당장!”과 같은 문구를 쏟아내며 자본주의 이미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앨범의 타이틀 곡 'Discotheque' 서 소비적 욕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판타지를 클럽과 파티에 비유해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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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을 수 있지만 붙잡을 수는 없어

머물게 할 수도, 조정할 수도 없어. 자루에 담을 수도 없지.

너는 풍선껌을 씹으며, 그게 뭔지도 모르지만 좀 더 원하지.

저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은 너에게 늘 부족해

너는 혼란스럽게 뭔가를 위해 고통받고 그것을 위해 일하지.

가자, 가자. 디스코텍으로.

- Discotheque -

 

1990년대 U2의 포스트모던 삼부작은 모든 것이 이미지와 기호로 치환되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욕망의 판타지에 종속된 사회에 대한 차가운 비판과 냉소를 자신들의 앨범과 공연의 콘셉트로 보여준 것이다. 이 앨범들은 “복제된 것에 진정한 것들이 소외된” 현대 문명을 차갑게 들여다본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명저 시뮬라시옹』 에서 욕망을 부추기는 '복제기술'(simulation)은 복제된 문화를 만들고 실재보다 더 생생한 과잉실재(hyper-reality)에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삶이 오히려 밀려나는 '복제사회'(simularque)의 문제점을 예고한 것이다. 복제기술은 이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현실을 능가하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을 복제하여 이미지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원본이나 진실이 소멸을 의미한다.

 

또한 보드리야르는 또 다른 저서 소비의 사회』 에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도 사물 자체가 아닌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진단하였다. 즉 상품의 필요를 소비하기보다 상품이 상징하는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대상이 이미지가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문제제기를 멈추고 합성된 이미지를 통해 위조된 현실을 엿보는 데만 익숙해진다고 주장한다. 보드리아르는 시뮬라시옹에 전적인 지배를 당하는 극단의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이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지만, 그 저항에 있어 희망의 의미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묵시적인 허무를 표명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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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가 1990년대 발표한 세 장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이러한 포스트모던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직접적인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비유와 풍자로 표현하면서 현대사회의 비인격화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런 현대 사회를 U2는 'Zooropa'라는 가상사회로 명명하고, 문명화된 바벨론, 'Zooropa'의 세계관을 담아냈다. 의 타이틀 곡 'Zoo Station'은 이 도시로 들어가는 진입로인 셈이다. 그 도시에는 “희망 대신 자본이, 평화 대신 맹신이, 생명 대신 무감각이, 진리 대신 불확실성이, 공동체 대신 익명성이” 지배하는 신 없는 디스토피아이다.

 

내겐 나침반이 없어. 내겐 지도도 없어.

내겐 이유도 없어. 되돌아갈 이유 말이야.

내겐 종교도 없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난 한계를 몰라. 우리 소유의 한계 말이야.

주로파, 걱정하지마. 그래, 다 잘 될거야.

주로파, 불확실성이 우릴 인도할거야.

그녀는 꿈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세상을 떠올릴거야.

- Zooropa -

 

U2가 묘사한 현대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개인주의와 그로 인한 인간 소외였다. 다양한 개인들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하나됨을 이룬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딜레마일 것이다. 1991년 발표한 'One'은 1990년대 U2의 가장 큰 히트곡이며 가사에 담긴 문학적 미학과 정신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영국의 음악 채널 VH1이 기획한 “100 가장 위대한 노랫말(100 Greatest Lyrics)” 설문조사와 음악 잡지 Q가 선정한 “100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1001 Greatest Songs of All-time)” 차트에서 “One”은 1위에 올랐다. 어떤 점이 이 노래가 이토록 평단과 팬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는가? 그것은 바로 이 노래가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대변하는 현 시대 '다원주의' 담론의 고민과 방향을 선명하게 제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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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갈등과 반목의 상황 가운데 U2는 진정한 평화와 하나됨의 가치를 일깨우며 이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One'은 “시대의 노래”가 되었다. 2001년 한국의 취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보노는 오랜 분단의 아픔을 겪은 아일랜드인으로서 한국의 분단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 공연이 성사된다면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가 'One'이라고 말했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며 시작된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는 걸까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죠.

당신은 비난할 누군가를 찾았으니까요.

당신은 말합니다. 한 사랑, 한 생명.

오늘밤 우리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라고

한 사랑. 우린 함께 나누게 되었다 합니다.

하지만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곧 사라집니다.

- One -

 

오늘날 다수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됨”의 가치를 강조하며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는 결국 누군가를 비난하고 소외시킨 차가운 현실의 결과물일 수 있다. U2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한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공동체'란 개념에는 사실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상 강한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는 집단은 그 외부의 이질적 요소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때로는 그 이방인들을 추방하고 처단하며 내부 결속을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 Girard)는 그의 저서 폭력과 성스러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폭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화해의 희생양을 하나 뺀 모든 사람의 일치다.” 역사 가운데 평화와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일종의 문명사적 방법론이 바로 개인에게 가하는 공동체의 집단적 따돌림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타자 또는 소수자라는 이름의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다수자들은 화해와 평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한국사회에서도 이런 폭력적 제의의 사례는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희생자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공동체는 하나됨을 위해 또 다른 모난 사람들, “비난할 누군가”를 찾아 공격할 것이다.

 

U2는 공동체가 “한 사랑, 한 생명”을 외친다면 그것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이런 현실적 인식과 반성이 있어야 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하나됨을 위한 방법을 후렴구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는 하나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죠. 단지 함께 보듬고 가는 겁니다.” 하나됨이란 모두가 같아지는 획일성(sameness)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togetherness) 삶의 방식이다. 이 노래의 2절에서 화자는 주류 집단의 위선적인 포용과 다원주의 담론에 대해 철저히 조롱하며 비판한다.

 

당신은 누군가를 용서하러 오셨나요?

아니면 죽은 자를 살려내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예수 흉내를 내고 싶은 건가요?

마치 나를 당신 앞에 문둥이로 보면서...

당신은 내게 들러오라 하지만, 나를 기어서 가게 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받아들여 질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것은 결국 상처입니다.

 

언론과 공식적 발언에서는 성적, 인종적, 신체적, 문화적 소수자들을 포용한다는 선전을 늘어놓지만 정작 두터운 편견으로 그들을 진정한 이웃으로 여기지 않는 이중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포용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값싼 동정심”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들에게 이 공동체에 머물러도 좋지만 주류인들의 언행을 따라 튀지 말고 살라고 강요한다. 더 나아가 주류인들의 거주지가 아닌 그들만의 구역 안에 게토화시켜 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포용의 실재이다. 이후 이 노래는 U2의 콘서트에서 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며, 보노는 청중들에게 그 당시의 중요한 세계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동참”(carry each other)할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1980년대 U2가 사막을 순례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담아냈다면, 1990년대의 노래들은 포스트모던 소비사회 안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였다. 여기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이전의 순례에는 사막에 자라나는 '조슈아 트리'의 생명력이 상징하듯 갈등과 욕망으로 황폐해진 사회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강조했다면, 포스트모던 삼부작에서는 묵시적 과잉실재의 디스토피아 속에 길을 잃은 불안을 보다 염세적으로 표현해 냈다. 하지만 구도자의 여정이 멈춘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의 결론과는 달리 U2는 지도와 목표를 잃고 방황할지라도 진정한 삶의 가치와 신의 나라를 향한 지속적인 여정의 길은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전설적인 컨트리 뮤지션 조니 캐쉬(Johnny Cash)와 함께 작업한 'The wanderer'는 그 절망과 희망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밖에 나가 걸었다.

금으로 포장된 거리에서 영혼 없는 도시의 뼈와 살을 보았지....

나는 어느 교회 앞에서 멈췄다.

사람들은 신의 나라를 원한다지만 신은 원치 않는다....

나는 밖에서 찾아 다녔다.

한 명의 의인을 찾아서, 그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을만한 영혼을 가진나는 성경 한 권과 총 한 자루를 들고 있다.

신의 말씀이 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예수여,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예수여, 저 곧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찾아 계속 떠돌아다닙니다.

- The wander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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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포스트모던 3부작의 실험적 모험을 마치고, 2000년대 U2는 이전의 록큰롤 사운드로 회귀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마흔 살 중년기에 접어든 밴드는 이전보다 힘의 완급조절을 통해 서정적인 멜로디를 강화하고 특유의 샤우팅은 의도적으로 강도를 낮추는 원숙미를 보여준다. 가사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사회비판적 메시지보다는 솔직한 자기각성과 성찰을 강조하면서 도덕적 행동의 실제적 방법을 제안하며 왕성한 정치적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 U2는 그들이 비판하고 거부했던 주류의 한 복판에 있다. 음악 평론가 소승근의 평가는 U2의 다음 발걸음을 위한 매우 중요한 질문을 제공한다.

 

“50대에 접어든 멤버들의 관록과 포용력 그리고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가 그들의 음악에서 뿜어져 나지만 얼핏 타인들에게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위험한 계몽성도 있다. 보노의 정치적 활동 때문인지 어느새 U2의 음악도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권력'이 되었다.

 

”U2 역시 이러한 자신들의 위치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주류를 비판하는 주류” 밴드이며, 자기의 유명세와 힘을 소외된 자들과 공존하는 평화를 위해 사용하는 법을 터득해 갔다. 오늘날 U2는 사랑의 가치와 이상향을 향한 순례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윤영훈(bigpuzzl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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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Sunday Bloody Sunday #Refugee #Like a Song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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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hkkh

2019.12.07

이번에 유투공연 가는데
인터넷으로 기사 좀 보다가 들어왔습니다.
글 되게 잘쓰셨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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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behind

2019.11.29

33년 유투 팬으로서 이번 공연 꿈만 같네요~~^^
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acthung baby 투어도 실현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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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